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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811-0816) 인도 마날리(Manali), 400km 대장정과 다시 요양

(0811-0812) Chitcul-Rampur-Mandi-Manali 400km 대장정을 하며

 

칼파와 치트쿨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끝으로 다시 마날리로 가는 날이다.  치트쿨에서 마날리로 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좀더 큰 지역인 심라(Shimla)로 빠져서 1박하거나 밤버스로 가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일단 치트쿨에서는 람푸르(Rampur)로 가는 버스가 최대여서 그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6시간쯤 달려 람푸르에 도착했는데 확실히 오고가는 차량과 건물이 많이 보였다. 다시 심라가는 표를 끊으려던 차에 혹시 몰라 내가 탔던 버스 차장 아저씨한테 마날리 가는 교통편을 물어보았다. 

 

"오늘 여기서 마날리 가는 버스가 있을까요?"

"마날리로 바로 가는건 없는데 근처 만디(Mandi)로 가면 마날리로 넘어가는 밤버스를 탈 수 있을거야." 

 

내심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잘됐다 싶었다. 그때까지는 쌩쌩해서 하루 고생해서 마날리에서 푹 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 선택이 어떤 미래를 불러올지 나는 알지 못했다.

 

람푸르에서 만디로 가는 길에 버스가 비포장 산길로 진입한다. 검색했을 때는 포장도로가 계속 달려야 하는데 뜬금없이 오 산속으로 가나 싶어 휴대폰 GPS로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이럴수가.  최단노선인 305번 도로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비포장 산길로 빠져 옆 154번 도로를 통해 만디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날이 이미 어둑어둑해졌는데 비포장 산길을 달리고 있으니 이 오래된 버스가 중간에 고장이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버스는 만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에 딱딱한 의자에 종일 앉아있으니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노선을 장시간 몰 수 있는지 기사 아저씨가 존경스러웠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날리 버스 곧 오니까 그거 타고 가면 돼"라는 차장의 짧은 설명과 함께 버스는 사라져 버리고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곧 온다는데 곧의 범위를 알지 못하는 나는 막막하기만 했다. 다행히 마날리 버스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어 함께 기다린다. 

 

그 차장 아저씨의 설명대로 마날리행 버스가 왔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사람과 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큰 배낭까지 메고 버스에 오르니 움직일 공간도 없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좌석 한줄에 나란히 앉아있던 분들이 이미 비좁은 공간에서도 자리를 만들어줘 몸 한쪽은 걸친 상태였지만 다행히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여서 그 비좁고 불편한 좌석에서도 고개를 떨구며 잠이 들었다 다시 깼다를 반복했다. 깊은 잠을 못자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버스는 마날리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가 약 400km인데 비슷한 거리지만 꼬박 하루 걸렸다. 같은 400km지만 4000km 같이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인도. 참 incredible하다. 

 

 

이동하면서 사진을 따로 찍지 않았다. 대신 장시간 이동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많은 풍경들을 보면서 사색에 잠길 수 있었고 글로 옮겨본다. 

 

1. 태풍의 눈

현대 사회는 빠르게 돌아간다. 

현대 사회의 이점은 전통사회에 비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더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 400km 거리인 서울-부산을 4-5시간이면 갈 때,  20시간 넘게 걸리는 치트쿨-마날리)

 

하지만 현대사회는 마치 태풍과 같아서 사람들이 쉽게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태풍처럼 사람들에게 위험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제올 지 모르기에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태풍의 눈인 중심부쪽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태풍의 흐름을 쫓아가기 바쁘다. 적어도 그 안에 있으면 안전하기에.

 

삶 속에서 태풍을 빠져나갈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 기회가 온다해도 가족이든, 직장이든 어딘가에 얽매여 있다면 더더욱 결단하기 쉽지 않다. 

 

태풍 안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경우라도 모두가 다 빠져나오지 않는다. 한번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확실한 건 자신의 선택에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으러면 일단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내게도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결과를 알 수 없었지만 고민 끝에 그 기회에 응답했다. 선택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여행을 하면서 더 알게 되었고, 내가 생각했던 범위 훨씬 이상의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어 내 선택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신 모든 존재들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여행을 계속 할 수록 내 선택에 믿음과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며,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여행이 끝나고 태풍의 눈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확신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막연한 불안감에 빠져 내 에너지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겠다고.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내 삶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오롯이 내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준으로 행복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이다.  

 

2. 일상의 모든 순간을 성찰의 계기로 삼자

모든 사람은 존중을 받아야 한다. 적어도 내가 그 사람을 존중했다면 그 사람이 내 생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도 애써 내가 다시 부정적인 반응으로 되풀이 할 필요는 없다. 

