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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819-0822) 인도 라다크(Ladakh) 레(Leh) 1, 줄레 라다크!

라다크는 어떤 곳인가? 왜 나는 라다크로 가고 싶어했나?

 

티베트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라다크. 현재는 인도 잠무 카슈미르 주에 편입되는 수모?를 겪었지만(19년 10월 31일 부로 독립된 연방직할지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라다크 왕국은 10세기부터 1840년까지 통치권을 유지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인도 정부가 1974년 라다크 여행을 허가하면서 개발과 자본의 급격한 유입으로 라다크가 그동안 유지해온 문화가 사라지지 않을까 많은 우려를 받았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현재 물질적 발전 속에서도 고유의 삶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아가 기후변화,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소비주의 생활, 인간성 상실 등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해결을 위해 행동하고자 하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라다크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모른 채 여행했던 나. 우연한 계기로 (개인적으로 라다크의 이미지와 더 부합한다고 생각되는) 스피티 밸리 지역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척박한 환경에서도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며 자급자족적인 삶에서 나오는 라다크 인들의 여유로운 태도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 그런 태도가 나올 수 있는지 내게 깊은 화두가 되었으며, 라다크의 중심지인 레는 내게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꼭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1. 레에서는 한량이 돼야 해!

 

18일 저녁 늦게 레에 도착했다. 장장 14시간 걸린 대장정이었다. 전에 치트쿨에서 마날리까지 꼬박 하루 걸린 이동도 잘 버텼기에 괜찮겠지 싶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난생처음 당한 경우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레 이동 전날 잠이 안와 휴대폰 만지작 거리고 5천미터 고산지대를 장시간 이동해서 그런지 확실히 몸에 무리가 많이 간 듯 했다. 마날리에서 충분히 쉬고와서 망정이지.. 며칠 동안은 쉬엄쉬엄 다녀야겠다.

 

며칠 동안은 특별히 뭘 한 것도 없이 정말 한량처럼 지냈다(어디까지나 현지, 고도 적응 차원!)

사실 일정이 빡빡하지 않다면 잘먹고 잘 쉬고 한량같이 보내는게 제일 좋다. 특히 3천미터가 넘는 레에서는. 

 

이 시즌 레는 한국 여행자들한테 인기있는 장소라 몇몇 분들과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 커플 같은 경우 일정이 정해져서 델리에서 비행기 타고 레로 넘어온 후 하루 쉬었다가 바로 판공초로(판공초 고도는 4200M이다!)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에 도착 후 고산병 증세가 크게와서 결국 투어사에 예약해 놓은 판공초 일정은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어떤 여행자는 레에서는 괜찮은 듯 싶었으나 판공초에서 고산병 증세가 와서 고생 많이 했다고. 1,950m 한라산 아래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산 지대에 더욱 취약하기 때문에 일정을 더 넉넉히 짜는 것이 필요하다.  

 

즐겨 찾았던 아미고(Amigo) 한식당에서/ 레에 있으면서 하루에 1끼는 한식을 의무적으로? 먹었던 것 같다
인생음식. mixed yak tukpa/ 다른 한국여행자부터 추천 받아 갔는데 외지사람은 없고 현지사람만 바글바글한 그야말로 현지맛집. 국수에다 야크고기에 야크모모까지 푸짐하게 나오는데 100루피밖에 하지 않는다. 한그릇 비우면 온종일 행복했다.

 

저녁 때는 길에서 꼬치구이를 파는데 가격도 싸고 맥주 안주로 딱이었다. 레 시내에서 주류 상점 1곳만 유일하게 허가 받아 판매하고 있어 저녁마다 술 사려는 사람들도 북새통을 이룬다. 줄도 없어서 흡사 미국 증권거래소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2. 네팔 포카라에서 만난 진수형님 부부 극적상봉, 떠나기 전 손수 아침 밥상까지 차려주시다

 

이럴 수가. 두달 전 네팔 포카라 윈드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진수형님 부부를 레 거리를 어슬렁 거리다 마주쳤다. 포카라 이후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다가 정말 우연히 만난 거라 무척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넓은 땅덩어리 인도에서 연락도 없이 이렇게 만날 줄이야(이래서 사람은 나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그간 있었던 일들을 얘기 나누는데 하루하루가 다이나믹한 인도에서 살아남은 전우들인지라 어찌나 할말이 많던지. 형님 부부는 맥간, 마날리, 레로 왔는데 계획은 아니었지만 레에서만 한달 넘게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레를 끝으로 인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잠깐 들렀다가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가기로 결정해서  21일 아침 비행기로 델리에 간단다. 

 

인도를 떠나기 전 며칠 차로 이렇게 다시 형님부부를 만나게 되어 인도에서 각자 고생하다가 만나서 그런지 애틋하면서도 동지애가 느껴졌다. 형님부부도 나와 비슷하게 느끼셨는지 한달살이 하면서 늘어난 살림살이며 짐들을 정리하느라 바쁘실텐데도 전날 같이아침  먹자고 불러주셔서 손수 따뜻한 아침밥상을 차려 주셔서 무척 감사했다. 

