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11-0716) 인도 마날리 바쉬쉿(Vashisht) 3, 충전 끝!

(180715-0716) 마날리 5-6일차

 

1. 난민구호 활동가 크리스티나와 만남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미소가 참 아름다웠던 크리스티나를 만나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난민구호 활동가로 있다가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그녀와 얘기 나누면서 ,

'점만 찍듯 빨리빨리 이동하는 여행이 아닌 진득하게 머무르면서 알아가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나 역시 그녀의 여행 방법론에 공감하고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내 생각은 모든 여행자들이 처음부터 그러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는 다소 점 찍듯이 다닐 수밖에 없지만 좀 다니다보면 본인 스스로가 마음에 드는 곳을 알게 될 것이고, 계획보다 더 머물다 보면서 점차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하는 듯. 

 

고로 틈다는대로 여행 좀 다녀봐야 한다!

 

 

항상 내게 가슴벅찬 기쁨을 선물해준 풍경

 

 

2. 전통을 간직한 바쉬쉿, 마날리 마을

 

올드, 뉴 마날리는 이미 관광화 돼 콘크리트 건물이 우후죽순 생겨나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바쉬쉿 마을도 예외는 아니나 다행히 완전히 관광화되지는 않아 현지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게스트하우스, 호텔 콘크리트 건물 사이사이로 전통가옥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고,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비교적 전통적인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빨래터 물이 시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근처 온천 덕분에 미지근한 물이 24시간 나온다고 했다.

마을 여자들은 가족의 빨래를 지고 옷의 오염물을 씻어낸다. 그 옆에 어린 딸이 어머니를 도와주는 모습, 뒤에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는 꼬마 아이의 모습들이 정겹다.

 

여행자로서 바라본 풍경은 정겨웠으나 마을 여성들의 삶은 고단하리라. 수시로 집에 세워둔 소들에게 신선한 풀을 베어다 먹이면서 빨래하고 밥하고..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많이 생각났다.

 

집 주변에는 소들을 한쪽에 묶어놓고 풀어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냥 소는 그냥 가축이 아니라 가족같이 살뜰하게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다. 숙소 앞에 소 3마리를 묶어놓은 곳이 있었는데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아침, 오후마다 풀을 베어다 수북히 쌓아 놓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소는 먹고 똥만 싸고. 거기에 소가 더울까 빨래터로 데려와 목욕도 시켜주고.

 

제일 인상깊었던 장면은 소 목욕시키다 갑자기 똥을 싸는데 그 주인 아주머니가 잽싸게 손으로 받아 다른 곳에다 버리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이 내게 적잖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가진 사고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똥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저런 행동이 바로 나오지 않았을텐데 그만큼 소를 각별히 아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볼 수 있었다.

 

마을 중간에 위치한 공동 빨래터/이곳에서도 미지근한 물이 흐른다

 

마을 곳곳에는 아직 전통가옥 구조의 집들이 남아 있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삶을 꾸려나갔다.

 

내가 본 가옥의 구조는 이렇다.

 

1층 : 외양간- 소는 바깥에 줄 묶어두고, 안에는 풀 저장

2층 : 생활공간/골조는 벽돌로 쌓고 방이나 난간은 목재로 전통적인 양식을 가미, 지붕은 납작하고 네모난 돌로 켜켜이 쌓아놓은 형태. 1층 문을 주술적인 형태의 문양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

 

 

 

 

 

 

 

집 1층 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술적인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크기가 사람들 드나들기에 비좁을 정도로 작아 집안의 액운을 막는 상징적인 문이 아닐까 싶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본 다양한 전통가옥 형태

 

 

3. 마누 사원(Manu Temple), '인도판 노아의 방주'

 

올드 마날리쪽에서 좀 더 올라가다 보면 '인도판 노아의 방주'의 전설이 내려오는 장소인 마누 사원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대홍수가 일어난 후 힌두 신 마누가 정착해 다시 문명을 만든 장소가 이곳이었다고 한다.

 

관광지 느낌이 강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직접 가보니 한적원 마을 사원이었으며,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사원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절안에서 본인들이 간신히 점프해야 닿는 종 치는 줄을 잡아당겨 시합하듯 놀고 있었다.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에서 마누 신의 성공적인 재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도판 노아의 방주 전설이 내려오는 마누 템플

 

사원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올드마날리에서 뉴마날리로 가는 길에 빽빽한 산림이 우거진 자연공원이 있는데 그곳 숲길이 호젓하니 걷기 좋았다.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는 자연공원

 

 

귀여운 똥강아지와 새끼 야옹이들

 

4. 바쉬쉿 마을에서 보낸 평화로운 나날들을 마무리하며

 

덥고 습한 델리를 무작정 빠져나가야 겠다는 마음으로 무엇을 할 지, 언제까지 있을지 계획도 없이 무작정 도착한 마날리 바쉬쉿 마을에서 생각지 못한 큰 선물을 받았다.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이 여행을 계속해야 할 지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바쉬쉿 마을은 이런 나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마치 네가 고생한 거 다 알고 있으니 맘편히 있다 가란 듯이. 

 

바쉬쉿 마을에 지내면서 몸 마음은 몰라볼 정도로 회복되었고, 지금은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훗날 이 여행을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찬란한 시간이자 성장의 장이었다고 말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생할거 뻔히 알지만 그 고생 속에 단단해지고 성숙해갈 나를 떠올리며 여행을 계속 해야 겠다는 의지가 되살아났다.

 

원래 옛 라다크(Ladakh) 왕국의 수도인 '레(Leh)'로 향할려고 했으나, 그전에 스피티 밸리(Spiti Valley)의 중심 도시인 '카자(Kaza)'을 먼저 방문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바쉬쉿 마을에 있으면서 스피티 밸리 여행을 갓 마치고 온 여행자들의 경험담과 우연히 본 스피티밸리 깎아지는 절벽에 자리잡은 티베트 사원의 사진, 그리고 그곳에 여행자들도 묵을 수 있는 정보를 듣고 얻을 수 있었다. 그냥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가볼 수 있는 데까지는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고생이 눈앞에 훤했지만 가슴 속에 쿵쾅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바쉬쉿 마을은 다시한번 여행의 의지를 되찾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