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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706-0708) 인도 델리(Delhi) 3, 간디와 문재인

인도를 여행하기 전 인도의 문화, 역사에 대한 내 지식과 이해는 얕은 수준이었다. 인도를 여행하고 있는 현재도 얼마만큼 인도를 이해하게 됐는지는 의문이지만 얼마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의 지식의 관점에서 인도의 국부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를 빼놓는다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고 생각했다.

 

델리는 인도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역사가 펼쳐졌던 수도이자 특히 간디의 생애와 관련된 장소들이 모여 있는 중요한 장소이다.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와 식중독에서 고생하다 이제 좀 괜찮아진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간디와 관련된 장소를 방문해 보았다.

 

 

1. (180706) 간디 국립박물관(National Gandhi Museum)

 

왁자지껄한 델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한 간디 박물관. 간디의 생애에 관한 사진, 기록, 물품들을 보존,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내부로 들어가보니 특히 사진 자료가 풍부해 간디 본인이 가진 분위기, 인품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생전에 쓰셨던 옷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인 흰 의상과 상체를 두르는 숄, 조리, 지팡이를 찬찬히 둘러본다. 영국유학, 변호사 자격증 취득으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독립투쟁에 뛰어든 이후에는 평생을 검소한 삶으로 사신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예기치 못한 순교 전까지 장시간 기차 이동을 통한 지역 순방,과 연설, 끊임없이 뭔가를 적고 읽는 모습 등 왕성한 활동을 하신 자료들을 보며 인도 국민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간디 국립박물관 입구/왁자지껄한 델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평소에 다니면서 사용한 지팡이

 

간디의 사진을 보면 끊임없이 책과 종이를 가지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레 돌리는 간디/물레는 영국 식민지배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의 상징으로 국기 문양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다

 

기차 이동 중 안경쓰고 자료를 손에 쥔채 곤히 잠든 모습

 

수행원들의 의상이 더 갖춰진 듯 하다

 

<내가 꿈꾸는 인도>

 

나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가 그들도 효과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라고 느끼며,

높고 낮은 계급이 없고, 모든 지역사회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불가촉천민과 중독성 술, 약물의 저주가 없는 인도를 위해 일할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와 같은 권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나라와 착취하지도, 착취당하지도 않으며 평화롭게 지낼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군대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인도입니다.

 

-Young India, 1931.9.10-

 

 

<7가지 사회악>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숭배

 

-Young India, 1925.10.22-

 

 

계급의 구분과 신분의 귀천이 없는 누구나 평등하고 평화로운 인도를 꿈꾸며 직접 행동으로 실천해 나갔던 간디.

 

그가 남긴 기록들을 보며 끊임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의지, 태도가 감명 깊었고 돌아가신 장면, 장례식 사진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한 감정이 들었다.

 

인도 사람들이 왜 그를 국부로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간디의 삶을 돌아보면서 살면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결과, 성취에 집착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반성했다. 

 

내 자신이 가진 꿈, 사회에 대한 애정은 크게 갖되, 단순하고 검소하게 살도록 노력하자.

 

법정 스님이 '텅빈 충만'이라고 말씀하신 것, 내가 아그라, 델리에서 몸져누우면서 알게된 것처럼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것임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 결국 아무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내 선택에 믿음을 갖고(아집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마하트마 간디(1869~1948)

 

2. (180707) 라지 가트(Raj Ghat), 화장의식이 치러졌던 장소

 

국립 간디 박물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라지 가트. 전날 간디 박물관을 둘러본 후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라 다음날 다시 찾았다. 예의를 갖추는 뜻에서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40도에 육박하는 온도에 달궈진 바닥은  사막 위 도마뱀처럼 내 발을 바닥에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트 주변은 사람들이 휴식할 수 있도록 공원으로 조성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민중들과 함께했던 그의 삶의 모습과 잘 맞는 듯 보였다.

 

잘 다듬어진 넓은 잔디밭 한 가운데 화장의식이 치러졌던 장소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그의 죽음을 기리는 불꽃과 함께 평소 그의 검소한 삶을 반영한듯 납작한 검은색 대리석 제단만 소박하게 놓여져 있었다.  제단에는 흉탄에 맞고 마지막에 남긴 말씀인 "오 신이시여"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달궈진 바닥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어쩌면 참을 수 없는 이 뜨거움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투쟁했던 간디 그의 삶을 대변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잘 다듬어진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화장의식이 치러졌던 장소가 보인다

 

납작한 검은색 대리석 제단에는 흉탄에 맞고 마지막에 남긴 말씀인 "오 신이시여"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라지가트에서 간디의 유해를 화장했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 (출처 : https://www.hindustantimes.com/more-lifestyle/rajghat-the-gandhi-samadhi-at-the-banks-of-yamuna-to-get-a-makeover/story-eYYG4P6lUecRuqQb2H4DkN.html)

 

 

3. (180708) 간디 슴리띠(Smriti)

 

간디 Smriti는 시끌벅적한 델리 시내와 달리 나무가 우거진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건물이 있었고 긴 복도를 따라 간디의 생애를 설명한 자료가 전시 중이었다. 

