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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804-0805) 인도 스피티 밸리(Spiti Valley) 10, 다시 데물(demul) '마을 추수감사제에 참석하다'

(180804) Mudh-Kaza-Demul 마을 이동

 

1. 아이벡스(Ibex)를 만나!

 

Mudh에서 Kaza행 아침 버스에 올랐다.  마을버스는 엔진의 굉음과 함께 분주히 달렸지만 산들은 아직 햇볕이 닿지 않아 잠에서 깨지 않은 듯 보였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Mudh 마을 아침풍경 

 

중반쯤 다다랐을까. 갑자기 산쪽에서 돌이 무더기로 떨어져 버스기사가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버스 안 로컬 사람들도 창문을 보며 웅성거렸다.

 

뭐지 하고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흙먼지와 함께 크고 굵은 뿔과 육중한 몸집을 가진 힘이 넘쳐 보이는 야생동물 한 마리가 버스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이내 자신이 내려온 곳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 장소가 평지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못 올라가는 암벽 등반 수준의 언덕이었는데 그걸 제 집 마당 드나들듯 쉽게 올라갔다. 그 짧은 순간이 슬라이드 사진처럼 길게 느껴졌다.

 

로컬 사람들이 그 야생동물을 보며 (아이벡스(Ibex)'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서야 나는 그 야생동물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벡스 무리가 절벽 같은 산등성이를 가다 돌무더기가 떨어져 내렸고, 마침 그 구간을 지나가다 운 좋게 보게 된 것이다. 아이벡스가 가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방금 전 장면에 들떠 있어 소란스러웠다.  로컬 사람들도 흔한 광경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벡스(ibex)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lpine_ibex#/media/File:Alpensteinbock_(Capra_ibex)_Zoo_Salzburg_2014_h.jpg)

 

(참고 : 아이벡스의 놀라운 절벽타기 모습을 담은 BBC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RG9TMn1FJzc)

 

 

2.  카자행 버스를 타면서, '사회적 잣대가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세워진 행복'

 

'어느 쪽이 더 행복한 걸까?'

500만 원 소득, 공동체 유대감 vs 3천만 원 소득, 적자생존, 불안감

 

Mudh 홈스테이 Dorje 아저씨에 따르면 콩 한 포대(40kg)의 수매가는 2500루피(한화 약 41,000)이며 농가당 평균 50포대를 수확한단다. 마을 농가당 콩 농사로 125,000루피(한화 약 2,050,000)를 버는 셈이다.

 

현지 사람들 삶의 단편들 밖에 보지 못한 이방인으로서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량(주업인 농사와 기계의 도움 없는 물 긷는 일, 빨래와 같은 가사노동, 가축 돌보기)에 비해 소득은 형편없는 수준이며 공공시설 및 인프라도 여전히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그곳엔 아직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정이 존재했다. 그 유대감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마을과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기반이자 행복의 근원이라 생각됐다.

 

분명 '전통'사회는 막연한 낙관과 긍정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열악한 현실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chicham 마을에 만난 Padma 홈스테이 주인 이모는 따뜻하고 선한 미소가 너무나 인상적인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여성이었지만 치통을 진통제로 버티는 현실 또한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전통'사회에서 간직해온 삶의 방식은 내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SNS로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경쟁이 일상화된 삶 속에서 오히려 외롭고 혼자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사람들은 호소한다. 상실해버린 유대감을 인간들 사이에서는 찾는 것은 사회구조가 용납하지 않기에 반려동물로 또는 전자기기로 그 공허함을 대신 채우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균 소득이 조금 낮을지라도 나를 소모시키지 않고 나라는 존재가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당장의 높은 소득에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 빠르게, 더 많이를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반대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을 통해서 나의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 내지 어느 지점 이후에는 욕심이라는 것을 철저히 내 경험을 통해 나만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어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여행을 더 할수록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나만의 가이드라인을 더 구체적으로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번 여행은 그 자체로 내 삶에 더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가슴깊이 느낀다.

 

 

사회적 잣대, 기준, 평가를 내 가치관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철저히 내 자신에게 맞춘 내면의 행복을 우선시하자.

 

 

3. kaza 단골 숙소에 또 인도 깡패 무리 침입

 

아침에 단골 숙소 Lhasa 홈스테이에 도착하니 마치 집에 온 듯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느낌도 잠시 도미토리 방안에는 널브러진 이부자리며 여기저기 술병이 돌아다녀 아주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숙소 스탭 wantu가 전날 바이크 타고 넘어온 인도 깡패 무리가 전날 밤 광란의 파티 벌인 흔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휴,,, 이때 없어서 참 다행이다'

 

 

4. Demul 마을 이동, '양동이 물의 기적'

 

카자 Lhasa homestay에 있으면서 Sonam 주인 삼촌과 숙소 스탭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론리플래닛에 마을 축제인 말경주대회 정보가 있어서 Sonam 삼촌에게 물어보니 Demul 마을에서 곧 열린다는 고급 정보를 알려주셨다. 마침 숙소 스탭 중 한 명인 Tenjin이 Demul 마을 출신이어서 자기도 말경주대회에 참석하러 가다면서 마을 축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애초 내 계획은 Mudh, Tabo마을을 생각하고 있어 축제 정보를 얻긴 했지만 꼭 가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Mudh 마을에서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듯한 시간을 보내고 스피티 밸리 사람들의 삶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어 계획을 급변경했다. 

 

Demul 마을에 도착해 이장 선생님께 숙소를 배정해 주신다. 처음 데물 마을 방문할 때 지낸 Tuktan Makpa 홈스테이는 그래도 씻는 물을 양동이 절반 이상은 채워주셨는데 이번에 묵는 Tuktan Chopel 홈스테이는 반도 못되게 담아주셨다. 

