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28) 인도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6, 마을 트레킹 3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180728) 데물(demul)-랄룽(lhalung) 마을 트레킹

 

1. 집안굿 구경, 동질감을 느끼다

 

전날 내리던 비가 오늘 아침에도 계속 부슬부슬 내린다. 어제 장시간 트레킹과 저녁 과식으로(아저씨가 푸짐하게 만들어 주신거 다 받아먹음, 유일하게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이라 일단 먹고 생각하자란 마인드였음) 몸이 무거워 하루 더 머무를까 밍기적 거린다.  비가 언제 그칠지 몰라 10시 쯤에 다음 마을로 이동하기로 결정하기로 했다. 숙박비 드리려고 거실로 갔더니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무당으로 보이는 사람과 악사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양 옆으로 친지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들어와도 된다고 제스처를 취해 엉겁결에 나도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잠시후 악사들의 요란한 연주가  시작되고 곧이어 무당이 독주를 벌컥 들이켰다. 곧 무당은 무언가에 빙의된 듯이 혼자 중얼중얼 거리더니 뭐라 말하기 시작했고 친지들은 무당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다. 

 

굿이 끝나고 무당과 일행들은 복비를 받고 자리를 떠났다. 우리나라도 집안에 큰 우환이 있을 때 굿을 하곤 하는데 티베트 전통을 간직한 마을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되니 무척 흥미로웠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동질감이 느껴졌다.  

 

 

데물 마을 전경/랄룽 마을은 정면에 보이는 협곡을 급경사로 내려가다 평지에서 다시 올라가는 길이었다

 

 

 

2. 노가이드 트레킹 감행, 객기 부리다 저승길 패스트트랙 탈 뻔

 

목적지인 랄룽(lhalung)마을 노가이드 트레킹을 감행했다. 전날 코믹-데물 구간을 노가이드로 완주한 경험도 있었고 '맵스미' 지도를 통해 확인한 결과, 계곡을 쭉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형태인 비교적 단순한 루트로 판단되어 결정했다. 

 

하지만 한가지 변수를 고려못했으니 바로 불규칙한 기상 상황 속에 계곡 속으로 들어가는 위험성을 인식못한 것..

 

'비올 때 절대 계곡 가까이 가지 말것'

 

 

Demul과 Lhalung 마을구간 차도(왼쪽)와 지름길(오른쪽) 나타내는 지도/Demul과 Lhalung 마을 사이 지름길은 오직 사람과 당나귀만 지나다닐 수 있는 좀은 길이다. 차로 못가는 것을 두다리로 지나가며 협곡 사이사이를 누비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행복했다. 그 행복은 비록 잠시 뿐이었지만..

 

데물 마을에서는 곧장 내리막길 급경사 코스였다. 비가 와 흙이 질고 미끄러워 더 조심히 이동해야 해 에너지 소모가 커서 힘들었다. 계곡 밑에 다다르니 다리가 보였다. 지난 며칠 사이 비가 많이 내렸던지 계곡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고 굉음을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맵스미를 확인해 보니 다리를 사이로 2가지 길이 있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곧장 직진하면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와 그 길로 향한다. 

 

 

저 굽이진 협곡 사이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길을 가면서 다리 건너편 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비슷하다가 내가 있는 쪽은 점점 더 험해졌다. 처음엔 지름길이라 그런가보다고 생각하면서 길에 여러 발자국들도 나있어 '이것만 넘어가면 좋은 길 나오겠지'하며 그대로 나갔다. 그러다 길목에 사람 무릎 높이 정도의 누가 일부러 심어놓은 듯한 나무 3그루가 길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길 한가운데 웬 나무들이 심어져있담'하고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 나무들은 비가내려 길이 무너졌으니 돌아가라는 뜻이었지만 당시에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대가는 곧바로 닥쳐왔다.

