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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27) 인도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5, 마을 트레킹 2 ' 몸의 허기는 채워졌고 마음은 평화로 물들었네'

(180727) 코믹(Komic)-데물(Demul) 마을 트레킹 

1. 소탐대실 하지 말자

 

전날 묵은 Komic 마을 숙소는 두가지 가격 옵션이 있었다.

 

첫번째는 3인 도미토리 룸에 음식 세끼 포함해서 600루피

두번째는 같은 방에 음식 비포함해서 300루피.

 

싼 가격에 혹해 두번째를 택했는데 곧 후회했다.

 

식당에서 음식 주문해도 600루피는 안넘겠지 했는데 일단 식당 메뉴 가격 자체가 싸지 않았다. 600루피을 넘기면 내 선택이 바보같은 행동이었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 간신히 터져나오는 식욕을 참고 기본 메뉴만 주문해서 먹었다. 식당이라 그냥 홈스테이에서 주던 짜이를 돈주고 사먹어야 했을 때 얼마나 좌절했던지. 간신히 600루피를 맞출 수 있었지만 찝찝한 기분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기본적으로 마을 홈스테이는 600루피에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고 양도 부족하지 않아 합리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확인한 좋은? 경험이었다.

 

스피티 밸리 마을 트레킹 거리 중 가장 긴 16km 코스라 아침 일찍 이동한다.

이동하기 전 Tangyud 곰파에 들러 부처님께 전날 행동의 반성과 오늘 트레킹을 사고없이 잘 가게 해달라고 넙죽 절을 올린다. 

 

Komic 마을 Tangyud Monastery 내부전경

 

 

2. Komic-Demul 마을 트레킹

Komic-Demul 구간은 스피티밸리 마을 트레킹 중 가장 긴 거리이다(트레킹로 갔을 경우 16km, 차도로만 갔을 경우 26km, 고도 4천미터 이상) 론리플래닛에서 로컬가이드를 대동할 것을 권장했으나 혼자 가보기로 했다.

 

저번 Chichim 마을 귀구(鬼口) 동굴과 같이 정보도 없고 로컬사람들만 아는 장소와 달리 맵스미 지도에 트레킹로가 찍혀있고 방향도 단순해 그냥 모르겠다 싶으면 차도로 쭉 가자는 생각에 단독 트레킹을 도전했다.

 

 

차도로만 가면 26km 거리를 구불구불 가야했지만 중간에 빠져 4749고지를 지나가는 구간은 거리도 더 짧았고 스피티 밸리의 숨겨진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어 트레킹 선택한 내 스스로에게 특급 칭찬을 해주었다 :)   

 

이미 Komic 마을 4,500m 지점이라 오르막보다 평지가 많아 수월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종일 비 내리더니 중간쯤 비가 한두방을 떨어지기 시작,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부랴부랴 우비 챙겨입고 배낭 레인커버 씌우고 혼자 난리법석 떨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난리람.'

날씨가 좋지 않아 나홀로 트레킹 해보겠다고 괜한 호기를 부린 것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다행히 비는 계속 내렸지만  빗줄기는 가랑비 정도로 약해졌다. 길따라 가다보니 저 앞에서 약 10명쯤 되는 그룹여행자들이 보여(나중에 확인해보니 영국 10대 청소년 그룹) 지금 잘 찾아가고 있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 대자연에 둘러싸여 마주하고 있으니 처음엔 마냥 신이 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마주하는 웅장한 풍경을 보며 받은 벅찬 감동으로 무서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Komic 마을
출렁거리는 산들의 파도를 넘는 과정은 오로지 나 스스로 감당해야한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만들어낸 발자국들의 이정표가 있었고 그 이정표의 존재만으로 힘이 되었다.   

 

이정표 없는 길이라 오직 맵스미 오프라인 지도에 찍힌 GPS 위치에만 의존하며 걸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과 여행자들이 만들어낸 발자국들로 다져진 길과 돌로 쌓은 탑이 다음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주어 한결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나홀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데물(Demul) 마을에 도착하기 앞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검정소와 하얗고 샛노란 키작은 야생화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대자연과 함께하는 소를 보며 나는 같은 가축으로 태어나 좁은 우리에 옥수수 사료를 먹으며 갇혀사는 다른 소들의 처지가 떠올랐다.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소로 향했던 시선은 많은 수의 인간들 역시도 어딘가에 얽히고설켜 있어 자유를 거세당한채 살아가고 있는 운명은 왜 생겨나는지로 옮겨갔다.  

 

대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소를 보며 같은 가축으로 태어났지만 좁은 우리에서 갇혀지내는 소의 처지와 자유를 거세당한채 살아가는 우리 삶까지 생각이 옮겨갔다.

 

황량함만 가득한 고산지대에서도 생명들은 뿌리를 박고 꽃을 피워냈다

 

데물(Demul) 마을

 

3. 데물(Demul) 마을

  #1 Demul 마을 우체국에서 두번째 퇴짜를 맞다

 

스피티 밸리에서 마을을 볼 때마다 '이런 곳에 정말 사람들이 살고있다는 말이야?'란 느낌을 받는다. 척박하고 메마른 산 깊숙한 곳에 인간이 일구어낸 초록 빛깔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울림을 준다.

