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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806-0807) 인도 스피티밸리(Spiti Valley) 11, 타보(Tabo) '산사태 만나 차량도주 씬을 찍다니'

(180806) Demul-Kaza-Tabo 이동

 

1. Kaza 이동, 마을버스 고장 'Kaza로 복귀할 수 있을까?'

 

Demul에서 흥겨운 마을 추수감사제 축제를 마치고 다시 카자로 복귀, 바로 Tabo 지역으로 넘어가는 일정을 계획했다.

카자로 가는 아침 버스를 타기 전 숙소에서 따뜻한 짜이 한잔을 마시니 온몸에 활기가 돋는다. 점점 현지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가는 듯 아침에 짜이를 안 마시면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지 않다. 어제 장장 2시간 걸린 저녁만찬도 그렇고 따뜻한 밀크티 한잔에도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 지도 채 얼마 지나지 않아 말썽이 일어났다. 우리를 싣고 카자로 데려다 줄 마을버스가 그만 몸살이 나버린 것이다. 버스를 타면서 항상 버스도 오래됐는데다 험난한 4천미터 고산 지대를 다니니까지 하니 당장 고장이 나지 않는게 신기하다란 생각을 했다. 바로 옆에 낭떠러지 길이라도 있으면 버스 브레이크가 고장나 말을 안들으면 바로 황천길이겠구나 상상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가는 길이 아니라 차라리 마을에서 고장이 나 더 큰 사고를 막은 것이니 오히려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사와 차장은 카자 버스회사에 전화를 돌려 상황을 보고하며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을 했다. 카자에서 대체 버스가 온다고 했지만 정확히 언제 올 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도 축제를 보러 온 일부 여행자들도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별 방법이 없어 보였다. 나 역시 별 방도가 없어서 상황을 지켜보다 트럭 한대가 멈추더니 잠시 후 마을 사람들을 우르르 짐칸에 싣고 떠난다. 나도 그 트럭을 타고 싶었으나 다 못 탈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우선이라 생각해 타지 않았다. 트럭이 떠나자 적막감이 더 몰려든다.

 

대책없이 그 자리에서 서성이고 있다가 기적적으로 트럭 한대가 마을에서 나오더니 멈춰선다. 첫 트럭을 타지 못한 마을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올라타자 이 트럭 아니면 못 빠져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치껏 나도 올라탄다. 

 

길이 지그재그에 울퉁불퉁해 짐칸 철판 바닥에 앉는 것은 고행을 예고했기에 맘편히 운전석 바로 뒤 난간에 바싹 붙었는데 시원한 바람과 함께 눈 아래 펼쳐지는 풍광들 보고 있자니 정말 날아갈듯한 기분이었다. 

 

'버스 고장이 안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그 덕분에 다른 더 좋은 일을 만나게 되는구나'

 

당장 눈 앞에 닥친 불행이라고 생각되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담담히 내가 할 수 있는 하면서 기다리다보면 오히려 더 큰 복이 올 수 있다는 경험까지 하면서!

 

카자 마을에 내려 기사 아저씨가 100루피 달라고 하신다. 외국인이라서 돈을 달라고 한건가 생각했는데 마을 사람들도 똑같은 금액을 기사한테 건넨다. 아마 마을에서 한 사람당 100루피씩 내고 타는 조건으로 이미 얘기를 끝냈었던 모양이다. 구출과 함께 의미있는 경험까지 하게 됐는데 100루피는 참 감사한 가격이다. 

 

 

2. Tabo 이동, 산사태 만나 차량도주 씬을 찍다

 

오후 2 30 Tabo행 버스를 탔는데 가다가 정말 황천길로 갈 뻔했다.

 

Dhankar 마을 지나면서 먹구름이 몰려와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데 느낌이 좋지 못했다. 그러다 쾅 버스에 뭔가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다. 옆 경사로에 돌이 굴러와 곧장 버스에 부딪친 것이었다. 버스 앞 유리창은 금이 가고 기사는 경사구간을 벗어나려고 더 밟아대고 진심으로 옆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질까봐 조마조마하고 무서웠다. 영화에서 보는 차량 도주씬을 리얼로 체험하게 될 줄이야. 

