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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910-0912) 인도 암리차르(Amritsar) 1, 시크교 성지 황금사원에 가다

(180910) 맥간 - 암리차르 이동, 모든 것은 연결돼있다

 

불교 용어 중 '돈오점수[頓悟漸修]'란 말이 있다.

문득 깨닫고 점진적으로 수행한다.

문득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뒤에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 단계가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히말라야의 험준한 자연과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달라이 라마 성하를 뵙고난 후 행복의 답은 결국 내 자신에게 있다는 지혜를 받을 수 있었다.

 

부족함 많은 한 인간으로서 단순히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세상이 천지가 개벽하듯 보일 수는 없다. 찰나 같은 삶이지만 그 삶에 울림이 존재하려면 매 순간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여행을 나와 세상 공부를 하게 된 이상 이번 여행의 끝은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숙소에서 내려다 본 맥간의 아침

시크교(Sikh)교의 본산지이자 황금사원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암리차르(Amristar)로 이동한다. 맥간에서 암리차르로 가려면 우선 다람살라에서 갈아타야 한단다.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면 새벽 4시 첫차를 타야 했다. 맙소사.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떠돌이 개들이 더 걱정이었다. 레에서 새벽에 공항가다 개들의 습격을 받은 경험이 아직도 생생해 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까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 어디서 개들이 튀어나올지 몰라 온 신경을 집중한다. 중심 교차로를 지나가야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차로 쪽에 개 무리들이 엎드려 앉아 있었다. 이 녀석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으나 예상외로 이 녀석들이 무덤덤했는데 자세히보니 한 사람이 그 녀석들이랑 같이 있어 경계가 덜한 듯 보였다. 자연히 그 사람과도 눈이 마주쳤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는데 그분의 첫 대답은 델리?”였다. , 장거리 승객 잡으려는 택시 기사였구나. 피식 웃는다.

 

그러보니 이 녀석들 낯이 익는다. 교차로 쪽에서 얼쩡거리는 녀석들이었는데 한 사람이 더 떠올랐다. 바로 떠나기 전날 개들한테 애정을 듬뿍 주셨던 한 할머니였다. 교차로를 지나가다 한 할머니께서 떠돌이 개들을 정성껏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할머니께서 저렇게 만지시다 개한테 벌레나 진드기 옮기면 어쩌나하는 생각만 하고 혹여나 나한테 옮길까봐 서둘러 지나가기에만 바빴었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은 개들이 바로 새벽에 내가 마주친 그 녀석들인 것이다.

 

만약 그 택시 기사가 장거리 승객 잡으려고 눈 비벼가며 교차로에 나오지 않았다면,

만약 그 할머니께서 주인없는 떠돌이 개들한테 애정을 듬뿍 주지 않으셨다면,

레에서처럼 이 녀석들이 날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지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과연 이 두 사람의 행동에서만 내가 겪은 상황이 벌어졌을까?

그밖에도 전부터 다른 사람들의 선한 마음과 행동들이 하나씩 모였기에 내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게 해준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몰랐지만 그분들과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나라는 존재와 모든 대상들은 서로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떠날 때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신 달라이 라마 성하와 티베트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그렇게 암리차르로 향한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   

 

(180912) 암리차르,  손가락이 아닌 보름달을 보라.

 

시크교에 대해서 나는 철저히 무지했고 인도에 와서 몇 차례 경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시크교 사람들과 첫 대면은 인도 델리 후마윤 묘에서였다. 화려한 색상 터번을 쓴 친구들과 친해져 사진을 찍게 됐는데 나는 이 친구들이 시크교도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모른 채 그저 와 패션에 관심 많은 이슬람교 사람들이구나정도만 생각하고 말았다.

