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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826) 인도 판공초(Pangong Tso) 1, 로컬버스타고 판공초가기 '젠장 내가 알던 푸른 색이 아니잖아'

(180826) 판공초 1일차

ㅇ 로컬버스타고 레-판공초 이동

 

판공초로 떠나는 날이다. 새벽 6시 반 출발이라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야 했다. 시내에서 일행들과 만나 정류장까지 걷기엔 시간이 애매해 택시를 타고 곧장 향했다.

 

아침이라 공기가 제법 차다. 근처 가게에서 짜이로 몸을 녹인다. 

 

판공초로 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다. 중간에 창라패스(Changla pass)라는 해발 5,360m를 넘어가야 한다.

 

레-스팡믹(판공초) 경로
중간에 무시무시한 창라 패스(5,360m)를 넘어가야 한다

 

판공초를 인도해줄 로컬 버스/장난감같이 생겼지만 이래봬도 해발 5천미터를 넘나드는 무시무시한 버스이다.

연세가 있으신 큰형님 부부가 살짝 걱정됐는데 전세계를 돌아다니신 베테랑들이셔서 괜찮으셨는데 초짜인 나는 아직도 고산 지대가 익숙지 않아 겔겔거린다.

 

창라 패스 넘고 판공초 가기 전 마지막 휴게소에서/국경 지대다 보니 군차량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ㅇ 판공초를 만나다!

 

온갖 산들을 굽이굽이 지나다니며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무렵  그동안 본 칙칙한 색들이 만들어낸 풍경과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판공초구나. 

 

판공초와의 첫 대면/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본 판공초는 어지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늘이 이다지도 푸른걸까

물은 이다지도 맑은걸까

 

요새 방송 촬영화질이 워낙 좋아져서 연예인 모공까지 잡힌다고 얘기를 한다. 그 비유가 딱 맞다고 생각될 정도로 판공초에서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구름이 지나가며 만든 그림자, 산들의 흙 입자 하나하나가 눈에 선명히 들어와서 왜 많은 사람들이 판공초 판공초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세얼간이 촬영장소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다가 멀리서 큰형님 부부가 버스 출발한다고 빨리 오라셔서 헐레벌떡 뛰어간다. 최종목적지인 판공초 초입부에 위치한 메락(Merak)이란 마을에 가기 전 버스가 잠시 영화 세얼간이 촬영장소에서 버스가 정차했던 것이다. 이런 포인트에 잠깐 쉬어주는 기사님의 센스에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벗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판공초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래 아쉽지만 내일도 모레도 있으니까 찬찬히 아껴보자.

 

버스는 메락 마을에 도착한다. 이틀 후에 다시 오는 버스로 그 다음날 아침에 레로 간다면 자동적으로 3박 확정이다. 일행분들과 숙소를 찾는데 듬성듬성 떨어져 있어 흩어져서 찾는다. 관광지다보니 홈스테이부터 럭셔리한 호텔까지 무척 다양했는데 럭셔리룸 가격을 듣고 작은 형님부부와 뜨악했다. 대뜸 6천루피를 부르더니 바로 3천루피로 친절하게? 깎아주신다 :). 큰형님 부부는 따로 찾은 곳에 묵으시고 나와 작은형님 부부는 같은 숙소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진 3명이라는 인원수와 3박이라는 조건을 활용해 방은 따로 쓰면서도 전체비용으로 흥정한 작은형님 부부의 수완 덕분에 괜찮은 조건으로 묵을 수 있었다. 혼자였으면 시도조차 못해봤을텐데 야호.  

 

숙소를 다 잡고 나서 큰형님 부부께서 쌀이랑 찬거리좀 챙겨왔다고 저녁은 큰형님 부부 숙소에서 같이 먹자고 하신다. 숙소 현지 가족분들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감사했다. 

 

나도 레 시내에서 사온(레는 사랑입니다) 신라면을 챙겨간다. 큰누님께서 직점 담그셨다는 무생채에 김이며 오이, 된장까지 눈이 희둥그레진다. 귀한 음식들을 손수 싸오신 거며 다른 일행들과 나누려는 큰형님 부부의 따뜻한 마음씨에 너무나 감사하다.

 

큰형님부부의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씨에 모두가 행복했던 저녁 시간이었다

 

도란도란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런데 큰형님 부부께서 내일아침 버스를 타고 레로 돌아간다고 하셔서 같이 오면서 불편한 점이 있어서 그러신가 싶어 깜짝 놀랐다. 이유를 조심스레 여쭤보니 사실 이번 판공초 여행은 예정에 없던 것이었단다. 다른 계획이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올린 카톡 글을 보고 일정을 쪼개 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더 있다가 가고 싶지만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짧은 시간이지만 오늘 판공초 본 것으로 마무리하고 돌아간다고 하셨다. 더 함께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작은형님 부부와 나 모두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또 내 카톡글을 좋게 보시고 선뜻 같이 가고 싶다고 연락주신 큰형님 부부께 다시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큰누님께서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 적어본다.

 

"여행하다 보면 다른 여행자로부터 어느 장소가 좋았어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럴 때마다 '여기 가보세요, 이거 해보세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되도록 지양해요. (여행자마다 지향점이 다 달라서 내가 좋아한 곳이 상대방은 아닐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내가 책임져야 하는 기분이 들어서 되도록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고 해요."

 

"토끼몰이 하듯 막 들쑤시고 다니는 방식은 안맞는 것 같아요.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다보면 그 장소가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머무는 것 자체로 그 장소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삶이 좋은 지 잘 모르겠는데 추천 좀 해주세요. 이런 삶이 좋은 것 같아요. 이런 삶을 살아보세요.'

'살다보면 나라는 존재가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내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흔히 여행을 삶에 대입해보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여행을 할수록 여행은 삶의 축소판인 것 같다라고 크게 느끼고 있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최선에 내 행복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몰라 도망치듯 쫓기듯 나온 여행이다. 인생에 모자란 부분이 없었다면 나는 이런 방황과 같은 목적없는 여행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아프고 모난 부분들이 있기에 여행을 하면서 무심히 스쳐 지나갔을 순간들을 더욱 유심히 들여다보며 감사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판공초의 밤은 달빛과 바람소리만이 가득하다. 

 

 

(영상) 로컬버스타고 만난 판공초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