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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918-0919) 인도 조드푸르(Jodhpur), 꼬마 친구들에게서 받은 행복

(180918) 조드푸르 1일차, 꼬마 친구들에게서 받은 행복

 

전날 밤버스로 넘어가는 도중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레드버스 앱으로 예약해둔 라자스탄 주 정부 회사(RSRTC, Rajasthan State Road Transport Corporation)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갔는데 사람과 짐들로 바글바글할 곳이 너무 한산해 쌔한 느낌이 들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유니폼 입은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Strike'라고 짧게 대답한다. 매순간 순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니 화도 나지 않고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일정이 충분했다면 욕한번 시원하게 하고 방금 전 나왔던 숙소로 되돌아가는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버스는 파업해서 온 신경이 곤두서는데 밤 10시가 넘어가는 거리에는 학생들이 타악기 밴드를 연주하고 있질 않나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언제 떠날지 몰랐던 인도 여행을 아부다비에 일하고 있었던 지인분의 초대로 마무리할 날짜가 정해지면서 오늘밤 조드푸르로 넘어가야 했다. 

 

외국인 여행자로서 그나마 안전한 주 정부 버스를 이용을 못하니 하는 수 없이 사설버스를 타야 했다. 터미널 근처에 어머무시한 사설버스들이 줄지어 승객들을 태우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쪽으로 넘어간다. 줄지어있는 버스 중 아무나 붙잡고 조드푸르를 외치니 매표소에서 가보라고 손짓으로 방향을 알려준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나니 덜컥 겁이 든다. 어떤 종류의 버스가 올 지 전혀 알 수 없어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곧 버스가 온다고는 하는데 수많은 버스가 일렬로 줄 지어 승객들을 태우는데 내 버스는 어느 버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내가 도움을 받을 곳은 매표소 직원들 밖에 없어 옆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표를 사려는 승객들로 정신없는 직원들이 행여 나를 깜박할까봐 좀 한산해질 때 물어보니 어느 사람을 가리켜 따라가라고 한다. 다행히 좌석은 좁긴 했지만 완전히 누운 상태에서 갈 수 있었고 커튼까지 칠 수 있었다. 

 

한바탕 소동 이후 버스가 출발하자 곧바로 쓰러지듯 잠들었다. 새벽 어스름할 무렵 사설 버스라서 지정된 터미널이 아니라 중심부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에 내려준다. 예약해 둔 숙소랑은 거리가 있고 몸도 피곤한 상태라 릭샤를 타고 가는게  맞았으나 하필 여기서 이놈의 근검절약 정신이 발동한다. 자이푸르에서 로컬버스를 타면서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분명히 중심부까지 가는 로컬버스가 다닌다고 판단, 일단 릭샤 기사들을 뚫고 대로변으로 향한다. 

 

대로변에서 몇몇 버스가 정차하길래 차장 아저씨들한테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숙소 쪽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탄 후 숙소까지 20분 정도 더 들어갔다.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에서도 사서 고생을 하는데 뿌듯한 감정을 느끼는 걸 보고 아무리 내 자신이지만 징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저 버텨준 내 몸 마음께 감사할 뿐이다. 

 

밀린 빨래를 널고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다. 오늘은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 겸 저녁으로 한국음식을 먹기로 한다. 식당까지 한 3km 떨어져 있었는데 동네 구경할겸 사목사목 걷는다.    

 

중심부 시계타워로 갈수록 돌산 위 평탄한 곳에 자리잡은 조드푸르 랜드마크 '메랑가 요새(Mehrangarh Fort)'가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시계타워 근처 Sardar 시장이 넓게 자리잡고 있어 상인들과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메랑가르 요새( Mehrangarh Fort)

 

활기넘치는 Sardar 시장거리

 

시장 구경, 거리 구경하면서 한국 식당으로 가려고 하는데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야 해서 많이 헤맸다.

 

시장거리 오래된 가옥들

 

지나가는 로컬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도착했는데 자리잡은 식당 위치 자체가 뷰 포인트였다. 올라올 때는 무슨 식당을 찾기도 힘든 곳에 운영하나 궁시렁 거렸는데 뒤에는 메랑가 요새, 앞에는 블루시티 조드푸르 시가지가 쫙 펼쳐져 잇는 풍경을 보고 이 집 식당 주인분이 안목이 높으시구나라고 빠른 태세 전환을 한다. 

