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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31-0803) 인도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9, 무드(Mudh) '핀 밸리(Pin Valley)에 발을 딛다'

(180731-0801) 카자(Kaza) 복귀, 요양

 

#1 카자 복귀

 

애초 계획은 단카르(Dhankar) 이후 타보(tabo)나 핀 밸리(Pin Valley) 무드(mudh)로 가려고 했으나 'Demul 조난 사건'으로 심신이 몹시 지쳐있었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Tabo 마을 이후부터는 중국 국경과 가까워 카자(Kaza) 관공서에서 따로 Permit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고 해서 일단 카자로 복귀하기로 결정하였다. Rema 마을에서 온몸에 알 수 없는 벌레한테 잔뜩 물려서 가려움증이 컸고 특히 축축한 양말, 트레킹화를 오래 신고 다녀야 했던 발목 아래 부분은 자국이 더 커지고 진물이 나는 등 치료가 시급해 보였다. 

 

단카르에서는 카자로 가는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아랫마을로 가서 Tabo쪽에서 오는 버스를 잡아타야 한단다. 그때그때 교통상황에 따라 마을 경유 시간이 들죽날죽했지만 어찌됐든 버스를 놓치면 대책이 없기에 예상도착시간보다 좀더 일찍 나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어제 만났던 유럽 삼총사 애들이 현지 기사를 대동해 지프를 빌려 여행 중이었는데 카자 가는 길이라고 같이 가잔다. 영국, 체코 일행들과 함께 서로 낑겨타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같이 이동하는 의리를 보여주어 감동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줄 걸~

 

 

#2 보건소 진료와 퍼밋 통행증 발급받기

 

카자 마을로 복귀 후 보건진료소부터 먼저 찾았다. Rema 마을 이후 온몸에 두드러기난 것처럼 알수 없는 벌레에 물렸는데 특히 발목 부분이 심해졌다.

 

앳되 보이는 여자 의사분이 상태를 보더니 등산화에 습한 양말을 신고 장시간 트레킹을 다니다보니 발목 아래가 다른 부위보다 세균 감염으로 더 악화됐다고 하면서 소독약과 연고를 처방해주셨다.

 

진료비 약제비 무료인 듯 했으나 빨간 소독약 재고가 없어 사설 약국에서 따로 구입해야 했다. 데이터 안 터지는 고산지대 마을에서 진찰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더 큰 감사함이 들었다.

 

 

퍼밋 통행증의 정식명칭은 'Inner Line Permit'으로 외국인은 티베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안보 지역(Tabo~Reckong Peo 사이 구역)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퍼밋 통행증을 사전에 발급받아야 한다.

 

관할 관공서 앞에서 접수 서류를 작성한 뒤 담당자를 찾아가니 세상 편한 표정을 짓는 게 인상적이었던 나이 지긋하신 분이셨다. 왜 가냐고 묻고 나를 한번 쓱 보더니 최장체류기간인 14일치 만땅으로 주신다.

 

통행증 발급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지만 담당자 분이 스피티 밸리를 지면 나오는 키나우르(Kinnaur) 지역에 여행지를 추천해 주신다. 레콩 페오(Reckong Peo)에서 좀 더 올라가면 나오는 칼파(kalpa)와 심라(simla)가는 길 쪽에서 옆으로 빠져서 한참 들어가면 나오는 치트쿨(chitkul)까지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하고서야 날 풀어주셨다.

 

 

#3 돌아온 카자 마을의 정겨운 일상

 

보건소 진료와 퍼밋 통행증 발급에 이어서 신변정리를 계속 이어갔다.

 

트레킹하면서 찢어진 바람먹이 점퍼와 등산복 바지를 꿰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킴(Hikkim)마을 우체국이 우표가 떨어져 가족 지인들에게 못 부친 엽서와 함께 카자에 와서 적은 새 엽서까지 같이 부쳤다. 언제 도착할지 기약이 없는 아니 도착이나 할 수 있을지..

 

(추가) 2달이 지나 집에서 엽서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 감격이란!)

 

저녁에 물 사러 밖에 나왔다가 별바다를 보았는데 계속 고개 들며 가면서 와와 감탄했다. 수많은 별들이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등대 같은 신호들을 조우하니  괜스레 뭔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눈물이 핑 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제자리에서 빛을 내는 사람이고 싶다.'

 

이런 멋진 자연의 선물을 누리지 못한 채 뭔가에 쫓기듯 산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인 것 같다.