 

그래도 두 번째 방문이라 손님이라고 후하게 담아주신 것을 알고 있기에 감사하게 받는다. 양동이에 절반도 안 채워진 물로 몸을 씻는 기적을 경험한다. 속옷 빨래, 벌레 물린 곳 소독 때문에 비록 머리는 못 감았지만 이 경험 되새기며 어디에 있든지 필요한 만큼만 물을 아껴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데물 마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깎아지는 벼랑길 따라 이리저리 돌아가는 와중에도 곤히 잠든 꼬마 여자아이의 모습에서 평화를 느낀다

 

 

(180805) Demul 2일차, 마을 추수감사제에 참석하다

1. 마을 할머니 마니차 기도를 지켜보며

 

마을 추수감사제가 시작되기 전 근처 마니차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는 소리가 들려 소리를 따라 가본다. 한 건물에 들어서니 할머니 한 분께서 방안을 꽉 채울 정도로 몸집이 큰 마니차를 돌리면서 조용히 무언가를 읊조리고 계셨다. 

 

할머니의 기도가 방해되지 않도록 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지켜본다. 할머니의 기도소리와 함께 마니차가 돌아가면서 치는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뭔가 깊은 내면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가신 증조할머니, 외할아버지며 특히 어렸을 적 나를 그렇게 예뻐해 주셨던 외할머니 생각이 무척 났다.  나와 연결된 많은 분들의 사랑 덕분에 건강한 몸, 정신을 물려받고 크나큰 행복을 누리고 있음을 한 살 한살 먹어갈수록 그 감사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소중한 분들이 주신 선물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크게 관심도 없었던 과거의 나 자신을 생각하면 참 부끄럽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내가 알든 알지 못하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더욱 명심하며 내 몸과 정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선한 영향력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되도록 공동체의 다름 구성원들, 자연을 항상 생각하고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인생은 덧없지만 허망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덧없음 속에 내 자신만 위하는 삶보다는 함께 나누며 그 속에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아는 삶이야말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찾은 데물 마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비 내리고 날이 잔뜩 흐려서 화창한 날씨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내게 큰 울림을 주셨던 마을 할머니의 기도

 

 

2.사람 냄새 풀풀 나는 마을축제 현장

 

마을 축제는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짓고 추수를 막 끝낸 직후 열리는 듯하다. 론리플래닛에서는 'Drunken horse race'라고 짧게 언급된 정도여서 축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채 마을에 왔었다. 하지만 마을 축제를 지켜보면서 단순한 말 경주대회가 아닌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사람냄새 풀풀 나는 축제의 장이었다.   

 

내가 본 축제의 간략한 순서는 이렇다.

 

1. 마을 성황당에서 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한해 농사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음을 기도

2. 마을 수호신(마을 최고 어른이 대행)이 악사들의 음악에 맞춰  마을을 대표하는 가축들인 야크, , 양들에게 각각 술을 뿌리며 건강을 기원하며 행사가 끝난 뒤 준비한 음식을 사람들과 함께 나눔

3. 마을 제사가 끝난 후 마을 대표자들이 마을에서 가장 신성시하게 여기는 'Balari Top'까지 올라 제사를 지냄

4. 마을 청년들은 마을 입구에서 Balari Top까지 말 경주 시합을 벌임(이 부분을 론리플래닛에서 소개하는 듯함)

5. 부녀자들은 전통의상을 갖춰 입고 '아락(Arak)'이라는 전통 곡주(각자 집에서 담근 술이라 맛이 각기 달랐음)를 가지고 나와 축제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노래, 춤을 같이 추면서 기쁨을 함께함

 

 

마을 행사때 서낭신께 인사드릴 야크, 말(사진에 잘 안나오지만 양도 있다)이라 때 빼고 광 내고 잘생긴 녀석들만 고른 듯하다. 말 찍을때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 표정이 너무 매서워 도망치듯 자리를 바삐 옮겼다

 

말 경주 대회 모습. 부녀자들도 전통의상을 갖춰입고 나와 축제를 함께했다

 

망아지들도 과연 질주 본능이 있는 듯 힘차게 따라 나선다 

 

 

부녀자들은 '아락Arak)'이라는 전통 곡주를 가지고 나왔는데 집에서 각자 담근 것이라 맛도 제각각 병도 제각각인 모습이 정겨웠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축제를 즐긴다

 

3. 홈스테이 저녁, '따뜻한 음식을 씹고 목구멍으로 넘기며' 

 

삼촌 이모가 2시간 가까이 매달려 말린 야크 똥으로 불 데피고 요리를 하신다. 처음 Tuktan Makpa 홈스테이에서도 1시간 넘게 걸려 차려주신 저녁 식사도 과분한 생각을 가지며 먹었는데 또 이런 대접을 받아 감사할 뿐이다. 차파티에 가지볶음, 토마토 양파 고추를 한데 다진 것까지 나온 만찬이었다. 얼핏 봐도 내가 왔다고 일부러 이렇게 더 정성 들여 만드시는 것 같았다. 인스턴트 음식, 배달 음식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사는 나로서는 이렇게 2시간 가까운 시간을 공들여서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 상에 올리기까지 지켜보는 과정 자체가 큰 감동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한끼을 먹는다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넘쳐나는 사회에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스피티 밸리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무엇을 간직하고 버려야 하는 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온 나로서는 지금 하고 있는 생각지 못한 경험들이 너무나 소중한 선물같이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따뜻한 음식을 씹고 목구멍으로 넘긴다. 

 

마을 전통 춤/ 서로의 손을 맞잡은채 노래에 함께 발을 맞추는 것이 특징이었다. 마을 공동체의 유대감, 결속감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나타낸게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