 

길도 없는 경사진 곳도 펄쩍 뛰어넘으며 갔다. 갈수록 길은 좁아져갔고 나중에는 불어난 계곡물이 바로 옆까지 접근해왔다. 경사진 비탈면을 걷고 있어서 발 한번 잘못 딛었다가는 계곡물에 휩쓸릴까봐 바싹 붙어 걸어야했다. 가까스로 맵스미에서 찍어뒀던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다리가 보였다. 하지만 내가 서있던 지점에서 큰 바위가 가로막아서 있어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바위를 옆으로 비스듬히 짚고 올라가면 갈 수 있을까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다 어느 순간 아 이러다 정말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바위 바로 옆은 불어난 계곡물로 귀가 먹먹할 정도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계속 내리고 있는 비로 가로막고 있던 바위표면은 이미 물기가 젖어 있었다. 미끌거리는 바위를 잘못 딛는 순간 바로 계곡물에 빠지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게다가 그렇게 모험을 걸고 바위를 넘어도 그 후에 갈만한 길이 있는지 바위 앞 시야에 가려 알 수가 없었다. 만약 길이 없다면 바위를 다시 넘어와야 하는데 그 생각까지 미치자 미친 짓이라걸 깨달았다.

 

'사람이 한번 눈이 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안보인다더니'

눈앞에 다리가 보이니까 이것만 어떻게든 넘으면 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세워 버렸다. 

 

멀리 힘겹게 왔지만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길을 갈 수 없기에 어떻게 해서든 다시 다리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야했다.

 

  <(영상) 사선을 넘기전>  멀리서 볼때는 유유히 지나가는 물줄기였으나 가까이 다가가보니 무엇이든 집어삼킬듯 맹렬한 기세로 흘러가고 있었다. 자연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한 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나서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돌아가려고 하니 곧 무거운 배낭메고 이런 말도 안되는 길을 귀신에 홀리듯 지나왔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고 다리가 풀렸다.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갈래 길에서 만난 다리까지 거리가 꽤 됐으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했다. 일단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점심으로 싸온 버터로티를 먹으며 침착하자고 속으로 되뇌였다.

 

중간에 무너져내린 경사길이 제일 위험한 구간이었다. 무거운 배낭메고는 무게를 지지해줄 곳이 마땅치 않아 바로 미끄러져 계곡으로 빠질 수 있었다. 고민 끝에 중요 소지품은 지퍼맥에 밀봉시키고 휴대용 가방에 따로 빼서 가져가기로 하고, 배낭은 강 건너편으로 던지기로 결정했다.

 

비가 내려 물살이 세고 강폭도 넓어져 자칫 잘못 던지면 곧바로 급류에 휩쓸릴 가능성 있었다. 그나마 강폭이 제일 좁은 구간이 어디인지 주변을 샅샅이 탐색했야했다. 혹시나 몰라 배낭을 던지기 전에 미리 평평한 곳에서 연습을 몇차례씩 하고 난 뒤 봐둔 장소에서 있는 힘껏 배낭을 던졌다. 연습한 보람이 있어 배낭은 무사히 안착했고 이제 내 몸만 잘 빠져나가는 것만 남았다.

 

예상대로 경사길은 정말 위험한 길이었다. 계속 비가 내린 탓에 토양이 단단하지 못했고 한쪽 발을 그나마 튀어나온 곳에 딛고 건너편으로 발을 뻗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어찌 손쓸 방도 없이 삽시간에 미끄러져 내려갔다. 

 

정말 다행히 조금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닿아 계곡물 바로 앞에서 멈출 수 있었다. 계곡물에 안빠진게 천만다행이었지만 다시 어떻게 건너편 지점으로 올라갈 지 막막했다. 근처 앙상해 보였지만 뿌리가 억세게 자리잡고 있던 가시풀더미가 보였다. 식은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가져온 장갑이 있어 가시풀더미를 잡고 올라서 간신히 문제의 장소를 지나갈 수있었다.  그때 미끄러진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차고 있던 시계줄이 끊어질 정도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가벼운 찰과상 정도만 입었으니 천만 다행이었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 길에서 내가 갔던 길을 보니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길은 위험하니 사용말라고 울타리를 쳤는데도 조금 더 빨리 가보겠다고 객기를 부렸다. 현장 상황을 우선시하고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채 멀쩡한 길을 놔두고 휴대폰에만 의지해 무리하게 진행한 점이 화근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맵스미에도 분명히 사용하지 말라고 업데이트가 됐지만 당시엔 old path쪽도 점선 표시가 나 있었다. 중간에 Rama란 마을 가족 분들의 친절한 호의 덕분에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

