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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920-0923) 인도 우다이푸르(Udaipur) 2, 델리(인도여행 마지막)

(180921) 우다이푸르 2일차, City Palace

 

1. 간밤에 어떤 녀석

 

간밤에 어떤 녀석 덕분에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소동이 있었다. 호스텔 4인 도미토리실에 묵고 있었는데 누가 에어컨을 풀로 틀어놓았다. 잘 때도 그렇게 틀어놓으면 열이 많은 나도 냉방병 걸릴 것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온도를 좀 올리는데 다른 침대 2층에 있던 녀석이 ‘What are you doing?'이라고 상당히 신경질적으로 톡 쏘아댔다.

 

내가 좀 추워서 그랬다고 하자  자기는 덥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걸 보고 얼척이 없었다. 열이 많은 나도 추울 정도였지만 나보다 더 열이 많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쳐도 이 녀석 말하는 꼬락서니가 '감히 너 따위가 에어컨 리모컨을 손대?' 이런 불쾌한 기색이었다. 주먹 한 대 날리고 시작해도 시원찮은데 미운놈 떡 하나 준다는 심정으로 일단 순순히 원위치. 웃긴건 에어컨 직방으로 맞고 있는 내 윗층 인도 여행자가 다음날 입 돌아가 있을 것 같아 너 진짜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이 재밌다. 영어로 얘기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괜찮아' 이런 대답이 아니라 직역하자면 참을 수 있어라고 대답하는 걸 똑똑히 들었다. 잘못했다간 싸움날 것 같으니까 춥지만 내가 참고 말지 이런 자세로 해석됐다. 하 참 추우면 춥다고 하면 되지 참긴 뭘 참냐고. 

 

에어컨 소동이후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수면등이 자기 취침에 방해됐는지 꺼달라고 하는데 완전 명령조. 가지가지 한다. 그렇게 예민하면 독방을 쓰시지 왜 도미토리 룸에와서 민폐 짓거리인지?

 

여행 막바지라 간당간당한 내 에너지를 얘한테 참교육 시키면서 소모하는게 아까워 애써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달라이라마께서 말씀하셨듯 화보다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라는 말씀을 새기며 '여기까지 오면서 무슨 험한일을 겪었길래 저리 행동을 할까'라는 연민으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 녀석과 똑같은 방식이 아닌 부처님의 자비심을 보인 내 자신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면서 곧 잠이 들었다.

 

 

2. 우다이푸르 왕궁(City Palace0 구경

 

우다이푸르의 랜드마크 City Palace  구경을 나선다. 입구에 들어서니 우다이푸르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왕궁입구에서 바라본 우다이푸르 시가지 

 

우람한 나무같이 서있는 하얀색깔의 왕궁 건물을 보며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가네샤 신을 모시고 있는 'Ganesh Deodhi'를 먼저 만나게 된다. 자이푸르의 옛 수도 Amber 요새에도 주요 구역을 들어가기 전에 가네샤 신을 모시고 있는 커다란 문이 있었는데 라자스탄 왕조에서는 그만큼 가네샤 신을 특별히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Ganesh Deodhi/ 가네샤 신 위로 우다이푸르 Mewar 왕조를 상징하는 태양이 장식되어있다.

 

가네샤 신께 인사를 드리고 나니 피촐라 호수와 시가지 모습이 훤히 보이니 Mewar 왕조가 왜 이곳을 수도로 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왕궁 안에서 바라본 피촐라 호수와 시가지

 

Amar Vilas 쪽을 지나니 대리석 건물 안에 바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숨겨진 Baadi Mahal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공적인 건축물 속에 초록빛 가득한 나무들을 보니 다소 삭막해 보이는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준다. 

 

Baadi Mahal 정원

 

Baadi Mahal 정원안 건물에서 왕을 중심으로 많은 신하들이 빙 둘러앉은 모습을 담은 그림

 

왕궁 내부는 거울, 타일, 그림 장식 등으로 방들을 화려하게 꾸며놓았고, 왕실 생활모습을 담은 각종 그림들이며 진귀한 예술품들이며 모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 설명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양이었다. 각종 행사(사냥, 결혼식, 돌잔치)가 있으면 항시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게 한 듯  전시된 그림을 보며 그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상상해 본다.    

