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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913-0917) 인도 자이푸르(Jaipur) 1, 왕들의 땅 라자스탄(Rajasthan) 의 심장부에 가다

(180912) 암리차르- 자이푸르(Jaipur) 이동

 

ㅇ 암리차르 분리독립 기념관(Partition Museum)

 

암리차르 여행을 마치고 '왕들의 땅'이라고 불리는 라자스탄 자이푸르로 떠나는 첫날이다. 밤버스를 타고 넘어갈 계획이라 암리차르를 더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다가 순례자 숙소에 머물던 한 여행자가 분리독립 기념관(Partition Museum)을 추천해주어 기념관을 가보기로 한다.

 

Partition이란 말이 생소해 찾아보니 1947년 당시 인도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던 영국이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 결정을 한 것을 의미했다. 기념관(Partition Museum)은 분리독립 역사소개를 넘어 이 과정 중에서 발생한 많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희생자가 특히 많이 발생한 펀자브 주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암리차르가 있는 펀자브 주는 분리독립 결정으로 이슬람교가 많았던 서쪽은 파키스탄으로, 힌두, 시크교가 많았던 동쪽은 인도로 영토 절반이 나눠졌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펀자브 주에는 동쪽, 서쪽 가릴 것 없이 모든 종교 사람들이 혼재하고 있던 상황. 따라서 양 종교 사람들이 오랜 세월 터전으로 삼았던 고향을 버리고 각자의 종교에 해당하는 나라로 갑작스럽게 이동해야 하는 혼란한 상황이었다. 동시에 분리독립 전후로 양 종교 갈등이 극에 달했지만 행정과 치안이 공백 상태였던 상황이라 이동 과정 중에서 충돌이 자주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암리차르 분리독립 박물관(Partition Museum)/인도 파키스탄 분리독립 역사 소개와 더불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곳이기도 하다(출처 :https://amritsartourism.org.in/partition-museum-amritsar)

 

기념관에는 구체적인 희생자 수의 규모를 생존자의 증언과 더불어 상세히 기록해두고 있었다. 47년부터 48년까지 약 9백만 명의 사람들이 양 국경을 넘어가야 했고, 그 중 약 80만 명이 사망하고 140만 명이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난민들은 생사를 걸고 인도로 왔지만 난민캠프에서도 식수와 음식 등 충분한 지원이 부족해 2차 피해까지 발생하는 등 그때 상황을 묘사하는 생존자들의 모습과 증언이 그들에게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듯 보였다.

 

전날 인도-파키스탄 국경 국기하강식을 참관하고 기념관을 방문해서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더불어 광복이후 미국과 소련이 각각 진주하고 이념의 대립으로 남북이 갈라져 서로 죽고 죽였다. 그 결과 현재까지 분단으로 이어진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처럼 인도 역시 주권잃은 나라로서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국경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춤도 추고 국경수비대의 쇼에 가까운 국기하강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평화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념관은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분리독립이라는 아픈 역사를 딛고 개인-종교-사회가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정착해 나가는 암리차르 사람들의 삶을 보며 묵직한 울림을 받을 수 있었다. 시작은 단순히 황금사원과 국기하강식 볼거리만 생각하고 암리차르에 왔지만, 그곳에서 지내며 삶에서 깊이 고민해봐야 할 더 중요한 부분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얕은 생각과 마음으로 암리차르에 온 내게 암리차르는 보다 묵직한 울림을 건네주었다.

 

 

(180913-0915) 왕들의 땅 라자스탄의 심장부 자이푸르 

 

1. 델리-자이푸르 이동

 

암리차르에서 델리로 밤버스를 타고 넘어왔다. 미리 검색해본 결과 델리에서 자이푸르까지는 6시간 정도 걸리고 따로 예매할 필요없이 자주 버스가 다닌다고 해서 델리 터미널에서 바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해 자이푸르라고 적어진 구역으로 가서 표파는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건너편으로 가보란다. 알려준 대로 갔는데 자이푸르가는 버스가 다니긴 했는데 정말 좋아보이는 버스만(그만큼 가격도 비싼, 타고온 암리차르-델리 밤버스보다 더 비쌌다. 800루피) 운행하고 있어서 당황했다. 인도에서 6시간 걸리는 건 가까운 거리에 속했기 때문에 나한테 그런 럭셔리한 버스는 필요하지 않았다. 계속 두리번 거리다가 처음 내게 알려준 아저씨한테 더 싼 버스 없냐고 묻자 저게 전부란다. 인도에서 폐차 직전의 버스들이 훨씬 많이 운행 중이란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장거리 노선도 아닌데 왜 럭셔리한 버스만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계속 서성거리자 그 아저씨가 싼 버스는 여기 말고 다른 터미널에 있다고 어디를 가라고 말했다. 영어가 익숙치 않아서 어디를 말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도 답답한 모양인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자기 소지품을 챙기고 밖으로 같이 나가자고 한다. 이 아저씨가 일하다 말고 어디로 가겠다는 건지 알 턱이 없어 끝까지 못미더운 내색을 보이자 "I am a government officer"라며 이 상황을 종지부 내린다. 인도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 정부 소속이라고 하면 인정해 주는 분위기를 익히 알고 있어서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길거리에서 본 게 아니라 터미널에서 직접 일하는 걸 본 사람이기에 일단 따라나섰다.