 

두 번째 장면은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딸이자, 아버지를 이어 총리를 한 인디라 간디 기념관에서였다. 기념관은 원래 인디라 간디의 관저로 사용됐던 곳으로 인디라 간디가 시크교 탄압정책에 앙심을 품은 자신의 경호원들한테 피살당한 비극적인 역사를 담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시크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찬디가르에서 우연히 시크교가 운영하고 있는 숙소에 묵은 적이 있었다. 숙소비를 공짜나 다름없는 운영비 수준의 돈만 받고있어 많이 놀랐는데 알고보니 시크교는 '기도, 노동, 선행' 3가지 원칙을 중요시 여기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차원에서 사원을 개방,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왼쪽) 델리 후마윤 묘에서 시크교 친구?들과 함께 (오른쪽) 인디라 간디가 자신의 관저에서 시크교 경호원들에 의해 피살당한 장소

히마찰프레데시 주 맥로드간즈에서 8시간 남짓 달려 펀자브 주의 중심도시 암리차르에 도착한다. 시내에 들어서니 인구 백만을 넘은 대도시 답게 넓직넓직한 대로에 인파들로 가득하다. 시크교도임을 나타내는 남자들이 Dastar라고 부르는 머리에 둘러쓰는 형형색색의 터번이 눈에 들어왔고 시크교 본산지에 왔음을 실감한다.

 

사원에 가까워질수록 오가는 인파들로 더 북적거린다. 황금사원 주변에는 시크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숙소들이 있었는데 그 중 'Siri Guru Ram Das Niwas'라는 순례자 숙소에 외국인 여행자들도 머무를 수 있었다. 숙소는  ㅁ자 모양의 3층짜리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방값은 따로 받지 않고 기부금만 받는 식으로 운영 중이었고 최대 23일 머물 수 있었다. 바로 앞이 황금사원이라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활기 넘친 암리차르 시내/Dastar라고 불리는 남자들이 머리에 감는 화려한 색상의 터번으로 자신이 시크교도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크교 원칙에 따라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들어가야 했다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사원에 들어선다. 시간이 맞아 호수 가운데 노을진 하늘과 함께  빛나는 황금 사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전날까지 티베트 불교를 체험한 터라 어느 한 종교의 상징을 마주하니 인도 내에서 주에서 다른 주로 이동했을 뿐인데 마치 다른 나라, 세계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시크교의 본산지 암리차르 황금사원
전날까지 티베트 불교를 체험한 터라 어느 한 종교의 상징을 마주하니 인도 내에서 마치 다른 나라 , 세계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순례자들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빙 돌아본다. 몇몇 순례자들은 옷을 벗고 성수에 몸을 담그고, 성수를 마시며 황금 사원을 향해 경건히 기도를 드린다. 

 

' Akal Takhat'와 황금사원

 

황금 사원 내부에는 'Guru Granth Sahib'라는 창시자의 말씀이 담긴 성경이 모셔져 있다. 이 성경 자체가 살아있는 창시자로 상징된다고 한다.  'Guru Granth Sahib'은 아침에 'Akal Takhat' 라는 사원 내부의 신성한 곳에서 신도들에게 황금사원으로 모셔졌다가 밤에 다시 'Akal Takhat'로 모셔진다.

 

길게 늘어선 줄에 사원 내부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주위만 맴돌며 시크교 사람들을 구경한다.

 

사원 뒤쪽은 신을 뵐려는 신도들의 긴 행렬들로 항상 붐빈다

 

밤이 되자 사원의 황금빛은 어둠 속에서 더 도드라졌으며 순례자들은 계속해서 모여든다. 순례자들은 사원을 돌면서 또는 자리에 앉아 사원을 바라보면서 각자의 마음을 담아 초에 불을 밝히며 기도 시간을 기다린다. 

