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817-0818) 인도 마날리(Manali)-킬롱(Keylong)-레(Leh) 이동, 라다크(Ladakh) 여정의 시작

(0817) 마날리Manali)-킬롱(Keylong) 이동

 

스피티밸리, kinnaur 지방 여행을 마치고 마날리에서 꿀같은 휴식을 보낼 수 있었다.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겨울이 일찍 다가오는 라다크 지방 여행을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짐을 꾸린다. 

 

목적지는 레(Leh) 이지만 오늘은 킬롱(keylong)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레로 가는 일정으로 계획을 짰다.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구간은 로랑라 패스를 거쳐 5천미터 고산지대를 구불구불 가야하는 악명높은 코스이다. 하루에 3천미터를 올라가는 곳이라 체력적인 부담은 물론 고산증세가 나타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기도 하다. 대신 감탄할만한 경치가 기다리고 있어 한번쯤은 육로로 이동하는 것을 많은 여행자들이 추천해 꼭 가보고 싶었던 구간이었다.

 

 

마날리-레 경로/로탕라 패스(3,978m)와 타그랑라 패스(5,328m)가 여행자들을 반길 준비를 하고 있다

 

마날리에서 킬롱 구간에서 제일 난코스는 로탕라 패스이다. 로탕라를 현지어로 직역하면 '시체더미'라고 할만큼 수세기동안 이 길을 건너가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악명높은 코스라고 한다. 로탕라를 올라가는 구간은 고도가 천미터 이상 올라가는 곳이라 귀가 멍멍해졌다. 날씨도 안개가 잔뜩 껴서 바로 앞을 제외하고는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아 로탕라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숨을 헐떡였던 버스가 로탕라 정상에 다다르고 내리막 길로 접어들자 나도 한숨 돌린다. 무한에 가까운 지그재그 구간에 진입하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안개가 사라지고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로탕라지만 구간에 따라 날씨가 변화무쌍 바뀌는 것 같았다.   

 

 

지그재그 구간을 중간쯤 진입하자 버스의 시동이 꺼졌다. 도로 복구 공사로 더이상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제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이라는듯 한결같이 평온한 표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다들 오만상일텐데 어떤 점에서는 현지 사람들의 느긋한 체념이 때로는 심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마의 구간 로탕라. 저 구불구불한 선만 봐도 멀미가 밀려오는 것 같다. 

 

일상생활 같은 풍경

 

6-7시간을 달리니 목적지인 킬롱에 도착한다. 산속에 파묻힌 듯한 인구 천명 규모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레를 비롯해 다른 마을로 가는 버스들이 이곳에서 출발해 버스 정류장만큼은 시설도 크고 에너지가 넘친다. 

 

킬롱 버스 정류장.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다른 마을로 오가는 버스가 드나들어 활기가 넘친다 

 

자기 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들

 

ㅇ 일본인 여행자 kei와의 만남

 

같은 버스를 탔던 아시아 여행자가 있었다. 자리가 달라 말은 못했지만 킬롱에서 도착해서 이방인은 우리 둘 뿐이라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나눈다. kei는 킬롱에서 묵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간다고 했는데 그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약 3시간 후에 있었다. 그래서 정류장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잡아서 kei 배낭을 숙소에 맡겨두고 늦은 점심을 함께했다.

 

kei는 상하이에서 건설업에 종사했다가 5년동안 일본어 강사 일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휴양을 목적이라면 다른 좋은 곳이 수두룩한데 귀국 전 여행을 인도 북부로 택하다니 고수의 풍모가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10년 전에 중국, 티베트, 네팔, 인도, 중미 지역을 여행했다고 한다. 세상엔 이렇게 조용히 활동하는 무림의 고수가 많다. 나는 그런 여행자에 비하면 아직 갓난아기 수준.

 

kei는 오후늦게 이름을 들어도 생소하기만 한 마을로 떠났다. 로컬 사람들한테 낑겨서 가는 그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보다는 멋져 보였다. 안전한 여행이 되길. 

 

 

킬롱. 산에 빙하가 쌓여있어 눈 쌓은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0818) 킬롱(Keylong)-레(Leh) 이동

 

하루에 1대 새벽 4시 반에 레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나선다. 새벽인데다가 비도 내려서 으슬으슬 춥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버스는 라이트를 켠 채 레로 향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 부족한 잠을 자다 깼다 반복하니 날은 어느새 개고 선명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태초의 모습 같은 풍경에 마치 지구의 맨살을 보는 것 같았다. 같은 지구에 있는 거라지만 빽빽한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쌓인 환경에서 자란 나로서는 경이롭기만 한 풍경이었다. 

  

같은 지구에 있는 거라지만 빽빽한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쌓인 환경에서 자란 나로서는 경이롭기만 한 풍경이었다. 

 

버스는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조금씩 나아간다.

욕심 부리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그 모습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버릴 것은 버리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간결하면서도 경쾌한 삶의 자세를 본다.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먼 여정일수록

끼니를 거르지 않으며

 

일할 때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단순하지만 그 원칙들을 지켜나가다 보면 때때로(아니 그보다 더 자주) 선물 같은 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상) 해발 5,328m 타그랑 라(Taglang la)를 넘으며/찰나의 순간과 영원은 함께 공존한다

 

나는 라다크인들의 삶의 지혜를 어렴풋이나마 느끼며 조금씩 라다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