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828) 인도 판공초(Pangong Tso) 3, 메락(Merak) 마을 '세상의 끝이 아닌 시작점에 서서'

(180828) 판공초 3일차, 메락(Merak) 마을 

 

전날 밤출사에서 다녀와 피곤했던 우리 일행은 늦잠을 자고 천천히 근처 식당에서 아점을 먹는다. 오늘은 무얼 하며 재밌게 보낼까 얘기를 나누다가 판공초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메락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계획은 만들어졌는데 문제는 메락마을까지 타고갈 차량을 어떻게 구하는 것일까가 문제였다. 일반 지프쉐어로 온 여행자들은 메락 마을 일정이 포함돼있어 문제가 없지만 우리 같은 뚜벅이 여행자들은 목마른 자가 우물을 먼저 파듯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식당 직원 말로는 이따금씩 메락 마을로 들어가는 차량을 히치하이킹해서 들어가는 방법 말고는 딱히 없단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앞에서 무작정 기다려 본다. 찔끔찔끔 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손을 들어보지만 메락 마을로 가는 게 아니라 스팡믹 마을에서 멈추는 차량들이었다. 

 

그나마 찔끔오던 차량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지쳐갈 무렵 근처 식료품 가게에 물품을 납품하러 온 트럭이 멈춰선다. 나와 형님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납품을 다 마친 젋은 기사분한테 최대한 공손한 모습으로 비용을 지불할테니 메락 마을까지 한번 다녀올 수 있냐고 물어본다. 처음에는 다른 일이 있는지 난색을 표하다가 상점 주인 이모와 얘기를 나누더니 얼마에 갈거냐고 물어본다. 우리로서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마지막이다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흥정도 나름 했지만 거래가 성사될 때는 혹여나 마음 바뀔까봐 서둘러 차에 올라탄다.

 

못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터라 공짜여행이라도 한 듯 모두가 싱글벙글이다.     

 

이동하는 내내 말도 안되는 풍경에 감탄사 연발하며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스팡믹-만- 메락 이동/거리는 20km 이지만 비포장도로라 1시간 정도 걸렸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

 

중간에 만(Man)이라는 마을을 지나 30분쯤 더 달려 메락(Merak) 마을에 도착한다. 젊은 기사 분한테 뷰 포인트 얘기하니 언덕에 작은 곰파에 세워주고 마을에 가 있을테니 시계를 가리키며 2시간 후에 보자고 한다. 

 

'세상의 끝'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법한 마을이지만 곰파 언덕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가축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평화롭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세상의 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세상이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의 끝이라는 수식어와 달리 이곳이 세상의 시작이 아닌가 싶었다.
못갈뻔했던 메락마을 여행에 싱글벙글

 

풍경 구경을 마치고 사목사목 마을 마실에 나선다. 하늘색 바탕의 선명한 중학교 간판이 보인다.  학생들이 있는지 궁금해 들어가 보았는데 작은 마을이라 유치원이랑 초등학교도 같이 있는지 흰 담벼락에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는데 낯선 외지사람들을 보니 수줍어서 그런지 인사하거나 다가가면 학교 뒤로 숨어버리고 조금 있다가 이 사람들이 누군가 궁긍해 다시 고개를 빼꼼 내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애들 웃음소리와 미소가 얼마나 맑고 순박하던지 바라만 봐도 미소가 번졌다. 

 

 

메락마을 학교풍경 

 

난 왜 병아리보다 돼지가 더 귀엽게 보이지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 지는 아이들 미소. 항상 간직하길

 

마을 홈스테이에서 마당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며 짜이를 마시는데 세상의 전부를 다 가진 듯 하다. 

많은 돈이 있어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내가 없었으면 못 누렸을 행복을 누릴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메락 마을에 취해 잠깐 정신못차리고 있을 때

 

짧은 메락 마을 마실을 뒤로하고 차에 올라선다. 신난다고 방방 뛰고 돌아다녔더니 피곤이 몰려온다. 중간에 만 마을을 조금 지날 때 잠도 깰 겸 차를 멈춰세웠는데 좀전에 메락 마을 갈 때 보던 모습과는 또 다른 풍경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좀전과 달리 물이 잔잔하다 못해 고여있다고 싶을 정도로 미동조차 없어 마치 산과 하늘을 데칼코마니처럼 비추고 있는 모습에 하나의  커다란 예술 작품 속에 우리가 쏙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색감이 어찌나 다채롭고 강렬한지 누가 일부러 보정을 해놓은 것 같았다. 매일 매일이 새롭고 최고의 풍경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끝판왕이 아직 더 남아있을 줄이야. 계 탔다 정말. 이제 판공초 보고 왔다고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만난 뜻하지 않은 데칼코마니 풍경들과 계타서 신난 아무개
핸드폰 파노라마 

 

정말 판공초가 멋진 장소이지만 이렇게 가슴 벅찬 많은 순간과 추억들을 경험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제안에 선뜻 일정도 조정해가며 응해주신 큰형님, 끝까지 동행하며 형 누나처럼 편안하게 대해준 작은형님 부부,

멋진 추억을 선서해 주신 기사 아저씨, 판공초처럼 해맑은 미소 보여준 메락 꼬마 친구들, 무엇보다 소중한 풍경 허락해 준 판공초 정령께 감사할 따름이다.

 

예정에 없던 데칼코마니 풍경 출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메락 마을에서의 흥분을 뒤로하고 마지막 밤 출사에 나섰다. 판공초 온 이후로 오늘 밤이 가장 별이 많고 빛났다. 마지막 밤이라 함께 나온 동호회 분들과 실컷 사진 찍는다.

 

개떡같은 현지여행사 때문에 어긋난 일정 덕분에

찰떡같은 좋은 동행분들을 만나 잊을 수 없는 판공초 추억 쌓을 수 있었다.

분에 넘치게도 짧게 있었으면 놓쳤을 많은 순간들을 누릴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휘황찬란한 은하수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이 왜 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영원과 같은 우주를 직접 마주한 이 순간에서 그 욕심은 티끌만도 못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숨막히는 풍경들과 함께 당장에 큰 불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일지라도 부정적 상황,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차분히 내 할일을 다하다 보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와 행복을 기다리고 있음을 판공초는 아낌없이 내게 알려주었다.

 

 

(영상) 판공초 스팡믹-메락 마을 구간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