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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17) 인도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1, 카자(Kaza) '미지의 세계로'

(180717) 마날리(Manali) - 스피티밸리(Spiti Valley) 카자(Kaza) 이동

 

바쉬쉿(Vashisht) 마을에서 보낸 달콤한 휴식을 뒤로 하고 다시 배낭을 꾸린다. 

원래 계획은 옛 라다크(Ladakh) 왕국 수도인 레(Leh).

하지만 바쉬쉿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놀라운 경험담과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티베트사원 키 곰파(Key Gompa)의 매혹적인 사진에 이끌려 스피티밸리에 가기로 결정.

 

한국인 여행자들도 잘 가지 않는 생소한 지역이었음에도 직접 현장에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혈혈단신으로 갈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카자행 버스는 매일 하루 1대 새벽 5시 반에 출발한다. 8-10시간 정도 소요, 가격은 310루피.

이틀 전 뉴 마날리 터미널에 들려 표를 예매했다. 

문제는 새벽 시간에 이동할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다는 것.  숙소 주인한테 물어보니 그 시간대에도 릭샤나 택시기사가 있을 거라고 이동하는건 걱정안해도 된단다. 문제는 새벽 시간대 기존 시세에서 3배 높은 300루피라고 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반 편도 요금이 대략 100루피 선인데 새벽시간에는 부르는게 임자라고 300루피라니..'

'네가 그 시간에 안타고 배기겠어'란 마인드다.

 

주인은 정 타기 싫으면 걸어가도 된다고 꿀팁을 알려주셨다. 구불구불 차도따라 가지 말고 민가에 나있는 지름길을 타고40분정도 가면 터미널에 도착한다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과연 맵스미를 통해 보니 지름길로 보이는 곳이 있었고, 40분 정도 거리면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된 시간에 출발하면 걸어가고 변수가 생기면 지체없이 릭샤타고 가자고 결정했다.

 

새벽 4시 반 무렵 아직 어두컴컴할 때 배낭을 짊어지고 출발한다. 중앙광장으로 나가니 외국인 여행자와 릭샤 기사 2명이 흥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터미널 가냐고 묻기에 걸어간다고 하니까 '이 시간에 걸어갈거라고? 독한녀석 같으니라고' 하는 표정을 보이며 다시 그 외국인 여행자와 흥정을 계속했다. 

 

숙소 사장한테서 들은 지름길로 가다가 개 짖는 소리에 좀 많이 무서웠다. 민가를 벗어나 터미널까지 가는 길은 차도길이었는데 몇대 트럭빼고는 지나다니지 않아 더 적막했다. 아까 개 짖는 소리 여파에 도로변에서 들개라도 만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며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이미 인파로 북적거렸는데 벤치나, 바닥에 누워 노숙을 한 사람들도 보였다. 도착 당시 버스는 안보였는데 알고보니 다른 마을에서 사람을 이미 태우고 마날리를 경유해서 가는 버스였다. 그덕에 표에 번호가 적어져 있는데도 이미 탄 사람들이 나몰라라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 한바탕 혼선이 빚어졌다. 야 최소 8시간 간다는데 서서 가는건가 난감했다. 다행히 나와 같은 처지(예약했는데 자리에 못 앉고 있던)의 사람들이 터미널 직원한테 얘기를 했는지 차장이 들어와 자리정리를 해주어 겨우 앉을 수 있었다.   

 

뉴 마날리 터미널/새벽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10시간의 대장정을 함께할 카자행 히마찰 버스/로탕 라(Rotang La) 중턱 휴게소에서

 

대장정을 함께한 동지?들

 

10시간의 대장정에 두개의 난코스가 있는데 바로 해발 3,980m 고개인 로탕 라(Rohtang Pass)와 4,590m 쿤줌 라(Kunzum Pass).