 

밤이 되자 신도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사진에서 보는 황금사원의 화려함에 이끌려 암리차르에 온 것도 있었지만 3일 동안 암리차르에 지내면서 더 관심이 갔던 부분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순례자들을 어떻게 먹이고 재우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시크교는 창시자의 가르침에 따라 '신에 대한 찬미, 정직한 노동, 지역사회 선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를 직접 실천에 옮긴 것 중 하나가  황금사원을 찾는 순례자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이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Guru Ka langar'이라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나이, 성별, 재산과 상관없이 평등하게 매일 세끼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식당이 있다.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5만명이며 행사가 있는 날에는 10만명까지 식당을 찾는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무시하다!

(출처 : https://www.thebetterindia.com/53531/golden-kitchen-10-things-didnt-know-langar-golden-temple-amritsar/)

 

순례자들은 식당에 들어가기 전 식판을 받고 5천 명을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홀에 앉아 기다린다. 그러면 음식을 가져온 사람들이 차례차례 음식을 나눠준다. 음식은 로티(빵), 커리, 달짝지근한 죽 같은게 함께 나왔는데 음식이 부족하면 더 받을 수 있어 맛도 괜찮고 든든한 한 끼였다. 특히 달짝지근한 죽이 맛있어 뭔가 찾아봤더니 'Rice Kheer'이라는 끓인 우유에 쌀과 설탕을 넣어 만드는 디저트용 음식이라고 한다. 기본식만 준비하기에도 이 많은 신도들을 먹이려면 빠듯할 것 같은데 디저트까지 나오다니 대단하다.  

 

넓은 홀에서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한  바닥에 앉아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다보면 그 사람들과 왠지 모를 유대감 ,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음식이 나오고 먹기까지 과정도 대단했지만 뒷정리 과정이 더 장관이었다. 무수히 쏟아져 나온 식기들을 씻고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는 과정들은 오로지 봉사자들로 보이는 신도들의 수작업으로만 운영되고 있었다. 식기들이 한데 모여 부딪치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이 귀가 찢어질 듯 귓속을 파고든다.

 

하루 평균 5만며의 신도들이 먹는 만큼 많은 봉사자들이 달려들어 일사분란하게 뒷정리하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숙소 풍경 또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외국인 순례자 방에 들어설 때는 닭장 같은 곳에 많은 여행자들과 자야하는 공간을 보고 순간 돈 주더라도 숙소를 옮겨야 되나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외국인 순례자용 방은 특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자 구조의 큰 건물이었는데도 방이 모자란 지 순례자들이 가운데 홀을 가득 메우며 다닥다닥 붙어서 자는 것이었다! 밤이라 덥진 않았지만 그래도 습하고 모기도 있어 자는데 너무 불편해 보였지만 감내하는 순례자들을 보며, 나름의 냉방장치와 숙소 내 따로 부리부리한 수염과 눈매를 가진 보안요원까지 배치된 숙소에 머물면서도 내가 참 배부른 생각, 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 비가 내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화장실 또한 궁금해 따로 찾아가 보았는데 머무는 사람이 많아 화장실 규모도 크고 층으로 나눠져 있었다. 순례자들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는 곳이라 청결유지가 쉽지 않을 텐데 웬만한 숙박업소보다 더 깨끗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비결이 뭔가 했더니 식당과 마찬가지로 구역마다 봉사자 인력들이 배치되어 거의 실시간으로 청소를 진행하고 있으니 봐도봐도 놀라웠다.

 

 

사람인지라 번쩍번쩍 빛나는 것에 먼저 눈이 돌아갔다. 막상 가보니 내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황금사원이 빛나는 이유는 황금으로 지어서가 아니라 시크교도 한사람 한사람의 선한 마음이 한데 모여서 이루어진 것. 황금사원은 자신은 보름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일 뿐, 진리는 내가 보고 있는 사람들의 선한 본성과 마음이라는 것을 사원을 비추고 있는 성수처럼 내게 잔잔히 일러주었다.

 

황금사원은 보름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일 뿐, 진리는 내가 보고 있는 사람들의 선한 본성과 마음이라는 것을 

 

<(영상) 인도 암리차르 황금사원 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