 

 

3. Rema - Lhalung 마을,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

 

젖먹던 힘으로 던졌던 배낭을 들쳐매고 바위 앞에 가로막혀 가지 못한 차도까지 빠져나오자 진이 다 빠졌다. 이곳에서  Lhalung 마을은 내리 오르막길이어서 쉴곳을 찾아 근처 Rema란 마을로 무작장 들어갔다.

 

마을 어귀에서 물긷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몇마디 영어를 할 줄 알아 처음에는 다정하게 어디서 왔냐고 안부묻더니 나중에는 자기가 네팔에서 왔는데 고향갈 차비가 없다고 돈을 달라고 본색을 드러냈다. 죽을 고비 넘겨서 겨우 마을에 왔는데 나한테 돈 달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평상시에는 대꾸할 가치조차 못느꼈을테지만 생사를 오간 직후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눈 똑바로 쳐다보고 우리말로 쌍욕을 퍼부었다. 진심으로 죽빵을 내갈기고 싶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내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죽일 듯이 달려드니까 미친놈이라 생각했는지 슬그머니 내뺐다.

 

근처 민가에서 그물치고 족구하는 청년들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쳐 인사 나누자 그 친구들이 짜이 물어보길래  감사하다고 하고 염치불구하고 주저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다(당시에 녹초가 되어 몰랐었는데 거기 있다가 이름 모를 벌레한테 무진장 물려서 두고두고 고생했다)

 

혹시 몰라 조금 남겨둔 버터로티가 딱딱하게 굳어서 정말 안넘어갔지만 살기위해 먹었다. 청년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따뜻한 짜이를 내오셨다. 따뜻함과 달달함이 동시에 몸 속 구석구석 퍼져나가자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어디서 외국인이 튀어나와 집안에 성큼 들어오니 많이 당황했을 법한데도 자리를 내주시고 짜이까지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2시간 후에 카자에서 출발해 랄룽으로 가는 로컬 버스가 rema 마을을 지나간다고 했다. 마음같아서는 쉴 곳도 확보했겠다 염치불구하고 기다렸다가 버스타고 갈까 했다. 그런데 호의를 보여준 가족 분들께 민폐만 너무 끼치고 가는 것 같았고 그 상황에서 이대로 버스타면 허무할 것 같아(절대 그런게 아닌데) 오기가 생겨 내 다리로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정확히는 내 어리석은 생각과 무모한 행동으로 위험을 자초한 상황이 스스로가 한심스럽고 화가 나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랄룽마을까지 가는 2시간 오르막 길은 온전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지금 상황이 무척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내 스스로를 그렇게 내팽개치고만 있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었다.  실수를 했지만 결정적 순간에 잘 판단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기에 어찌됐든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지 않았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일단 숙소만 잡고 보자는 마음으로 떼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랄룽마을을 가리키는 입구를 지나 마을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생사를 오가며 그토록 염원했던 장소인 것도 있었지만 깎아지는 절벽 위에 초록빛이 물든  비현실적인 장소에서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나니 내가 그렇게 고생한 이유가 다 여기에 들어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눈부셨고 아름다웠다. 

 

 

 랄룽(Lhalung) 마을/ 생사를 오간 끝에 만난 비현실적인 풍경에 너무나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지옥과 천당을 오고간 하루에서 느낀 교훈은 이렇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

 

오늘 랄룽 마을에 꼭 가야한다는 마음, 빨리 도착하고 싶다는 내 마음에 눈이 멀어 욕심을 부렸고, 그 결과 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맞닥뜨렸다. 현지에 왔으면 현지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 흐름에 따르는 방향을 생각했다면 결코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방향은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속도만을 생각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며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교훈을 주신 스피티 밸리 자연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