 

 

간디 슴리띠(Smriti)/ 간디가 돌아가시기 전 144일 동안 이곳에 머물다 1948년 1월 30일 힌두 극단주의자한테 시해당한 곳.

 

건물 정문

 

긴 복도를 따라 간디의 생애를 설명한 전시자료를 볼 수 있다 

 

하얀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간디가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들을 둘러본다.  일체의 사치품 없이 안경, 식기류, 지팡이, 시계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만 두고 검소하게 생활하셨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생전에 남기신 유품들을 보면 참 검소하게 사셨다는걸 알 수 있다

 

흰 창문 뒤로 간디가 144일 동안 생활했던 공간이 나온다

 

그가 시해를 당하기 전 144일 동안 머물렀던 방은 낡은 카펫 위로 오래된 매트릭스 한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무리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하지만 인도의 독립을 이끈 민족 지도자가 쓰는 방이라고 하기엔 간소하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부 사진자료를 통해 간디가 이 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활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두춤한 책들이 작은 탁자에 쌓여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한 채 간디는 순교 직전 자신의 방에서 인도 정치인이자 사회 지도자인 Sardar Patel과 1시간 좌담을 나눴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전 144일 동안 머무셨던 방

 

순교 직전 간디는 이 방에서 인도 정치인이자 사회 지도자인 Sardar Patel과 1시간 좌담을 나눴다고 한다

 

간디가 자신의 방에서 예배당으로 갔던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본다.

  

예배당 가는 길/1948년 1월 30일 간디는 방에서 평소처럼 기도를 드리러 예배당으로 가는 도중 힌두 극단주의자에게 시해를 당했고 현재 그 발걸음을 표시해 두었다.

 

발자국은 채 몇걸음 떼지도 않아 끊어져 있었고 그 자리에는 순교 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오 신이시여' 말씀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발자국 표시가 끊어진 순교장소에는 '오 신이시여'란 짧은 마지막 유언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예배당 입구에는 '비폭력저항에 대한 믿음을 같이 하는 이들이라면 그들과 기도를 함께하겠다'는 간디의 말씀이 적혀 있었다.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국민을 위해 몸바쳐온 지도자가 자국의 국민으로부터 시해를 당한 역사의 아이러니한 현장을 찬찬히 둘러본다.

 

종교 자체가 자신들의 삶이자 역사라고 인식하는 인도에서 종교를 떼놓고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달라이라마께서 "종교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졌다."라고 말씀하셨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 광신(狂信)에 이른다면 그것은 종교의 말하는 보편적 인류애를 넘어서는 것이 될 것이다. 자신이 본인의 삶에 주인이 되지 않고 아무리 종교라 할 지라도 어떤 대상을 내 삶의 주인의 자리에 놓을 수도 없고 놓게 만들어서도 안되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감이 아닐까.

 

예배당 입구에는 비폭력저항에 대한 믿음을 같이 하는 이들이라면 그들과 기도를 함께하겠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예배당 내부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어디선가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소란스러운가요?"

"내일 오후에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실 예정이에요."

 

한 직원한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내일 오후 이곳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 그래서 페인트칠 하고 화분 심고 때빼고 광내느라 야단법석을 떨었구나. 인도 순방 일정이 빠듯하실텐데도 순방 국가의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을 방문하신다는 점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대통령님의 성정이 눈에 환히 보이는 듯했다.

 

혹시나 대통령님을 직접 뵐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직원한테 물어보니 문 대통령님과 모디 총리가 다 오는 자리라 내일은 아예 외부인 접근을 일체 막을 거라고 했다. 

 

간디 Smriti를 빠져나오니 회전 교차로에 태극기와 문재인 대통령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져 있었다. 사진에는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우리나라 말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어 웬지 모르게 가슴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도 델리 현지에서 '사람이 먼저다'라고 당당히 외치셨던 문재인 대통령께서 사람사는 세상,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애쓰시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했다. 인도에 간디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에 이은 문재인 대통령님이 있다. 그 사실이 나는 무척 자랑스럽다.

 

한창 더울 때 인도 순방을 오셨는데 모쪼록 대통령께서 건강 유의하시면서 순방 잘 마치시길 기원해본다.

 

문재인 대통령님과 모디 총리가 방문한다고 하여 직원들이 사전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요 거리마다 태극기와 문재인 대통령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당당하게 외치신 문재인 대통령님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간디 순교기념비 방문한 문 대통령

(뉴델리=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인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함께 뉴델리 간디기념관을 방문, 순교기념비 앞에서 합장하고 있다. 2018.7.9

https://www.yna.co.kr/view/AKR20180707024700001

 

문대통령, 인도 모디 총리와 간디기념관 방문 | 연합뉴스

문대통령, 인도 모디 총리와 간디기념관 방문, 임형섭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18-07-0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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