 

Kanch ki Burj/거울과 유리로 장식된 방

 

물담배(Hookah)를 하는 왕의 모습

그중 우다이푸르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 공작 정원(Mor Chowk, Peacock Courtyard). 왕실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저녁 연회가 펼쳐졌던 장소라고 한다. 1층에는 장인의 경지로 정교하게 장식된 5마리의 공작새들이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고, 2층에는 왕이 직접 신하들에게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장소로 쓰이는듯 장식에 특별히 공을 더 들인 것 같았다.    

라자스탄 예술의 진수를 볼 수 있었던 공작 정원(Mor Chowk, Peacock Courtyard)

 

모자이크 형식으로 장인의 한땀한땀 정성으로 만들어진 공작새

 

왕이 신하들에게 음식을 베풀며 위엄을 드러냈을 공작정원 2층

 

Sun God , Surya/Mewar 왕조을 상징하는 문양이라고 한다

 

아침 10시쯤 들어와서 하나씩 찬찬히 둘러보느라 오후 2시를 훌쩍 넘긴다. 점심 때가 지나 배는 고프고 다리는 후들후들거려 왕족 여인들의 공간이자 연회장으로 사용됐던 Zenana Mahal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Zenana Mahal(Queen's Palace) 

 

근처 다른 전시공간을 둘러보다 한 아저씨가 기념사진을 같이 찍자고 요청한다. 마치 나를 예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이 천연덕스럽게 행동해서 나도 그에 걸맞게 그들과 포즈를 취한다. 

 

 

3. Dharohar 전통 공연 관람

Gangaur Ghat에 근처 'Bagore-ki-Haveli' 박물관에서 매일 상설 전통 공연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알록달록한 전통 의상을 입은 무용수 분들이 화려하고 현란한 몸동작으로 춤을 춘다. 젊은 무용수들 사이에서 나이 드신 할머니 무용수도 같이 춤을 추는 공연도 있었다. 그 모습이 생경해서 더 집중해서 지켜본다. 나이가 들었어도 공연을 소화하는데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젊고 늘씬한 무용수들과 함께 어울려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인형극 공연은 마치 우리나라 마당극을 보듯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코믹하게 진행됐다. 마치 자신의 신체일부인 양 능수능란하게 인형을 조종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감탄을 자아냈다. 중간에 여자 무희 인형의 털기춤을 선보이는데 어찌나 몸동작이 현란하던지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관객들이 무대에 나와 즉석으로 참여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순발력있는 진행과 맛깔나는 애드리브에 지켜보던 관람객들도 자지러진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여자 무용수가 춤을 추며 머리에 계속 항아리를 쌓는 부분이었다. 3개씩 쌓은 항아리를 3번에 걸쳐 마지막에는 총 9개의 항아리를 이고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혹여나 넘어지지는 않을까 매 순간이 아찔아찔했다. 무대 세트만큼 높다란 9개 항아리탑을 중심잡기 위해서 무용수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을 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라자스탄 주를 여행하면서 주로 유적지나 박물관 위주로 봤기에 수준높은 전통공연을 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고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 

 

저녁 전통공연 보러가기 전 

 

(180922) 우다이푸르 3일차

ㅇ 피촐라 호수(Pichola Lake) 보트투어

 

모레 아부다비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 가는 날이라 계획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원래 오늘 델리에 있어야 맞았다. 하지만 우다이푸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좋아 조금이라도 더 있다 가고 싶어 오늘 밤버스로 델리로 이동하기로 계획했다. 

 

반나절 남은 시간이라 많은 걸 할 수 없어 피촐라 호수를 둘러볼 수 있는 보트투어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마침 같은 숙소에 있었던 한국인 여행자도 관심있어해서 보트투어를 쉐어할 수 있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지만 잔잔한 피촐라 호수에서 바라본 우다이푸르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오늘은 우다이푸르 마지막 날이자 사실상 인도여행 마지막날이기도 해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순간들 속에서 인도여행을 마무리 할 준비를 한다.

 

피촐라 호수에서 바라본 우다이푸르 왕궁

 

(180923) 인도여행 마지막날, 인도를 잠시 떠나며

 

1. 델리-아부다비 이동

 

전날 밤버스를 타고 델리로 넘어왔다. 오전 보트투어까지는 구름만 잔뜩 끼었을뿐 날씨는 괜찮았는데 저녁 버스탈 때쯤 되자 비가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버스에 타면서 괜히 욕심부렸다가 무슨 사고라도 일어나 델리 못넘어가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다 잠이 들었다. 다행히 버스는 감사하게도 내 우려와 달리 델리에 무사히 도착했고, 저녁 비행기라 빠간 한식당에서 영양 보충과 휴식을 취한 뒤 공항으로 이동한다.   