 

김모한(Kim Mohan) 한국식당에서 음식 사진은 안찍고
뷰 사진만 잔뜩 찍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옥상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같이 사진 찍으며 놀았다. 내가 알고 있는 몇몇 힌두어 문장들을 사용하니 안그래도 큰 눈망울들이 더 커진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며, 눈망울은 어찌나 깊고 맑던지. 어느덧 삼촌뻘되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보는내내 기분이 좋아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행복이 가득 묻어나는 저 아이들의 표정을 봤으니 조드푸르 여행은 다했다.

 

어둠이 깔리자 파란색 건물 뒤로 보이는 요새가 더 늠름하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조드푸르가 선사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벅찬 행복감이 밀려온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거 알고 있다고 편히 있다가 가라고 조드푸르가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내게 행복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마 친구들.

 

 

(180919) 조드푸르 2일차,  메랑가르 요새(Mehrangarh Fort)

 

어제 저녁 김모한 식당에서 꼬마 아이들한테서 듬뿍받은 긍정에너지와 맛있는 한식까지 먹었지만 누적된 피로로 오늘 출발 전부터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 어제 아이들한테서 더이상 조드푸르를 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행복을 선물 받았고, 자이푸르에서처럼 모든 것 다 보겠다는 과한 욕심을 내려놓자고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이 조드푸르 여행 마지막 날,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메랑가르 요새(Mehrangarh Fort)는 꼭 가보고 싶었다. 내 스스로 엎치락 뒤치락 논쟁을 한 결과, 요새에 가되 정 상태가 안되겠다 싶으면 미련없이 복귀하는 걸로 최종 합의를 하였다.

 

김모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한가로이 시가지 풍경을 보고 있으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요새까지 올라가는 길은  결코 내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김모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내 자신과의 수많은 대화와 타협 끝에 도착한 메랑가르 요새

 

정문 'Jai Pol'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요새 뒷편 블루시티의 나머지 마을도 훤히 보이기 시작한다.

 

뒷마을?은 김모한 식당에서 본 마을보다 더 푸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안쪽 문인 'Loha Pol'을 지나가는데 따로 손자국들만 모아둔 공간이 있었는데 그 유래가 충격적이다. 당시 '사티(Sati)'라는 왕인 남편이 죽어 장례식을 치를 때 과부가 된 부인들도 함께 화장을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내 앞에 손자국들은 사티를 하기전 여인들이 남긴 '증명기록'이란 것. 공식적인 사티의 마지막 기록은 1843년 Maharaha Man Singh의 후궁들이었다고 하니 종교와 전통이란 이유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온전한 삶을 다하지 못하고 이땅을 떠났을 지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왕의 죽음까지 기꺼이 따라야 했던 궁중 여인들이 남긴 마지막 기록은 무엇을 위한 증명이었을까

 

궁중 여인들의 기구한 삶을 잠시 생각해 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에 드러서니 화려한 방들과 함께 그들이 썼던 사치품, 각종 무기와 갑옷류 등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Sheesh Mahal(Mirror Palace)
Moti Mahal(Pearl Palace) 정사를 논의했던 곳으로 부인이 따로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Takhat Vilas/조드푸르 마지막 왕 Maharaja Takhat Singh의 침실로 사용되었다.

 

칼은 여전히 날카로운 선을 그리며 살기를 품고 있었다

 

  직원 아저씨의 콧수염은 찌를듯 뾰족했지만 표정은 푸근하기 그지없다.

 

화려한 방들을 벗어나니 조드푸르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무슨 행사가 있는지 성벽에서 군악대가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한 상태에서 오늘을 시작해서 그런지 군악대 음악이 응원가처럼 들려온다.  

 

막바지 인도여행을 응원해 주는 듯한 군악대 연주

 

숙소로 돌아가기 전 김모한 식당에서 마지막 회포를 푼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인도 여행도 이제 정말 막바지라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남은 날까지 몸 마음 건강히 최선을 다해 여행하자.

 

조드푸르에서 마지막 회포를 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