 

마날리를 떠난지 얼마 안돼 로탕 라에 진입한다. 버스는 힘차게 끝도 없는 갈지자 코스를 구불구불 올라갔지만 이른 시간부터 움직인 나는 곧 곯아떨어진다. 날씨가 잔뜩 흐려 금방 비가올 것 같은 날씨였는데 로탕 라 정상을 넘으니 다른 세상에 온 듯 파늘 하늘 아래 히말라야 기가막힌 풍광들이 반겨주었다.  

 

로탕 라 정상을 넘고난 히말라야 풍광
잔뜩흐린 날씨 속에 갈지자 도로를 넘고나서 본 풍광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영상) 로탕 라 넘고나서

 

로탕 라를 넘고 골짜기 안으로 Chenab 강물을 따라 쭉 들어가는데 마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가가 된 듯한 기분에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영상) 로탕 라 넘고나서 2

 

버스가 잘 가다가 갑자기 멈춰선다. 고장난 건가 싶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고개를 넘고 비포장 도로에 사람과 짐을 가득 실고 가야하는 낡은 버스가 고장이 나지 않는다는게 더 신기할 정도니 이쯤되면 고장날 법도 했다. 

 

다행히 고장은 아니었는데 차가 무거워 못 지나가는 구간이 있어 승객들보고 걸어오라는 것이었다. 

 

버스가 무거워 승객들이 내려서 걸어가는 모습/4천미터 산 고개를 넘나들며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공공 교통수단인 버스는 지역민들에게 소중하고 각별한 존재였다.

 

오후 1시 무렵 Batal이라는 지역을 지나가다 버스가 멈춰선다. 나와보니 황량하기 그지없는 산속에 집 몇채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휴게소!였다. 내부에는 따뜻한 온기와 함께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천막에 걸린 티베트 깃발을 보고 스피티 밸리에 와있음을 실감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순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왠지 모를 유대감이 느껴졌다. 

 

삭막한 곳 한가운데 차려진 간이 휴게소의 존재가 마냥 감사했다

 

간이 휴게소에 걸린 티베트 깃발을 보고 스피티 밸리에 와있음을 실감했다

 

스피티 밸리에서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던 옆자리 아저씨와 친해져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흰 쌀밥에 강남콩 수프를 얹은 단촐한 식사였지만 황량한 자연에서 안락한 장소에서 따뜻한 쌀밥과 간이 적절히 된 강낭콩 수프는 감사한 만찬이었다. 아저씨가 내 밥까지 계산해 감사한 마음에 콜라 한 병 사드렸다. 

 

단촐하지만 든든하게 먹었던 소중한 한 끼

 

오토바이타고 그룹지어 다니는 젊은 인도 여행자들도 많이 보였다. 

 

카자로 가면서도 황량한 대자연에 과연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을까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

 

쿤줌 라에 진입하면서 귀도 먹먹하고 머리가 띵하다. 4천미터로 진입해 고산증이 오는 것 같았다. 1시간 남짓 더 갔을까. 갈수록 더 황량해지는 산속에 흰색 스튜파가 보이고 버스가 멈춰섰다. 옆자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쿤줌 라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게 해준 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곳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힙겹게 넘어가는데 예전에는 더 오죽했을까. 공손한 마음을 담아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니 내 마음도 평온해 지는 것 같았다.    

 쿤줌 데비 사원(Kunzum Devi Temple)/쿤줌 라(4590m)를 넘기 전 사람들은 쿤줌 라의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다

 

버스는 쉴새 없이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또 달린다. 

얼마쯤 달렸을까. 황량한 자연속에 초록빛 들판이 보이더니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들판 속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버스를 보자 손짓한다. 버스를 타려고 손짓한 것 같은데 거리가 있어 오는 데 꽤 걸렸지만 어느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평생을 들판에서 노동을 하셨을 법한 까무잡잡한 거친 피부를 가진 그녀들이었지만 순박하고 건강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황량하고 적막한 대자연 속에서 점점이 박혀있는 초록빛으로부터 스피티밸리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받으며 그렇게 카자(Kaza)에 도착했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산과 초록색 들판의 대비가 선명하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황량한 대자연 속에서 만난 초록빛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영상)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새로운 모험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