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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910-0912) 인도 암리차르(Amritsar) 2, 무시무시한? 인도-파키스탄 국경 국기하강식을 참관하다

(180911) 인도 - 파키스탄 국경수비대 국기하강식 참관기

 

암리차르가 있는 펀자브 주는 1947년 영국의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 결정으로 영토가 둘로 쪼개진 역사를 가진 곳이다. 암리차르 시내에서 불과 약 30km 떨어진 곳에  Attari(인도)-Wagah(파키스탄) 국경이 있다. 이 국경은 다른 국경과 달리 매일 양국 국경수비대의 국기하강식이 열리는데 일반인도 참관 가능해 시크교의 성지인 황금사원과 더불어 유명한 볼거리이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양국 간의 이미지는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살벌한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대부분 외신을 통해 접한 것이었다. 그런 험악한 관계를 가진 두 나라 국경에서 벌어지는 국기하강식에서는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무척 궁금했고, 양국의 관계가 더 악화되기 전에? 서둘러 가보기로 했다.

 

Fawwara Chowk 광장에서 매일 2층짜리 시티투어 버스가 국기하강식에 맞춰 출발한다. 지나갈 때마다 열성적으로 호객하는 친구들과 친해쳐 못이긴 척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한다. 왕복 250루피.

 

오후 3시 넘어서 출발했는데 아직 해가 뜨겁다. 승객 모두 1층 에어컨있는 곳에 갔는데 나혼자 시내 구경하겠다고 햇볕에 잘 달궈진 2층 야외석에 앉느라 혼났다.

 

내가 탄 시티투어 버스는 암리차르 시내에서 제일 크고 높은 버스가 아닌가 싶었다. 정말 신기한건 고가 다리며 전기선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갈 정도 높이라는 것.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목도 좁은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빠져나가는 기사님이 존경스러웠다. 

 

버스 자체가 워낙 눈에 띄는데다 외국인이 혼자 2층에 앉아 있으니 현지 사람들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수염 부리부리한 현지 사람들로부터 꽤 많이 인사를 받아 전부터 알고지낸 사람인 마냥 나도 천연덕스럽게 손을 흔든다. 특히 어린 애들이 팔짝팔짝 뛰며 반겨주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오늘 하루, 앞으로 행복 게이지 만땅으로 충전 받았다. 

 

Fawwara chowk 광장/ 열성적인 호객 행위를 온 몸으로 받을 수 있다

 

시티투어 버스 2층 Hot Seat 좌석에서 내려다 본 풍경/많은 사람들이 2층에 혼자 앉아있는 내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버스는 직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AH1 도로를 따라 달려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려서도 국기하강식이 있는  곳까지 더 걸어가야 했는데 입장하는 사람들이 정말 정말 많았다.  

 

Attari Wagah 인도-파키스탄 국경 검문소

INDIA라고 큼지막하게 써진 높은 건물의 입구를 지나가니 입이 떡 벌어진다. 정말 많은 관중들로 자리는 이미 꽉 들어차 있었고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함성이 터져나오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 지켜보는데 국경으로 보이는 펜스 사이로 양쪽 간 신경전과 응원전이 대단했다. 파키스탄 쪽과 비교해보니 인도쪽 건물은 무슨 스포츠 경기장 같이 으리으리하게 지어놓고 청중들도 훨씬 많았는데 거기에 모자라 짬좀 돼보이는 한 국경 수비대가 아예 마이크를 잡고 관중들의 호응을 대놓고 유도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하도 소리를 질러대서 파키스탄 쪽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지만 인도 측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연신 손을 위로 치켜세우는 등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키스탄 응원석은 이슬람교라서 그런지 여성들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도 찍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인도측 응원석/스포츠 경기장같이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았다
펜스 뒤로 보이는 파키스탄 측 응원석

 

사람수, 건물 규모에서 이미 앞서고 있었음에도 파키스탄 팀을 확실하게 기선제압하려는 듯 인도 팀에서는 아예 가운데에 즉석 무대를 만들어 춤판을 벌이기 시작한다. 여성들만 나가 춤을 출 수 있었는데 아마 사고 방지 차원에서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인도판 치어리더들의 흥겨운 춤사위가 이어지는데 남성 관중들이 어찌 흥분을 안할 수가 있겠는가. 스포츠 경기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들을 보며 여기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국경에 온 것인지 크리켓 경기를 보러 온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국경지대에서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다니

 

관중들이 흥분이 무르익을 무렵 양 팀간의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한다. 주황색 닭벼슬 모양의 머리 장식을 쓴 인도 팀 선수들은  빵빵한 스피커 소리에 맞춰 적진으로 용맹무쌍하게 돌격하여 연신 내려찍기를 선보인다. 이에 뒤질세라 검은색 닭벼슬을 한 파키스탄 팀도 힘차게 내려찍기를 하는데 누가 더 최대한 높이 치켜들어 바닥에 내려 찍는게 승부의 포인트인 것 같았다.

 

양 팀 국경에서 부동자세로 피도 안날 것 같은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는 수비대를 앞에 두고 닭벼슬한 사람들이 죽어라 내려찍기 하는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워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인도 팀 응원단들은 상관없다는 듯 연신 '힌두스탄'을 외치며 잘한다고 응원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한일전 보듯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행동으로 국기하강식이 진행됐지만 '힌두스탄'이라고 외치는 관중들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양팀 간의 치열한 승부는 끝이 나고 다행히 아무 사상자 발생 없이? 음악소리에 맞춰 국기가 하강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응원단들이 오히려 치고받을 정도로 열렬한 기세를 보였지, 양 팀 선수들은 서로 무언의 합에 맞춰서 준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동시에 국기가 하강할 수 있도록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며 서로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존중이 더 느껴졌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양국 간 분쟁으로 많은 수가 죽고 현재도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번 국기하강식 같은 모습을 통해 한편으로는 양국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죽일놈 살릴놈 이러면서 서로 잔뜩 긴장하기 보다는 어찌됐든 한자리에 모여 최소한의 존중으로 서로를 대하다 보면 평화의 작은 씨앗으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나라 판문점 같은 곳에서 남북 JSA 장병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끝나면 스포츠 경기처럼 서로 악수도 하고 퇴장한다면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자 재밌는 볼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왕래도 하고 교류도 하는 원래 한민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즐거운 상상과 함께 인도-파키스탄 국기하강식 구경을 마친다. 

 

무승부라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모습

 

우리나라 판문점 같은 곳에서 남북 JSA장병들이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고 악수도 하며 퇴장한다면 평화의 한걸음으로 더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영상) 인도-파키스탄 국경 국기하강식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