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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06-0708) 인도 델리(Delhi) 2 , '난 잭키찬이 아니라 브루스리라고'

(180706) 레드포트(Red Fort) , '죽다 살아나다' 

 

몸 상태가 많이 나아져서 델리 대표적인 유적지 레드포트(Red Fort)를 가기로 했다. 몸 마음이 아파서 레드포트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한동안 꿈쩍도 못하고 있다가 비로소 숙소 밖을 벗어나니 감개무량하다.

 

정문인 라호르(Lahori) 게이트로 들어서니 한눈에 봐도 단단하고 견고한 모습이 눈에 펼쳐진다. 인도 루피 지폐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맞닥뜨리니 규모도 크고 위풍당당한 위용이 대단했다.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아그라(Agra)에서 샤 자하나바드(Shah Jahanabad, 지금의 올드 델리)로 천도한 뒤, 1648년 왕족의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완성한 성이다. 타지마할(Taj Mahal)도 같은 해에 완공되었으니 여기저기 왕성하게 일을 벌인 샤 자한의 모습에서 '건축광'이란 별명이 괜히 붙여진 것 아닌 것 같다.

 

1947년 8월 15일에는 인도의 초대 총리였던 네루가 레드포트에서 독립 기념 연설과 국기 게양식을 개최해 레드포트는 인도 독립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레드포트(Red Fort) 라호르 게이트(Lahori Gate)
인도 독립기념일에  네루 초대 총리가 레드포트에서 연설하는 모습(1947.8.15)/(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M_Nehru_addresses_the_nation_from_the_Red_Fort_on_15_August_1947.jpg)

 

인도 독립기념일 제 70주년(2016.08.15) 행사에 모디 총리가 레드포트 연단에서 연설하는 모습/ (출처https://mediaindia.eu/business-politics/indian-pm-modi-speaks-on-terrorism-on-independence-day/)

 

인도 500루피 뒷면에 새겨진 레드포트 라호르 게이트/게이트 위 국기가 선명히 보인다

 

 

 

 

 

레드포트 안내도/주요 유적들을 보면 벽을 파내고 새긴 부분들이 많았는데 안내판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 인도사람들의 유적 고유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세심한 노력이 돋보였다 

 

 

 디와니암(Diwan-i-Am), 왕의 공식 접견실로 사용됐다

 

 

내부를 찬찬히 둘러본다.  햇볕이 강해 조금만 다녀도 땀이 뻘뻘나왔으나 나무 그늘이나 건물 안쪽에 있으면 뒤쪽에 야무나 강에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준다. 또 곳곳에 정원과 함께 물이 오가도록 수로를 잘 조성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끔찍한 인도 더위가 이런 구조배치를 정하는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됐다.

 

곳곳에서 샤 자한이 이곳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 욕망이 느껴졌다.

 

대리석 벽면 꽃 장식

건물 내부에서도 대리석을 이용한 벽 장식 부분에서 감탄을 자아냈다. 어떤 부분은 대리석을 조각해 장식을 내고, 또 어떤 것은 새긴 부분에 색깔있는 돌을 짜 맞추어 아름다운 꽃 모양을 드러내니 대리석 조각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 했다.

 

새긴 부분에 색깔 있는 돌을 짜 맞춰 장식한 석상감(石象嵌)인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의 세밀하고 정교한 모습에 감탄을 자아낸다.

 

 

(180707) 후마윤 묘(Humauyun’s Tomb), '난 잭키찬이 아니라 브루스리라고' 

 

찌는 듯한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착한 곳은 후마윤 묘.

 

인도 무굴 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1508-1556)의 무덤은 부인 비가 베굼(Hajji  Begum) 왕비가 후마윤이 죽은 후 14년 뒤인 1570년에 건설했다. 인도 최초의 정원식 무덤으로 제방과 수로가 있는 무덤양식은 많은 건축물에 영향을 미쳤으며, 타지마할이 그 대표적 예이다.

 

안으로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뭔가 봤더니 파랑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는데 그 모습이 정겹다. 선생님들은 많은 학생들을 정면에 세워서 기념사진을 찍고자 쩔쩔맨다. 학생들은 더위에 가지고 온 물을 마시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도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합법적으로 학교에서 공부 안해도 되어 좋은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학생 수가 많아 사진 찍는 것도 일이었다.

 

왁자지껄한 학생들에게서 한발짝 비껴나 찬찬히 내부를 둘러본다. 중앙의 대리석 돔은 확실히 타지마할 건축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내부에는 후마윤과 비가 베굼 왕비의 무덤 외에도 다른 무덤들도 많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무굴제국 많은 통치자와 그들의 가족들까지 현재 약 150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정도 규모면 무굴 왕조의 역사가 한곳에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하다. 

 

내부 중앙 모습(후마윤의 묘로 보인다)

 

창살을 통해 들여다본 내부 모습

 

건물 안쪽에서 창무늬가 인상깊어 기웃기웃 거리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한 여자아이 무리들이 다가온다. 외국인이 카메라를 대고 뭔가를 하고 있는게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영어로 "Hi, how are you" 인사하고 악수하길래 '마이 틱 후(I am fine의 현지말, Main Theek Hoon)' 했더니 원래 큰 눈이 더 동그래지며 놀라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

 

돌아다니면서 머리에 화려한 터번 쓴 남자애를 자주 마주쳤는데 그럴 때마다 자꾸 '잭키찬'이라고 말한다. 더워 죽겠는데 자꾸 그러니까 짜증이 났지만 '브루스 리'라고 받아주니까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그 친구하고 친해졌다. 알고보니 그 친구말고 두 형들과 같이 놀러온 것이었는데(짜증냈다가 무서운 형들한테 얻어맞을뻔 했다) 터번 색깔도 화려하고 수염도 부리부리해 무슬림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시크교(Sikhism)'라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혼재된 인도의 독자적인 종교의 복색이란걸 알게 됐다. 인도가 참 크긴 큰 나라구나. 터번만 보면 무조건 무슬림이라고 생각한 내 좁은 식견을 깨준 그 친구에게 감사하다.

 

맨 오른쪽 아이가 자꾸 '잭키찬'이라길래 '브루스리'라고 받아준 인연으로 그 형제들과 같이 사진까지 찍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