 

치트쿨에 있을 때 가방이 뜯어져 동네 수선집에 갔다. 뜯어진 부위가 미끄러운 재질이라 수선해도 몇번 만졌더니 쉽게 뜯어지길래 확실하게 수선하려고 약한 부위를 몇번 더 수선해달라고 했는데 젊은 이모가 이런 내모습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은 모슴으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처음엔 그 사람의 퉁명스러운 태도에 황당하고 불쾌해서 나도 괜시리 퉁명스럽게 반응하고 얼른 값을 치르고 나와버렸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씩씩거렸는데 말이 안통하는 상황에서 내 행동이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구나하고 이해하고 담담히 받아들여 너그럽게 행동했으면 훨씬 서로가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해 반성을 하였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성찰의 계기로 삼자.

 

 

(180812-0816) 마날리, 다시 요양 

 

아그라, 델리에서 식중독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나를 CPR로 살려준 마날리.

어쩌다 보니 마날리한테 다시 신세를 진다.

 

스피티밸리로 떠나기 전 마날리는 우리나라 가을 날씨같이 청량감이 가득했는데 다시 와본 마날리는 우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바쉬쉿 마을 같은 숙소에서 훤히 보였던 산세들이 구름에 가린 날이 많았고 세차게 비가 오기도 했지만 휴식과 재충전을 하는데 문제되지 않았다.

 

(영상) 우기가 한창이었던 마날리

 

아침에 공짜 온천을 즐기고

숙소에 아침세트메뉴를 시켜 호사를 누리고

늘어지게 잤다가 동네 한바퀴 어슬렁 돌아다니고

내 또래 한국 여행자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같이 먹고 어울려 다니기도 하면서

그렇게 소소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 타쿠시와의 재회

 

8월 16일 스피티밸리 키 곰파에서 같이 템플스테이 하던 일본인 여행자 타쿠시(37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마날리에서 다시 보니 참 반가웠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 지 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타쿠시는 대학 졸업 후 도쿄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너무 치열한 업무 환경에 몸, 마음이 소진되고 삶에 회의감을 느껴 남미 쪽으로 여행을 떠났단다. 브라질 여행하던 중 우연히 그곳 전통무술인 카포에라(capoeira)에 빠져 일본인 게하 스탭으로 있으면서 5년을 그곳에서 생활했고 영주권까지 취득했다고 한다. 카포에라 뿐만 아니라 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 이번에 키 곰파에서도 템플 스테이를 했고 전에는 달라이 라마가 계시는 다람살라에서도 공부했다고 하면서 마날리에 있다가 다시 다람살라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라오스에서 1년간 요가 강사로도 활동하는 등 나로서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타쿠시의 얘기가 정말 재밌었고 흥미로웠다.  

 

2. 굿 카르마?, 핸드폰 분실한 한국인 여행자를 도와주다

 

바쉬쉿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과 저녁 약속이 있어 올드 마날리로 넘어가려고 릭샤를 부르려고 하던 중에 한 여행자가 나를 부르길래 봤더니 한국인 여행자였다. 그분이 자초지종 사정을 말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가 중간에 핸드폰이 빠진 것 같다고 하면서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급한 대로 내 폰으로 분실한 휴대폰 전화걸었는데 응답이 없다가 마침 그분 숙소가 올드 마날리쪽이라고 해서 태워다 주셨는데 올드 마날리에서 도착해서 극적으로 습득한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었다. 예기가 잘 돼서 다음날 아침 전달해 주기로 했고 그분께서 감사의 표시로 저녁까지 사주셨다. 

 

50대 독신 건축업 종사하시는 형님이셨는데 핸드폰에 자신이 그동안 여행했던 사진이 다 들어있는데 다른 데다 백업해두지 않아서 그 사진을 못찾을까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는데 이렇게 연락이 닿아서 너무 기쁘다면서 좀전까지 죽을상이었던 표정이 싱글벙글이었다. 솔직히 인도에서 고가의 분실한 핸드폰을 찾을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회의적이었지만 기적같은 결과를 직접 보고서도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내 편견에도 다시 한 번 반성을 하게 되었다.   

 

비록 저녁 약속에 늦었지만 내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니 무척 기뻤다. 특히 치트쿨에서 반성했던 부분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 뿌듯했다.

 

다음날 그 형님께서 핸드폰 무사히 잘 받았다고 연락을 주셨고 앞으로의 여행에 무한한 축복을 빌어주셨다. :)

 

 

인도에서 삼계탕이라니(바쉬쉿 마을 유일한 한식당 오원 까페여 영원하라!)

 

인도에서 송어회라니!(바쉬쉿 마을 유일한 한식당 오원 까페여 영원하라!)

 

라다크에서는 어떤 순간들이 펼쳐질까. 

궁금하면 가보는거다. 레(leh)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