 

'아니 스피티 밸리 지역은 비 안 내리는 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난리람'

 

그렇게 Tabo에 간신히 도착했지만 비는 계속 내려 숙소 잡는데 애먹었다.  버스를 같이 탔던 유럽 여자, 인도 남자 여행자 2명도 같이 내렸다. 비록 생사를 같이 했지만 특히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어필할려고 그러는지 말이 진짜 많았다.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귀에 꽂히듯 들리니까 안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괜히 더 짜증이 났다. 처음에는 같이 숙소를 찾아보기로 얘기하다 중간에 내가 먼저 처음 간 숙소에 묵겠다고 하고 슬그머니 두 친구를 보내버렸다. 아마 그 친구들도 내가 따로 있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팍팍 받았을 것 같아 미안했지만 그냥 혼자 있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180807) Tabo-Kaza 복귀

 

1. 발품팔아 찾은 숙소가 파리지옥이라니

 

아침에 잠에서 깬 것에 평소보다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Tabo 마을에서 조금 더 싼 숙소에 묵겠다고 궂은 날씨 속에 이리저리 발품팔아 택한 숙소가 지내고 보니 상태가 너무나 좋지 못했다. 얼마나 인상이 강렬했는지 따로 이 숙소를 통해 확인해야 될 사항을 메모로 남겨놓았다. 

 

- 방 조금 좋다고 대로변 옆에 숙소 잡지말기

: 차 지나가는 소음에, 비포장도로라 흙먼지 풀풀

 

- 화장실(물 잘 나오는지) 꼭 확인

: 사장님이 안쓰는 방 화장실을 쓰라고해서 망정이지 원래 화장실 써야 됐다면 도망치고 싶었을듯

 

- 침구류 상태 확인

: 그렇게 예민하지 않은 나조차 언제 빨았는지 모를 침구류를 써야 했을때 합리적인 조건으로 숙소를 운영하던 다른 주인분들의 제안을 뿌리친 점을 깊이 후회했음

 

- 벌레 사체 유무 확인

: 벌레 죽어있는게 있다면 그 숙소는 벌레가 많을 가능성이 높으며 숙소에서 잊을 수 없는 파리지옥을 경험함. 눈길 닿는 데마다 파리가 자리 잡고 있는거 보고 경악. 방 둘러봤을 땐 왜 이게 보이지 않았을까 의문이 듦. 가만히 있으면 파리가 나한테 달려들어 신경이 곤두서서 제대로 쉬지도 못함. 죽이기엔 숫자가 너무 많아 창문열고 억지로 내보냈는데 어디서 또 다시 기어들어옴. 이놈들이 방안 구석구석 훑어다녔을 거 생각하면 병에 안걸린걸 다행이라고 생각.

 

2. Tabo 곰파 

 

아침 법회시간에 맞춰서 곰파를 들어가본다. 곰파는 돌산에 둘러쌓인 곳에 평평한 대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파놓은 석굴들도 보였는데 스님들의 수행을 위한 곳이었다고 한다. 돌산 주위로 안개가 자욱이 껴있어 신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10세기에 세워진 티베트 구게(Guge) 왕국이 992년에 지은 tabo 곰파는 옛 유적들을 보존한 구역과 현대식 건물로 스님들이 생활하는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곱게 칠해진 신 곰파에 가보니 법회는 끝이 났는지 볼 수 없었다. 대신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도 앳된 스님들이 곰파 밖에서 물에 젖은 차가운 바닥에 앉아 불경을 외우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좋았지만 혹여 방해될까 싶어 한쪽 구석에 나도 조용히 그 모습들을 담으며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타보 곰파. 10세기에 세워진 티베트 구게(Guge) 왕국이  992년에 지었다(론리플래닛)

 

현대식으로 잘 지은 신곰파에서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었다

 

돌산에 낀 안개가 곰파 분위기를 더해준다

 

옛 곰파지역. 부서진 탑들을 지나 진흙 빛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입체적인 불상, 벽화, 유물들을 볼 수 있는데 당시 티베트의 예술 수준과 더불어 왕국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가늠케 해준다. 

 

 

3. Kaza 복귀

 

우여곡절 끝에 카자에 복귀했다. 카자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Tabo에서 바로가는 편이 없고 서쪽에 더 큰 마을에서 넘어오는 버스를 타야했다. 대략적인 시간은 론리플래닛에 나와있으나 숙소 주인은 도로 상황이나 변수가 많아 정확히 언제 오는 지는 알 수 없단다. 또 버스가 일찍 갈 수도 있다고 해서 미리 가 있으라고 해서 무작정 길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비 내리는 날씨 속에 가볍게? 2시간 정도 기다리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버스가 온다.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만만치 않았지만 험한 길 뚫고 와준 기사님 버스한테 드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안식처이자 베이스캠프인 kaza로 가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