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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24-0726) 인도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4, 마을 트레킹 1 '인도에서 실종당한 우리 아들을 찾습니다'

(180724-0726) 랑자(Langza)-히킴(Hikkim)-코믹(Komic) 마을 트레킹

(180724) 베이스캠프 카자(Kaza) 복귀

 

마날리(Manali)에서 카자(Kaza) 마을에서 도착했을 때 느낀 첫 인상은 그냥 평범한 작은 동네였다. 하지만 키 곰파(Key Gompa), Chichim 마을 다녀오고 나서 카자는 쾌적한 숙소, 없을 것 빼고 다있는 상점, 약국, 진료소, 식당, 까페 전부 갖춰져 있는 시내 번화가와 다름 없는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한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Mutton Tukpa(양고기 국수)
(오른쪽) Mutton Momo(양고기 만두,120 루피), /카자는 며칠씩 마을 트레킹에 나선 후 몸과 마음이 지친 나를 다시 재충전할 수 있는 완벽한 베이스캠프였다.

 

(180725) 카자-랑자(Langza) 이동

 

  #1 인도에서 실종당한 우리 아들을 찾습니다

 

부모님과 자주는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스피티 밸리로 넘어온 이후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스피티밸리는 그야말로 와이파이, 데이터가 통하지 않는 청정지역. 인도 땅이 워낙 넓어 내가 사용했던 유심칩도 사용을 못해 이쪽 지역에 맞는 유심칩을 바꿔끼워 국제전화를 하는게 사실상 유일한 연락 방법이었다.

 

카자 복귀 후 평소보다 집에 연락을 안한지 오래되어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슬그머니 불안해졌다. 혹시나 해서 카자에서 거의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진다고 하는 Zostel이라는 현지 호스텔 까페로 이동했다. 힘겹게 와이파이를 연결시키고 보니 아버지한테서 이거 보면 즉시 연락을 달라는 카톡 메시지가 핸드폰 화면을 꽉 채워 화들짝 놀랐다..

 

와이파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었다. 신호 미약으로 카톡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것 자체도 힘겨웠는지 자꾸 전송 실패가 떠 복장이 터지는 듯 했다. 힘겹게 연락이 늦었다고, 잘 있다고 답장 보내자 아버지께서 왜 이제야 연락하냐고 하시면서 하도 연락이 안돼서 사고라도 난 줄 알고 혹시 몰라 델리 대사관에 실종신고까지 하셨단다. 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랴부랴 읍내 휴대폰 가게에서 현지 심카드를 구입해 곧바로 아버지께 국제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안심시켜 드리니 아버지께서 쿨하게 하시는 말씀,

 

"앞으로 연락 재깍재깍 잘하고 대사관 실종 신고는 네가 가서 취소시켜라" 

 

아버지의 셀프 실종신고 철회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뉴델리 대사관 연락처를 몰라(데이터 사용가능하다고 가게 주인 아저씨가 설명하길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데이터 실종상태) 여권에 비상연락처가 기입된게 생각나 뒤져봤더니 다행히 한국 영사콜센터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인도에 있으면서 국제전화로 한국 영사콜센터로 전화해 뉴델리 대사관 연락처 알아냈다. 영사님께 실종신고아 아닌 생존신고를 드린 이후에야 이소동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인도 여행 자체가 부모님께는 걱정거리라 차마 인터넷도 잘 안되는 더 구석지로 간다고 말씀드릴 수 없어 연락을 미뤄둔게 화근이었다. 계속 속만 썩여서 죄송합니다 아부지 어무이.

 

하마터면 '장기 실종'에 빠질뻔한 나를 구해준 현지 심카드

 

 

  #2 랑자(Langza) 마을 이동(4,300미터)

 

하루에 1대씩 일주일에 단 세번만 운행하는 귀한 마을버스 타고 6,300미터 Chau Chau Kang Nilda 설산 아래 자리잡은 Langza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 가는 길이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 곳이 많아 기사님이 잠깐 딴 생각하거나 브레이크라도 고장나면 곧장 황천길행이었다. 정작 버스 기사 아저씨는 덩치큰 Tata 버스를 끌고 4천미터 낭떠러지 길을 오가면서도 평온한 모습이다. 낭떠러지를 지날 때마다 움찔움찔거렸지만 풍경 또한 숨이 멎을만큼 아름다웠다.