 

2. 끝까지 인도스러워 감사하다

 

출국수속을 하는데 공항 보안검색요원이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사람이라고 하자 다짜고짜 한국말 좀 알려달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안녕하세요같은 인사말을 가르쳐주고 발음 확인해주느라 나를 3분 정도 더 세워뒀던 것 같다. 우리나라였더라면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 직원의 행동이 상관한테 보고됐다면 근무태만으로 징계까지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냄새 풀풀 나는게 인도의 매력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고 가는 것 같다.

 

내가 예약한 항공사는 Air India Express란 저가항공사였는데 창가좌석에 배정돼서 괜찮다 싶었다. 그런데 좌석에 앉아보니 이게 웬걸. 등받이와 앉는 부분이 쿠션감이 전혀 없어서 당황했다.  아무리 저가항공사라지만 히마찰 로컬버스 좌석같이 이렇게 딱딱할 수가 있나 싶어 주변 좌석을 확인해보니 내 좌석만 그런 것이었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어이가 없었는데 정말 가기 전까지 실망시키지 않는 인도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 아무런 사고 없이 순탄히 인도를 떠난다면 인도스러운 결말이라 볼 수 없지! 

 

끝까지 인도스러워 참 감사하다.

 

(왼쪽) 나를 흡족하게 했던 히마찰 로컬버스 같은 쿠션감 전혀 없었던 비행기 좌석/ (오른쪽) 저가항공사인데 무려 기내식이 나왔다!

3. 인도를 잠시 떠나며

 

네팔에서 단지 옆나라란 이유로 얼떨결에 육로 국경을 넘었다. 바라나시에서 삶과 죽음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죽음 또한 삶의 일부임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에서 사기당할 뻔한 나를 한국 비구니 스님들이 구해주셨다. 구해 주신 것도 모자라 가진 먹거리며, 물품들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보드가야에서 아그라로 넘어오다 라자스탄 대가족분들이 직접 싸온 음식을 잘못 먹어 식중독에 걸렸다. 아그라, 델리에서 2주동안 몸져 누워있는동안 귀국행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성수기 비행기 값이 터무니 없이 비싸 그돈으로 인도에서 낫겠다는 결심을 했다. 마날리에서 기사회생하여 우연히 알게 된 스피티 밸리의 존재를 알게 됐다. 티베트 문화를 간직한 라다크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부족함 없는 생활을 보며 큰 영감을 받았다. 내 욕심으로 자초한 조난 상황에서 자연을 무시한 결과도 톡톡히 치렀다. 라다크 중심부 레에서 좋은 동행 분들 만나 판공초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맥로드간지에서 달라이라마 대중법회에 참석하며 스피티 밸리에서 받은 영감을 더 깊이 확장시키는 행운도 누렸다. 암리차르에서 시크교를 중심으로 개인의 삶과 사회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건강하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쇼같은 인도-파키스탄 국경 국기하강식을 보며 분리독립이라는 아픔 역사를 딛고 양 국가간 평화의 씨앗이 이곳에서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왕들의 땅 라자스탄에서 번성한 왕국들의 역사의 숨결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인도에 머무른 3달이라는 기간은 단순히 네팔 옆나라란 이유로 얼떨결에 육로 국경을 넘은 나에게 정말 정말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 좋은 풍경, 좋은 추억들을 선물해 주었다. 삶에서 두고두고 생각해 볼만한 큰 화두까지도 안겨주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다채로운 경험들을 (때로는 너무 버겁게 느꼈지기도 했지만) 할 수 있어서  3달 있었지만 3년을 보내다 간 기분이 드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 생각한다.

 

인도를 떠나지만 인도를 정말 떠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쉬움도 해방감도 들지 않는다. 그저 때가 되면 다시 갈 것 같다는 느낌뿐. 그 느낌을 간직한 채 그렇게 미완성인 인도 여행에 잠시 쉼을 갖는다.

 

 

우다이푸르 Gangaur Ghat에서 바라본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