 

터미널 밖을 나서자마자 릭샤 기사들이 나한테 접근하는데 터미널 아저씨가 뭐라 그러니까 얌전히 나를 놓아준다. 길을 건너서 정부 버스 한 대를 잡아타서 그 아저씨가 상황을 설명해준다. 대충 이해하기로는 이게 다른 터미널로 가는 버스고 나도 그 터미널에 가서 퇴근해야 된다고 같이 내리면 된다고 했다. 

 

20분 남짓 달려 다른 터미널에 내렸는데 그제서야 처음 아그라에서 델리로 왔을 때 내렸던 터미널과 같은 장소라는걸 알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오늘 내가 내렸던 장소는 Kashmiri ISBT(Inter State Bus Terminal) 터미널인데 자이푸르로 가는 리무진 버스만 운행하고 있었고, 일반 로컬버스를 타려면 Sarai Kale Khan ISBT를 가야했던 것이었다.     

 

왜 델리라는 대도시에 내가 내린 터미널을 유일한 장소라고 생각했을 까. 정부 버스 아저씨 아니었으면 델리 도착하자마자 고생할뻔 했다. 아저씨는 내가 자이푸르 버스표 사는 것까지 도와주셨고 쿨하게 인사를 하며 가셨는데 사기가 일상인 델리 한복판에서 이런 큰 도움을 받게 되어 감사할 뿐이었다.

 

자이푸르로 가는 바른 길로 인도해 주셨던 정부버스 아저씨(왼쪽)/아직도 "I am a government officer"란 그 한마디기 잊혀지지 않는다.

 

2. 자이푸르 일상

 

왕들의 땅이라고 부르는 라자스탄(Rajastan) 주의 수도답게 그 규모도 무척 컸다. 자이푸르라는 도시 이름은 왕국을 설립한 Jai Singh 2세 통치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인구 3백만이 사는 큰 도시인지라 볼 것도 많아 처음 며칠 동안은 어딜 따로 방문하지 않고 도시 구경만 다닐 정도였다. 

 

로컬 사람들도 친절하고 따뜻했다. 다만 숙소 근처 호객꾼이 상주해 있었는데 여행자들한테 특히 한국인들한테 접근하는 방법이 아주 전략적이고 세련돼서 적어본다.

 

첫번째 호객꾼은 자연스럽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고 한국 연예인을 언급하며 호감을 나타낸 뒤 너희 나라에 관심 많은데 잠깐 짜이 마시며 얘기하자는 식으로 접근해왔다. 두번째는 다른 여행자가 나에 대한 후기 적어놓은건데 이게 무슨 뜻이며 자연스럽게 사진을 보여주면서(물론 투어 괜찮다는 후기) 투어 관심있으면 자기 카톡 아이디 있다고 내 카톡을 물어보는 식이었다. 무작정 막무가내, 떼쓰는 식으로 접근해 오는 호객꾼만 만나다가 이렇게 세련된 방식으로 다가오는 호객꾼들을 보니 참 머리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이푸르 올드시티에 대한 첫인상은 전통양식의 건물들로 꽉 들어찬 가도가도 끝이 없는 상점들이었다. 높은 현대식 빌딩이 아닌 높이가 일정한 전통양식의 건물들이 쫙 펼쳐진 형태로 있어 라자스탄 특유의 도시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었고 상점만 훑어보는데도 하루가 금새 지나갔다.

 

라자스탄 특유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는 자이푸르 올드타운
Ajmeri Gate/ 자이푸르 7개 관문 중 하나로 문을 넘어가면 각종 Bazar가 나온다

 

 직물, 의복류를 주로 판매하는 Kishanpole Bazar

대로를 따라 전통 양식의 핑크빛 건물의 상점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향료, 의류, 보석 부터해서 잡동사니까지 다채로운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을 구경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었다. 상점 거리를 거닐다 거기서도 개성 넘치는 건물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박물관을 보는 듯 했다.

 

전통양식을 간직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올드타운 건물들

 

특히 세밀하게 꾸며놓은 벽면과 창문 장식들을 보면서 건축이나 예술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려하고 세밀하게 꾸며놓은 창문들

 

타지마할 풍의 상점건물

 

  세밀한 문양과 장식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인간들을 구경?하고 있는 원숭이 무리

 

색이 바랜 벽면을 덧칠하는 노동자./ 자이푸르가 '핑크시티'란 별명이 붙여진 이유는 1876년 Maharaja Ram singh이 영국 웨일즈 왕자(훗날 에드워드 7세) 국빈방문을 환영하는 차원에서 도시 전체를 전통적으로 환대를 뜻하는 핑크색으로 칠한 것에 유래됐다고 한다. 이후 핑크색 외에 다른 색으로 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정할 정도로 핑크시티란 타이틀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자이푸르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한 라씨(Lassi) 얘기도 빠뜨릴 수 없다. 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큰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건 바로 라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0루피면 시원하고 달달하면서도 양도 많아서 속도 든든해지는 라씨를 먹을 수 있으니 자이푸르에서 놓쳐서는 안 될 큰 행복이었다. 전통방식의 점토컵에 가득담긴 라씨의 그 묵직함이 참 좋았다. 묵직한 점토컵을 들면서 홀짝홀짝 마시고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다보면 행복이 참 별거 없구나라고 느끼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내게 큰 기쁨과 행복을 주었던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단골 라씨가게

 

현재까지도 전통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점토컵이 있어 더 맛있고 기품있는 라씨를 먹을 수 있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싸구려 플라스틱 컵에 담긴 라씨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환경적으로 봤을 때도 훨씬 유익한 점토컴이 오랫동안 사용되기를.

 

자이푸르의 랜드마크, Hawa Mah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