 

 

낭떠러지를 지날 때마다 움찔움찔거렸지만 풍경 또한 숨이 멎을만큼 아름다웠다. 

 

(영상) 낭떠러지길에서 만난 풍경

 

6,300미터 Chau Chau Kang Nilda 설산 아래 자리잡은 랑자(Langza) 마을 

 

 

Chau Chau 설산과 랑자 마을을 손으로도 재보고 지그시 바라보는 소년. 다부진 표정 속에 맑은 눈망울이 무척 강렬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마을 구경하다가 아주머니 한분이 혼자서 기다란 대나무 사다리에 꼴 베어놓은 것까지 들고 가길래 사다리 뒤에 잡고 마을까지 들어다 드렸다, 포장된 길이 아니라 밭두렁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라 자꾸 발이 푹푹 빠졌는데 아주머니는 성큼성큼 나가신다. 이 땅에 어머니는 위대하다.

 

보라색 바지를 입으신 아주머니 한분이 기다란 나무 사다리르 혼자 들고가셔서 같이 도와드렸다. 푹푹 빠지는 밭두렁 길을 어찌나 성큼성큼 나가시던지

 

 버스는 chau chau 산을 가슴에 품은 소년을 싣고 종점마을을 향해 구불구불 산길을 달린다.

 

오후 5시 로컬버스 타고 Langza 마을 도착하니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출렁거리는 산들이 훤히 보이는 곳에 부처님께서 가부좌를 틀고 계신 채 앉아계셨다. 부처님 곁에서 노을진 하늘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라보니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들어왔다.

 

 

 사방을 바라보는 부처님 곁에서 노을진 하늘이 만들어낸 풍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같이 노을 구경하던 여행자들의 바이크를 훔쳐? 기쁨 만끽

 

Chau Chau 산과 Langza 마을/노을과 함께 또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숙소에서 바이크 타고 여행 중인 벨기에 부자를 만났다. 아버지는 국제협력 컨설팅 전문가, 아들은 대학생이라고 했다.

아내 분은 네팔에서 같이 일하다가 현재 아프리카 말리에서 활동 중이라 둘이서만 왔단다.

 

직업 특성상 현장에 있다보니 서로 떨어져있는 기간이 많아 휴가 기간에는 되도록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 갖고자 노력한다는 아버지의 말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물씬 묻어났다. 멋있다! 아들과 바이크 여행이라니!

 

벨기에 부자와 얘기를 나눴던 홈스테이 거실구조/  ㄷ자 형태로 낮은 탁자와 의자에 사람들이 빙 둘러앉는 식이다. 중앙 화덕은 난로 겸 조리시설로 사용된다. 화덕 옆에는 물이나 짜이를 끟일 수 있는 주방도구 그리고 난로의 연료인 말린 야크똥이 비치되어 있다.

 

 

 

(180726) 랑자(Langza)-히킴(Hikkim)-코믹(Komic) 마을 트레킹

  #1 Langza -Hikkim, 인터넷 없는 4천미터 고지에서 한국 초코파이를 만나다니

 

키 곰파에서 우연히 만난 샨따누의 소개로 결정하게 된 마을 트레킹의 첫날이다.

 

홈스테이 주인이모가 해주신 아침밥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뒤 출발한다. 확실히 4천미터 지대를 넘으니 오르막길에 조금만 가도 숨이 헉헉 거린다. 꼭 필요한 것만 넣었다고 했는데도 가방은 왜이리 무거운지.. 내 욕심 덩어리들. 카자가면 싹다 정리해야겠다.

 

힘들다고 불평, 투덜거리다 조금씩 내딛는 걸음에 집중하니 사방이 적막하다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소음이 침묵하는 공간에서 나 혼자 점으로 찍혀있는 3인칭 시선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저 사내는 무엇을 위해 스피티 밸리를 걷고 있나. 사내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으나 표정만은 밝아 보인다 

 

Langza 마을 곰파/간밤에 Chau Chau 산에는 눈이 더 내렸다.
Chau Chau 산(6300미터)

 

아침날 부처님의 시선으로 내려다 본 Langza 마을 풍경

 

갈림길에 접어든다. 위쪽으로 가면 Komic 아래로는 Hikkim으로 가는 길이다. 갈림길 사이에 웬 사람이 굴같이 생긴 곳에 서있길래 뭔가 봤더니 간이 휴게소였다!