 

 

다시 찾아온 카자 마을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마날리에서 넘어온 듯한 옷 뭉치더미로 아침일찍 각 마을에서 버스타고 왔을 아지매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카자(kaza) 버스정류장 마니차는 새로 곱게 단장 중. 주변에서는 상인과 승객들로 왁자지껄했지만 장인은 오직 자신과 마니차만 존재하는듯 섬세한 손길로 마니차를 완성해 나갔다 
기름진 볶음밥과 양고기 군만두/본능적으로 기름진 음식이 끌렸고 흡입했다. 볶음밥에는 전에 없었던 스피티밸리 어느 마을에서 수확했을 완두콩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180802) 핀 밸리(Pin Valley) 무드(Mudh) 마을 이동, '타보(Tabo)? 아니 무드(mudh)!'

 

#1 아침 버스 정류장 직원한테서 계시?를 받다

 

오늘 Tabo에 갔다가 내일 돌아오는 일정으로 계획을 짰다. Tabo가는 버스가 아침에 있어 일찍 움직인다. 

 

매표소 아저씨가 어디 갈거냐고 물어보길래 무심결에 Tabo갔다가 다시 Kaza로 와서 Mudh 가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대뜸 퍼밋 받았는데 왜 Kaza로 돌아오냐면서 Mudh 갔다가 Tabo, Nako, Reckong Peo로 넘어가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북쪽인 레를 염두하고 있어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Nako, Peo까지는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직원 분의 단호한 어조에 처음엔 내가 그렇게 가겠다는데 뭔 말이 많은지 괜스레 짜증만 가득 났다. 그러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Mudh는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지 원래 갈 장소였고, 어제 퍼밋 발급해주던 직원도 Peo쪽으로도 꼭 가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났따 나보다는 2명의 현지 전문가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니 어쩌면 '계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들자 당일 오후에 출발하는 Mudh행 버스를 타기로 마음을 바꿨다. 

 

넉넉잡아 일주일 정도 잡으면 다 돌아보고도 남는데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레 가는 걸 염두해 너무 스스로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들었다.

 

이미 이 여행 자체가 보너스 임을 명심하자.

어쩌면 생각지 못한 두근대는 새로운 인연,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

 

 

#2 호주인 아저씨와의 만남, '나는 지금 마지막 20대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

 

이런 내 마음에 부처님께서 좋은 인연으로 답해주신 것일까. 오후 Mudh행 버스를 기다리며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인상좋은 호주인 아저씨가 들어오길래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눈다.

 

두달 스피티 밸리 일정을 잡아 현재 3주째 머물고 있단다. 우연히 스피티 밸리를 알게 된 이후 스피티 밸리에 반해 몇차례 더 방문한 내공깊은 여행자였다. 내가 스피티밸리 여행을 마친 후 레로 갈까 생각 중이라고 말하자 그는 카자에서 레 가는 길에 Chandratal Lake 호수를 반드시 보고 가라고 추천해준다. 

 

무엇보다 그에게 고마웠던건 여행하면서 가졌던 고민을 많이 들어준 점이었다. 1년 인턴 생활이 끝나고 다시 취업을 고민해야 되는 시점에 여행을 떠나온 게 잘한 선택인지, 여행 끝나고 나서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가끔씩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나이대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면서 그 과정도 편안하게 생각하고 즐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나는 20대 마지막 순간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고. 돈이 없으면 돈 버는데 시간을 써야하는 현실의 굴레에 벗어나 정말 감사하게도 지금 나에게는 여행할 수 있는 시간과 돈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건강한 에너지가 있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

 

돈을 쫓고 돈에 쫓기지 말자.

한걸음 물러서서 시야를 넓히고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하자.

그 경험이야말로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있는 내 소중한 삶의 자산이 될 것임을 잊지 말자.

 

 

#3 Mudh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kaza에서 mudh 마을로 가는 대략적인 이동경로는 이렇다.

 

먼저 kaza에서 505 국도를 따라 16km를 내리 달린다. dhankar 가기 전에 위치한 다리를 건너가는데 미지의 핀 밸리(pin velley)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이다. 버스는 다리에서 핀 밸리의 버스로 드나드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들과 kungri, sagnam 같은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마을을 지나 30km를 달려 마침내 핀밸리의 마지막 종착지인 mudh 마을로 안내한다.

 

다리에서 mudh 마을로 도착하기까지 30km 구간은 이동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났다. 핀 밸리 로컬 마을들을 구석구석 볼 수 있어서 82루피(한화 약 1,400원)로 이런 과분한 혜택을 누리게 되다니 매표소 직원 아저씨께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험하고 먼길을 다니는데 승객들을 꽉 채우는 것도 아니고 버스회사가 손해보고 운행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영상) 핀 밸리(Pin Valley) 무드(Mudh) 마을 가는 길>

 

(180803) 무드(Mudh) 2일차, '종합선물세트 Mudh 마을'

 

전날 Mudh 마을에 도착해 Dikit 홈스테이에 짐을 풀었다. 사실 버스에 내렸을 때 주인 아저씨가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내게 호객을 해왔다. 의사소통도 원할하지 못해 처음에는 인상이 좋지 못했다. 아저씨네 숙소를 둘러보고 못미더운 마음에 다른 숙소도 몇군데를 확인해 보았다. 이게 왠 걸, 주인 아저씨네가 제일 좋다는 걸 알고 뒤늦게서야 그쪽으로 숙소를 정했다.

