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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영산강(18.03.01~03.10)

(180302) 영산강 자전거 여행 2, 나주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니'

방문장소 : 국립나주박물관-점심(나주곰탕, 하얀집)-금성관-나주목사내아-나주 고샅길-나주향교-금성산 장원봉-한수제

소 감 : 나주하면 홍어, 곰탕같은 먹거리 밖에 몰랐는데 나주의 다채로운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

 


둘째날이다. 어제 자전거 좀 탔다고 몸이 쑤시고 무겁다. 하지만 오늘은 목포로 바로 넘어가는 대신 나주 구경하는 날이기에 쉬엄쉬엄 움직이기로 했다.

 

 


<국립나주박물관>

 

첫 방문지는 국립나주박물관.

국립나주박물관은 반남 고분군 근처에 위치해 있어 버스를 이용했다. 30~40분 달리니 고분의 모습과 함께 박물관이 보였다.

 



<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고분 모습>

 

  

평범한 시골 마을 사이에 고분들이 보인다.

고분들을 중심으로 넓은 들판이 보이는데 이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됐을 토착세력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반남고분군(옛 덕산리 고분 제 3호)>

 

고분은 삼국시대 이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계층의 무덤을 말한다. 삼국시대 고분들 가운데 안이 옹관묘로 되어 있으면서 거대한 봉분을 쌓은 것은 이곳 영산강 유역의 고분들 밖에 없다고 한다. 유물 중 가장 하이라이트인 금동관(국보 제295)을 비롯해 금동 귀걸이, 금동신 등 각종 호화로운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국립나주박물관에 잘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후 점심으로 곰탕 집에 갔다.

어제 저녁으로 홍어애보리국을 먹었는데 점심은 곰탕이니 만찬의 연속이다.

 

 



 

<나주곰탕, 하얀집>

 

밥 한공기 말아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함께 먹으니 금새 한그릇이 비워졌다.

진한 육수와 부드러운 소고기가 일품이다.

 

 

나주곰탕하면 하얀집을 많이들 찾는다. 나 역시 그 맛이 궁금해 들어갔다.

입구에서 바로 큰 솥단지가 3개 있었고 거기에서 식당 이모님들이 곰탕을 퍼서 나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점심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바로 옆에 있는 금성관으로 향했다.

 

 


<금성관 망화루>

 

곰탕 하얀집과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다.

 



<금성관 전경>

 

금성관은 관찰사 관할 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를 보았던 공간이자 중앙정부가 보낸 사신이 묵었던 곳.

 일제강점기 나주군청사로 사용되어 원형이 파괴되기도 하는 등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나주목사내아(금학헌)>

   

조선시대 나주목사가 기거하던 살림집으로 오늘날로 치면 정부관사로 보면 될 것 같다성안 관아건물 중에서 객사 금성관과 목사내아동헌의 정수루 만이 원형의 모습을 간직했다고 한다. 


 

오후에 금성산 쪽에서 나주 전경을 보고 싶었다. 길을 검색해보니 나주 금성관, 목사내아 주변에 '고샅길'이라고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도보로 볼 수 있도록 만든 코스가 있었고 또 금성산 가기전에 나주향교가 있어 쉬엄쉬엄 보면서 이동하기로 했다.

 

 


<고샅길 1. 예수재림교회>

 

나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건물. 

일제강점기 교육계몽운동을 펼친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던 곳.

 



<고샅길 2. '표해록저자 최부의 집터>

  

'표해록'은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최부가 136일간 중국대륙을 표류한 일기로 중국 역사상 3대 기행문으로 꼽힌다그의 집터에서는 현재 이화아파트가 들어서있다.

 



 <고샅길 3. 영금문(서성문)>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성문이 있었으나 일제강정기때 모두 헐리고 1993년 남고문, 2006년 동점문, 2011년 서성문 순으로 복원되었다. 1894년 음력 7월 1일 동학농민군이 나주를 공격할 때 금성산 줄기인 월정봉 정상에서 내려와 영금문을 공격했으며음력 8월 13일에 동학농민군의 우두머리 전봉준이 영금문으로 찾아와 당시 나주목사였던 민종렬과 협상을 했다고 한다.

 



<고샅길 4. 고샅길 마을풍경> 

 

고샅길을 걷다보면 낡고 허름한 집들이 자주 눈에 띈다.

 

 

고샅길을 쉬엄쉬엄 돌다 어느덧 나주향교에 도착했다.

사람이 없어 혼자 향교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나주향교 명륜당>

 

교생들을 가르쳤던 곳으로 오늘날 교실과 같던 곳이다. 

예전에는 가장 활기가 넘쳤던 장소였으리라.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제394)>

 

공자를 비롯한 성현 27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

임진왜란 이후 성균관을 다시 지을 때 나주향교 대성전을 참조해서 지었다는 말이 전해올만큼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대성전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다.

 


나주 향교를 뒤로하고 마지막 여정으로 금성산에 올랐다. 금성산 장원봉 쪽으로 가서 나주 전경을 보고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계속 올라가야 해서 당황했다. 하기야 탁트인 전경을 본다는 게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위로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한데 너무 쉽게 생각했다. 오늘 이곳저곳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 욕심 부렸더니 산에 오르니 기운이 빠진다. 30~40분 천천히 올라가니 나주 전경이 힐끔힐끔 보인다. 장원봉에서는 나무에 가려 조금 내려가 나주 전경을 구경했다.

 

 

 

<금성산 장원봉에서 바라본 나주>

 

 바로 아래 향교에서부터 오늘 둘러본 곳들이 훤히 보인다왼편에는 빛가람 대교도 보이고 영산강을 둘러싼 들판과 그 뒤에 산들을 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한 수 제>

  

한적한 분위기에 물새들은 쉬고 있었고

 산 위로 비추는 햇살은 참 아름다웠다.



한수제까지 돌아보고나니 날도 저물어 가고 다른 곳으로 움직일 힘도 없어 오늘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애초 계획은 쉬엄쉬엄 나주를 돌아보는 것이었는데 욕심이 생겨 빡빡하게 움직였던 것 같다.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니 다 못봐도 좋으니 가볍게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