 

"짜이?"

"짜이"

 

짜이 있다는 말에 냉큼 입장. 두 아주머니께서 운영하셨는데 내가 오자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신다. 생긴것은 무너져가는 굴이었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공간이 안락했다. 차가운 산바람 맞고 콧물 훌쩍이다 따뜻한 짜이가 몸 속을 데펴주니 이만한 행복이 없었다. 5성급 호텔이 따로 있나, 내가 행복을 느끼는 곳이 5성급 호텔이지. 아니지, 5성급 호텔보다 훨씬 낫지. 행복은 외부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첫째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목구멍으로 밀려 들어오는 짜이와 함께 온몸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짜이 말고도 껌이나 과자 같은 주전부리도 팔고 있었는데 롯데 초코파이가 있어 깜짝 놀랐다. 인터넷 없는 4천미터 고지에서 한국 과자를 만나다니. 반가운 마음에 경건한 자세로 2개를 그 자리에서 흡입한다.

 

 

 #2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우표는 셀프인 히킴(Hikkim) 마을 우체국(4,440미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체국이 있다는 히킴 마을에 도착한다.

 

히킴(Hikkim) 마을/세계에서 제일 높은 우체국이 운영 중이다

 

우체국 앞에 새로 지은 깔끔한 까페에서 괜찮아 보이는 엽서를 구입했다. 사실 마을 오기 전에 카자에서 엽서 샀는데 이쪽 가게가 더 나아 냉큼 구입했다.

 

부모님께 편지를 정성껏 적고 우체국에 들어가 부치려는데 직원이 우표가 없어 편지를 부칠 수가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우표가 언제쯤 오냐고 묻자 자기들도 모른단다.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우표는 셀프인 우체국'이라니... 타이틀만 설명말고 주의할 점도 같이 안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엽서를 여기에 맡겼다간 미아가 될 것 같아 카자로 복귀할 때 부치기로 한다.

 

예상치 못한 퇴짜를 맞고 우체국 앞 까페에서 앞으로의 상황을 모른 채 편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과 얘기 나눴다. 핀란드 패트릭, 스페인 안나 커플과 앳되보이지만 1년 장기여행 했다는 독일 안네까지 3명.

 

여행자들을 잠깐 소개하자면,

패트릭- 북한을 관광으로 다녀온 특이한 경험 소유자. 유쾌발랄

안나- 말과 동시에 표정과 제스처로 함께 말하는 표현력 좋은 친구

안네- 예의바르고 차분한 성격,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데 깨알같은 글씨에 빼곡히 적는게 인상적 

 

 

  히킴마을 우체국에서 정성껏 쓴 편지가 퇴짜 맞으면서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는 사회에서 너무나 많은 관계에 치여 잊고 있었던 서로의 존재를 긍정해 주는 안부를 주고받는 행위가 따뜻하고 뜻깊은 행위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우표는 셀프였던 히킴마을 우체국'(해발고도 4,440M)

 

#3  '세계에서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코믹(komic) 마을'(4,587m)

 

패트릭, 아나 커플과 안네 모두 내 오늘 목적지인 '세계에서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마을'(4,587m)로 소개된 komic 마을 간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결정한다. 까페 주인장이 차가 있어 경비 분담해서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이 친구들 덕분에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마을을 차로 방문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코믹 마을은 입구 쪽에는 ㅁ자 형태로 견고하게 생긴 Tangyud 곰파가 자리잡고 있었고 열 가구 정도가 듬성듬성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다. 일행들과 근처 사원에서 운영하는 여행자 숙소 겸 까페에서 차 마시며 몸 좀 녹이니 살것 같았다. 일행들은 다시 Hikkim으로 되돌아가니 다시 나 혼자 komic 마을에 남게 되었다.

 

숙소 방안의 적막감은 그 친구들이 가고 난 빈자리를 더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 내가 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이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분명히 보여주어 감사했다.   

 

스피티밸리 여행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 지, 그 여행으로 무엇을 얻고 잃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코믹 마을에 발을 딛은 이상 현재에 충실하고 다음을 준비할 뿐이다.

 

 ' 세계에서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코믹 마을'(4,587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