 

형님, 누님 제가 특별히 뭘 해드린 것도 없는데 네팔에서 본 인연이라고 손수 차려주신 아침밥상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항상 건강 잘 챙기시면서 즐거운 여행 되세요!

 

네팔 포카라에서 만난 진수 형님 부부를 인도 레 길거리에서 만나다니. 한 블럭만 비껴났어도 그 순간 딴 생각했어도,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면 지나쳤을텐데 생각할 수록 놀랍고 신기하다.

 

3. 레 왕궁 구경

 

레에서는 한량같이 지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도 레 시내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본 왕궁 정도는 가봐야 되지 않겠나 싶어 레에 도착한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걸음을 향한다. 시내에서 볼때는 금방 갈 것 같은데 이거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발걸음을 조그만 옮겼을 뿐인데 금새 숨이 찬다.  

 

시내에서 바라본 레 왕궁. 엎어지면 닿을 거리같이 보이지만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가야 했다

 

라다크 지역의 상징인 레 왕궁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왕궁에 도착. 가까이서 보니 높이가 상당하다. 9층 규모의 건물로 티베트 라사 포탈라 궁 외양과 비슷해 보였다. 레 왕궁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지만 1846년 왕조가 통치권을 인도 정부에 넘기고 스톡(stok)이란 지역으로 옮겨 간후 오래 방치되었다고 한다. 복구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듯 안에 볼거리는 많지 않았지만 라다크 지역의 상징적인 곳인 점, 지대 자체가 높아서 8층까지 올라가면 레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 가볼만한 장소였다

 

 

탁트인 하늘 아래 펼쳐진 설산 파노라마와  함께 빽빽히 들어찬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번성했던 라다크 왕국의 군주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4. 순간순간 감상들

 #1 서로 닮아간다는 것

 

22일 레에 온지도 벌써 일주일 가까이 됐다. 자주 갔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잠깐 현지 사람들 구경했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눈에 들어온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로의 인상이 무척 닮아 있었는데 험난한 삶을 같이 헤쳐온 신뢰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가 만나 비슷한 인상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게 모난 부분을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오랫동안 서로에게 노력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서로 다른 우주가 만나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며 기적이다.

 

 

반듯반듯 정돈된 도시의 길에서는 이런 큰 나무들은 고단한 삶에 의지가 되는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그저 방해되는 존재로 가차없이 베어졌야 하는 존재로 뒤바뀌었다. 경제개발과 자연과 함께하는 전통적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라다크 사람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2 숙소 집비둘기를 보며

 

묵고 있던 숙소 옥상에는 주인이 키우는 하얀 집비둘기가 10마리 남짓 있었다. 주인이 오후에 한번씩 새장을 풀어놓는데대다수는 주위만 맴돌고 좀 위험하다 싶으면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2-3마리는 아예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나머지 2-3마리는 열심히 날개를 퍼덕였다. 계속 안에만 있어서 그런지 날갯짓에 힘이 없어 새장 위 빨래줄에 겨우 올라섰다. 그 중 1마리는 다른 무리와 다르게 시야에서 안보일 정도로 잘 날아다녔다. 

 

여러 유형의 비둘기를 보며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닌 가 싶었다.

 

ㅇ 집순이 비둘기

 : 편한 상황에 안주한 나머지 날고자 하는 의지가 없음

   주어진 상황에 안주, 생각을 확장시키지 못한 채 자신의 좁은 생각, 사고가 전부인줄 아는 사람

 

ㅇ 일반 비둘기

 :  날고자 하는 의지는 있으나 이미 편한 상황에 익숙해 날갯짓에 힘이 없어 새장 주변만 맴돎

    생각 확장의 의지 있으나 이미 편한 상황에 적응해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

 

ㅇ 파일럿 비둘기

 : 다른 집비둘기와 다르게 월등하게 잘 날아다니지만 여전히 새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충분한 발전가능성이 있음에도 본인 스스로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형의 비둘기일까?

 

처음엔 새장이 전부인줄 알고 집순이 비둘기가 되고 싶어 아등바등 거렸으나 좋은 자리는 누군가 다 차지하고 있는 상황.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텃세에 부딪히고 회의감까지 겹쳐 자의반. 타의 반 새장 밖으로 나와 날갯짓을 해보지만 이미 새장 안 상황에 익숙해진 탓에 그것도 여의치 않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날갯짓을 할 수 있는 만큼, 이 건물에서 옆 건물, 이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날아다니며 '아 새장 안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구나'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는 나만의 유형을 정립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어진 상황에 긍정, 감사하면서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한계를 미리 정하지 않고 할 수 있는만큼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다. 꼭 좋은 성과만을 행복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삶의 결, 태도에 먼저 의미를 두는 사람이고 싶다. 

 

라다크에서는 꼭 물질적인 성공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줄레 라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