 

Dikit 홈스테이/ Dorje 주인 아저씨의 딸아이 이름이 Dikit이었다 

 

Mudh 마을은 핀 파르바티 패스((Pin Parvati, 5,319미터)와 바바 패스 (Bhaba Pass, 4,850미터)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거쳐가야 하는 곳이다.  

 

Mudh 마을은 핀 파르바티 패스(Pin Parvati, 5,319미터)와 바바 패스 (Bhaba Pass, 4,850미터)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거쳐가야 하는 곳이다(지도 출처: 론리플래닛 인도) 
Mudh 마을에서 바라본 핀 밸리(Pin Valley)

 

핀 파르바티 패스와 바바 패스 트레킹은 못하지만 핀 밸리(Pin Valley) 마을은 어떤 곳인지 궁금해 동네 한량처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만화에서 나올법한 앙증맞은 송아지가 어디론가 가길래 뒷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닌다. 그러다가 액자에서 나올법한 풍경 속에 한 오누이가 집 옆 마당에서 햇살을 쬐며 한가로이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평화롭고 따뜻해 보이던지. 웬만해서는 그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여행자로서 욕심을 버릴 수 없어 바디랭귀지로 사진을 찍어 이 순간을 기록한다. 

 

이마 한가운데 흰점이 콕 박힌 만화에서 나올법한 귀여운 송아지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 뒷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낯선 이방인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오누이에게 항상 마음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험상궂은 외모가 무서울 법 했을텐데도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다가오는 녀석의 저 사슴같은 눈망울을 보라. 뒤에 누나도 어찌나 인상이 선하던지.

 

정겨운 마을 구경을 마치고 핀 강 건너편에서 마을 전경을 보고 싶어 트레킹 길을 따라 좀 더 멀리 가본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Mudh 마을/핀 밸리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마을 뒤로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는 산세가 무척 인상적다.

 

강 건너편에서 무드 마을 주변 사진을 찍고 있다가 20명쯤 되는 그룹이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오고 있었다. 앞에는 더이상 민가도 없어보이는 적막한 풍경들만 가득한데 이사람들은 어디서 나타난건지 궁금해 한 일행한테 말을 걸어보았다. 자기들은 일주일 일정으로 Bhaba Pass 트레킹을 하고 있다면서 무드 마을 도착이 마지막 일정이라고 했다.  먹고 자는 것은 어떻게 해결했냐고 묻자 현지 트레킹 업체를 통해 오는 거라 돈을 내면 가이드, 식량과 텐트, 짐들을 이고갈 당나귀들까지 준비해준단다. 다들 지쳐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마지막이라 그런지 표정이 밝았다.

 

스피티밸리에서 당일에 마을과 마을을 오갈 수 있는 트레킹만 해도 가슴 벅찬 경험이었는데 최소한의 짐들만 가지고 일주일 넘게 대자연을 누비는 경험이라니.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벅찼다

 

Pin Parvati와 Bhaba 패스 트레킹길 /마침 Bhaba 패스에서 넘어오는 그룹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보며 핀 밸리를 먼저 오고갔을 옛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Farka 초등학교/처음에 창고인줄 알았다./추운 산속 날씨를 반영한듯 작지만 무척 튼튼해 보였다.

 

Bhaba 패스에서 막 넘어온 일행들까지 운좋게 만나 따끈따끈한 후기까지 전해 들으니 어느덧 해가 넘어간다. 첫째날에는 곯아떨어져 몰랐는데  Mudh 마을의 밤하늘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별자리 앱을 통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별자리, 저 별자리 찾아 보았다.  목성, 화성도 눈에 띄었는데 화성은 불그스름한 색이 육안으로도 보여 나중에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Mudh 마을에 오면서 만난 풍경에서부터 벌써 가슴이 벅찼는데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 마을에서 펼쳐지는 핀 밸리의 아득한 풍경, 생각지 못한 별천지까지...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다. 이 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쉽다. 별을 좀 더 보고 자야겠다.

 

 Dorje 아저씨 일 도와주러 온 친척 아디다스 청년과 홈스테이 마스코트이자 개구쟁이 딸 Dikit과 함께

 

<(영상) 핀 밸리(Pin Valley) 무드(Mudh) 마을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