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18-0722) 인도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2, 키 곰파(Key Gompa) '템플스테이하며 티베트 불교를 접하다'

(180718) 스피티 밸리(Spiti Valley)의 중심도시 카자(Kaza)

 

카자(Kaza)는 해발 고도 3,640m에 위치한 곳으로 4천미터 전후로 흩어져 있는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마을들의 구심점인 중심도시다. 크게 구 구역과 신 구역 2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신 구역은 정부 청사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구 구역에 장이나 터미널 같은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모여 있었다. 

 

스피티 밸리에 없어서는 안될 공공버스가 카자 버스 터미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루에 2차례 오가는 곳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2~3편 운행하는 마을도 있었다. 이 버스들을 타고 스피티밸리 마을 사람들은 카자에 와 필요한 물품을 사고, 관공서를 방문하고, 보건소에 치료를 받고, 심카드를 충전하는 등 모아뒀던 볼일들을 해결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외국인 여행자는 드물었고, 자기들끼리 그룹지어 바이크를 타고 들어온 인도 여행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스피티 밸리'에 대한 소개가 이뤄져 인도 여행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스피티 밸리의 중심 도시 카자

 

카자 시내

 

 

(180719) 카자-키 곰파 이동, 곰파에 방이 없어 4,200미터 윗마을까지 가다

 

카자에서 이틀간 머무르며 휴식을 충분히 취했다.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스피티 밸리의 최대 티베트 사원인 키 곰파(Key Gompa)로 이동했다. 카자에서 키 곰파를 가기 위해서는 매일 오후 5시 한차례 운행되는 버스를 타야한다. 사설택시와 바이크 렌트도 이용가능했다. 하지만 택시 요금은 무척 비쌌고 바이크 렌트는 타본 경험도 없고 특히 길이 위험해 안전을 담보할 수 없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현지사람들의 삶의 흐름에 접근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가급적 그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30분쯤 가니 곰파에 도착했는데 흐린 구름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마주했다. 마침 강한 바람을 타고 올라가는 흙먼지를 비춰주어 더 역동적이고 극적인 순간을 연출해 주었는데 그 풍경이 장관이었다. 

 

자연이 선사한 한편의 작품을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스피티 밸리 최대 티베트 불교 사원 키 곰파 입구

 

키 곰파에서는 한국 템플 스테이같이 여행자들도 머무를 수 있다. 곰파에 들어가 한 스님께 여기서 묵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오늘 스피티밸리에 있는 어린 비구니 스님들이 전부 모여 정식으로 계?를 받는 행사가 있어 비구니 스님들이 묵고 있어 방이 없다고 했다. 아래에 30분정도 걸어가야 하는 키 마을에 홈스테이 하는 곳이 있어 그쪽으로 가야 한단다.

 

버스는 이미 떠난 후였고 날은 어둑어둑해져 별 수 없이 키 마을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나와 같은 마을 버스타고 온 인도인 커플과 독일 남자 여행자 2명이 말을 걸어온다. 자기들은 'Kibber'라는 윗마을로 가서 묵으려고 한다면서 차 1대를 구했는데 자리가 남으니까 너도 원하면 같이 가자고 해서 냉큼 따라나섰다.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좋은 숙소를 잡고 흡족한 저녁까지 같이 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 4200미터 마을까지 올라와서 자게 됐는지 피식 웃음이 났다. 계획에 없던 상황이었지만 포근한 잠자리에 몸을 누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180720-0722) 키 곰파(Key Gompa) 템플스테이

 

Kibber 마을/풍경은 아름다웠으나 고산병이 와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산등성이 희미한 점같이 박혀 있는 곳이 Chicham 마을이다. 키 곰파를 지나가는 버스의 종점마을이기도 하다. 가지고 있던 론리플래닛에도 정보가 없어 Kibber 마을에 와서야 Chicham 마을의 존재를 알게 됐다.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띵한게 고산병이 온 것 같았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며 겪은 느낌이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잤던 Kibber 마을은 해발고도 4,200m였기에 3,600m 카자에서 이틀 고도적응을 한다고 했지만 마날리에서 고생하며 왔던 피로가 아직 남아있는지 고산병이 온 듯했다.

 

원래는 같이 온 여행자들과 Kibber 마을 주변을 반나절정도 트레킹하고 키 곰파까지 걸어서 내려갈 계획이었으나 고산병이 온 이상 트레킹은 무리라고 판단들었다. 일행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아침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키 곰파로 내려가기로 했다.  