 

Demul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공동체 간의 결속이 강했던 마을이었다. 마을 이장(코디네이터) 주관하에 정해진 순번대로 홈스테이를 배정하는 구조였다. 마을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홈스테이 공동운영 시스템을 몰라 지나가는 마을사람 붙잡고 샨따누가 알려준 홈스테이 이름을 연신 말하여 찾아가려고 했다. 그 마을사람은 '메뉴얼대로' 마을이장님 댁으로 데려다 주었다. 친절한 이장 가족분들이 짜이를 대접해 주었고 이장님은 숙박 명부를 확인해 보더니 차례가 된 홈스테이 집으로 직접 데려다주셨다.  

 

배정받은 홈스테이에 짐을 풀고 마을 산책을 나가보니 이곳에도 우체국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Hikkim 마을 우체국에서 보기좋게 퇴짜를 맞고 혹시 여기서 부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동네 꼬맹이들을 앞세워 우체국을 갔으나 문이 닫혀져 있었다. 

 

'아직 영업시간인데 어디로 가셨나?'

 

동네 골목대장들이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과 뭔가 얘기를 나누더니 마을 꼭대기 예배당에 우체국 직원이 있다고 직접 데려다준다. 어렵사리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우체국 직원 아저씨를 만났으나 지금 우체국은 휴가 시즌이라 카자를 제외한 나머지 우체국들은 우표가 없다고 하셨다. 

 

Demul 마을에서까지 퇴짜라니.. 다시 한 번 Kaza가 대도시임을 깨닫는다.

 

  #2 Tuktanmakpa 홈스테이, '같은 지구인으로서 무한한 반성이 들다'

   - 물 사용과 관련하여

 

내가 묵고 있는 Tuktanmakpa 홈스테이 주인 아저씨를 관찰해보니 Demul 마을은 물이 상당히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을 산 쪽에서 떠오는지 큰 대야와 약수통에 각각 보관해 사용하는 식이었다.  종일 트레킹해 샤워를 하고싶어 아저씨한테 "water, 빠니, shower"라고 말하며 씻는 시늉을 보이자 아저씨께서 알아들으시며 말린 야크똥에 불을 붙여 물을 데워주셨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아저씨가 양동이에 물을 반 채워 주셨다. 일단 주셨으니 양동이를 받고나왔는데 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샤워라고 말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받은 물은 겨우 세수와 발정도 씻을 양밖에 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물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자 아저씨는 인심좋게? 양동이에 한 바가지를 가득 채워주셨다.

 

양동이에 3분의 2 채워진 물로 샤워를 감행했다. 샤워를 하면서도 무사히 끝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득했지만 물한방울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위해 온 집중을 다하니 정말 놀랍게도 물이 남아서 속옷 빨래까지 돌린 기적을 체험했다.

 

샤워기에서 콸콸 물이 쏟아지는 것에 익숙해 있던(그래서 그것에 감사한 마음이 없었던) 나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양동이 물로도 샤워에 빨래까지 다했는데 그동안 물의 소중함을 잊은 채 너무 헤프게 써댔구나..’ 

 

그 이후에도 홈스테이에 지내면서 주인 아저씨가 물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사용한 물이라도 최대한 다른 곳에 활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저씨는 손님이라고 내게 과분할 정도로 물을 데워서 충분히 주신 건데 그때 나는 적다고 투덜거리기만 했구나

 

아저씨의 호의를 몰라보고 투정부린 내 자신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지구를 잠시 빌려쓰고 있는 처지로서 내가 저지른 행태가 많이 부끄러웠고 반성이 들었다. 

 

   - 저녁식사 준비과정을 지켜보면서

 

친지 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커리를 끓이고 차파티 만드는데 무려 1시간 넘게 걸렸다.처음에는 너무 허기져서 간단해 보이는 음식인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릴까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그런데 주식인 차파티를 만들기 위한 여정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반죽을 만들고 밀대로 납작하게 핀 다음 말린 야크똥으로 불을 피워 달궈진 화덕 위에 반죽이 볼록볼록 올라올 때까지 여러번 돌려가며 굽는다. 야크똥은 초반에는 화력이 좋았으나 금방 사그라들어 수시로 야크똥을 채워넣어야 했다. 그렇게 온 가족 분들이 함께 모여 정성껏 음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니 내 앞에 놓인 음식이 참으로 감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모두 거쳐 함께만든 음식을 빙 둘러서 먹고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달리 표현하는 이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먹는 행위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개념이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도 수반한다'

식구들은 함께 만든 음식과 함께 따뜻하고 포근한 유대감도 서로 나누고 있었다. 

 

담백한 커리수프 속에는 스피티 밸리의 강한 햇살과 물,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차파티 엠보싱 속 미처 달아나지 못한 온기가 몸속으로 밀려들어올 때 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작은 것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이곳 스피티 밸리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의 허기는 채워졌고 마음은 평화로 물들었다.

 

보이는 것 속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들여다보고 느낄 수 있어야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확인한 감사한 순간이었다.

 

 

식구(食口)라고 표현하는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셨던 Demul 마을 홈스테이 가족분들
단촐한 저녁음식이었지만 스피티 밸리의 자연과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