   

8시 반 아침버스를 타고 키 곰파로 다시 내려오니 기분이 한결 낫다. 곰파에 들어가 방이 비었는지 물어보니 점심 이후에 방이 빌 것 같다고 그때 주겠다고 한다. 일단 방은 확보했으니 안심이다. 

 

오전인데도 라마승들이 바글바글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길래 방해가 될까 한쪽에 자리잡고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본다. 시간이 좀 지나자 늙은 라마승이 왔는데 나머지 라마승들이 공손히 인사를 하는 걸 보아 높은 스님이신 듯 했다.

 

키 곰파 라마승들

 

높은 스님과 단체사진 찍는 라마승들의 표정이 순진무구하다.

 

어른스님들 찍었으니 동자스님들 차례/ 맨뒤쪽 노스님의 수줍은 브이자에 미소가 저절로지어진다.

 

주스를 마시며 무슨 얘기를 그렇게 정답게 나누고 있니

 

스피티 밸리 대자연의 기상을 품고 나갈 어린 스님

 

법당 입구에서 올려다 본 하늘

 

 

봐도봐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스피티밸리 키 곰파

 

#1  키 곰파 템플스테이 일상

 

배정된 방은 4인 도미토리 룸이었고 필요한 것만 갖춘 간소한 방이었지만 포근했다. 낭떠러지 절벽 곳곳에 흰색 건물들이 있었는데 스님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었고, 곰파 근처 평평한 곳에 큰 학교가 있어 어린 스님들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교육이 끝났는지 어린 스님들이 교실 근처에서 뛰놀고 있었는데 복장은 스님 복장이지만 옷에 흙이며 콧물이 묻어있는 영락없이 또래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는 골목대장들이었다.  

 

사원에 머무른 여행자에게도 식사와 짜이가 스님과 동일하게 제공되었다.

아침(짜이 포함), 점심, 오후 티타임, 저녁, 밤 티타임 이렇게 규칙적으로 밥과 차가 제공되니 먹는 것도 부족함 없었다. 

 

티타임 때 부엌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 규모가 커 놀라웠다. 350명의 스님들에게 매 세끼와 차를 대접해야 하니 그럴만도 했다. 부엌은 예전에 내려오는 큰 가마에 불을 때 조리하는 방식이었는데 가마 주변에 불에 그을린 자국과 천장에 연기 그을린 자국들이 그 역사를 보여주는 듯 했다. 요리는 조리 임무를 맡은 스님들과 몇몇 현지 사람들이 도맡아 하는 것 같았다. 

 

음식은 주로 밥에 야채수프를 얹어 먹는 식단이 주였지만 가끔씩 식사 인원이 적을때는 뗌뚝(현지 수제비)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짜이는 같은 짜이에 달달한 것과 짭쪼름한 것 2종류로 나뉘었다. 

 

공양 중인 스님들

 

곰파에서는 매일 아침 8시무렵 라마승들이 본당에 모여 염불을 외는 뿌자(Puja) 의식을 진행하는데 여행자들도 참관할 수 있었다. 티벳 스님들의 아침 기도를 참관한 경험은 내가 있는 세계를 잠시 벗어나 스님들의 염불 소리와 함께 잠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 잊지못할 순간이었다. 

 

부처님을 가운데 모시고 앞에 2열로 마주보며 쭉 이어지는 형태로 라마승들이 앉았는데 부처님과 가까운 쪽은 나이가 지긋한 스님들이 멀수록 청년 스님들이 앉았다. 아침 공기가 차가워 나이 지긋하신 스님들은 숄을 어깨에 걸치셨다. 스님들이 저마다 편한 자세와 함께(한손에 염주를 굴리거나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니면 동시에)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염불기도를 드릴 때 나 역시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 소리에 집중하자 곧 잡념이 사라지고 내면의 고요함과 평화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염불을 외우다 어느 순간 일제히 멈출 때 법당 안에서 울려 퍼지던 염불 소리는 아직 귓가에 맴돌고 있을 때 만난 그 정적의 순간은 소리가 없는 절대 고요를 더욱 단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절대 고요의 순간은 묵직한 울림이 되어  마치 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느낀 건 같은 몽환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앳되보이는 스님들이 짜이와 아침을 법당 스님들께 나눠 드린다. 스님들이 짜이를 후루룩 마시는 소리만이 법당 안에 감돌 때 다른 사람한테 듣지 않았어도 될 말들을 감내하느라 고생한 내 귀와 나 역시 그동안 남에게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늘여 놓으며 상처까지도 줬을 철없는 내 입을 생각해본다. 말은 줄이되, 귀는 열자.  

 

어린 스님은 스님들에게 짜이를 다 나눠주자 나에게도 건네주었다. 달달한 짜이가 몸속으로 들어오면서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니 충만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아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따뜻한 차 한잔에  담겨있었구나' 

 

셋째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스님들도 휴식을 취하는 날이라 아침에 기도 드리는 스님들이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도가 끝날 시간이었는데도 교회 성경같은 얇디얇은 종이에 낱장으로 깨알같이 써진 경전을 넘겨가며 계속해서 기도를 이어나갔다.  중간중간마다 북을 치고 심벌즈를 두드리며 추임새를 넣듯 리듬을 타며 아침에 시작된 기도는 오후에 이르러서야 스님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끝이났다.  

 

 

키 곰파 아침 뿌자의식, 법낭 내부는 신성한 곳이라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짧게 녹음만 했다

 

숙소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스피티 밸리/아래 키 마을이 보인다

 

#2 키 곰파에서 만난 사람들

 

키 곰파에 머물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첫번째 사람은 식사 조리, 순례자 방 배정 등 곰파내 대소사를 총괄적으로 맡고 있었던 니마 스님.

인상이 날카로워 처음엔 말 붙이기가 어려웠으나 둘째날 저녁 티타임때 순례자들과 함께 짜이를 마시면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전반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국제정세에 밝으셨고, 영어도 유창하진 않았지만 의사소통에 문제없었는데 독학으로 깨우치셨단다. 장소의 제약과 수행 중에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부단히 알아가고 또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깨어있는 자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 본인이 더 젊었을 때 곰파에서 맡은 직책이 있었는데 자꾸 점심만 먹으면 졸려서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자 그 직책을 맡는 동안은 점심을 아예 드시지 않으셨단다. 곰파에 대한 그의 애정과 사랑은 그의 인상처럼 단단했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일본인 순례자의 타쿠시(Takushi) 삶도 흥미로웠다. 도쿄 쪽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있다가 쳇바퀴 같은 삶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남미 여행을 떠났단다.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접한 브라질 전통무술 '카포에라'에 흠뻑 빠져 그곳에 정착을 했고 영주권까지 가지고 있단다. 카포에라 말고도 불교, 요가, 명상쪽에도 관심이 많아 동남아에서도 머물고 달라이 라마가 계시는 다람살라에서도 불교 수업을 듣는 등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이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해나가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아침날 스피티밸리 풍경

 

다른 한명은 스피티 밸리 지역에서 Eco Sphere라는 환경과 공정여행쪽을 다루는 NGO 인턴으로 활동했던 샨따누였다. 법대 재학하다 스피티 밸리에 관심이 생겨 휴학 후 오게 되었단다. 복학 때문에 곧 돌아가야해서 그전에 트레킹 여행을 하고 있단다. 샨따누와는 둘째날 곰파 근처 트레킹을 같이 하며 친해졌는데 그는 자급자족적이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스피티밸리 지역 사람들이 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최근 들어 몇년 사이에 스피티 밸리가 여행지로 소개되고 인기를 얻게 되면서 국내 관광객들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관광객들이 이곳의 흐름을 존중하지 못하는 모습을에 많이 안타까워했단다.  오토바이를 타고 대규모로 무리지어온 젊은 인도여행자들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왔다가면서 로컬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와 쓰레기를 무분별하게 버리고 가는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곰파에 있으면서 인도 관광객들이 지프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와 쓱 한번 둘러보고는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고는 서둘러 빠져나가는 행렬들을 볼 수 있었다. 

 

두꺼운 법전들과 씨름하기도 바쁠 때에 이렇게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는 그 청년에 건강한 생각과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청년은 스피티밸리에 뚜렷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던 내게 스피티밸리 마을들 중 트레킹을 하면서 이동할 수 있다면서 자신이 직접 다녀온 트레킹 정보와 마을 숙소, 주의할 점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것도 못미더웠던지 종이에 직접 써주면서 자신은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고 나한테도 꼭 기회될 때 해봤으면 좋겠다는 진심어린 조언까지도 해준 배울 점 많고 고마운 친구였다.  

 

법대생 친구 샨따누와 함께한 트레킹/스피티 밸리 전역에 부처님의 손길이 닿고 있었다.

 

키 곰파에서 지내면서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 대자연이 선사하는 풍경들이 막연히 스피티 밸리를 찾아온 나에게 왜 이곳을 더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하는 지를 분명히 가르켜 주고 있었다.

 

키 곰파에 와서야 비로소 스피티 밸리 여행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키 곰파에 와서야 비로소 스피티 밸리 여행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