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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630-0705) 인도 델리(Delhi) 1, 몸져눕다

 

(180630) 아그라-델리 이동, '아그라 요양 끝(델리 요양 시작)'

 

#1 아그라에 있으면서 속은 편해져서 다행이었지만 두드러기가 더 심해진건지 아니면 이제 나으려고 한건지 가려움증이 더 심해져 새벽에 꼭 1번씩 깬다. 괜히 병 키우지 말고 델리가서 병원 꼭 가자.

 

#2 내가 찾아둔 터미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내려줘 당황스러웠다. 내리자마자 릭샤 기사들이 달려들어 정신을 못차리다가 본능적으로 출발 준비하는 시내버스로 보이는 차량에 그냥 들어갔다.

 

폰으로 찍은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메트로 역을 가리키며 이 역으로 가냐고 묻자 차장이 살펴보더니 근처 다른 역을 가르켜 준다. 가까운 지하철 역만 간다면 델리에서 묵을 빠하르간지(Paharganj)까지는 갈 수 있고, 릭샤꾼 바가지도 피할 수 있기에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나름 선방했다.

 

아그라 버스 터미널

   

(180702) 델리 3일차, '체감온도 40도 이상'

 

#1 빠간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었다. 저렴한 숙소를 찾는 외국인 여행자, 물건을 사고파는 현지 사람들, 뉴델리역과 라마크리쉬나 아쉬람(Ramakrishna Ashram) 역 사이를 오가면 승객들을 태우고 내리는 인력거, 릭샤 행렬까지 사람들과 그들과 같이하는 연장, 도구에서 끈임없이 나오는 소음과 열기가 대단했다. 

 

#2 몸상태도 괜찮아졌지만 딱히 이 더위에 어딜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 시원한 곳에서 발리우드 영화나 보고 시내 구경좀 할까싶어 빠간에서 지하철에서 한정거장인 센트럴파크 역 근처 극장으로 향한다. 지하철 내리고 몇분 안걸었는데도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의 땀구멍들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거리에 현재 기온을 알리는 알림판이 있었는데 39도 인데 어딜 가냐고 친절히 경고해준다. 도로 위에는 40도가 넘는다는 소리잖아.  

 

극장만 도착하면 괜찮아 질거라고 다독이며 삐질삐질 극장 갔더니 가방, 카메라 반입금지로 못들어간다고 막는다. 지하철에서도 그 많은 승객들을 일일이 역무원들이 짐검사를 하더니 사람 좀 모이는 곳에는 소지품 검사가 일상인듯 하다. 테러 같은 사고 예방차원에서도 하는 것 같다. 취지가 이해돼 그럼 짐을 어디에 보관하냐고 하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대답만.. 너무 더워서 싸울 기력도 없고 영화 보고 싶은 생각도 뚝 떨어져 센트럴파크 돌아다니다가 그냥 숙소로 회군했다.

 

 

(180703) 델리 4일차, '더위 먹다'

 

#1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도 띵하다. 젠장 어제 몸이 완전히 회복안된 상태에서 40도 육박하는 더위에  델리 시내 구경한다고 싸돌아다녀서 더위를 제대로 먹은 듯하다. 좀이따보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계획했던 레드포트로 가려고 아침에 날이 선선할때 움직였다.  근처 역까지 내려 레드포트 쪽으로 걸어가는데 출발할 때보다 오히려 머리도 띵하고 발걸음도 무거워 직감적으로 이상태에서 더 진행하면 큰일나겠다 싶어 입구에서 그냥 다시 숙소 복귀, 폭풍 낮잠을 잤다.

 

낮잠을 자고나서도 바람빠진 풍선마냥 짜증만 나고 의욕이 없다. 더위 제대로 먹은 듯하다.

 

#2 허락해 주신만큼 간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다른거 다 집어치우고 아프면 아무 생각말고 닥치고 최선을 다해 회복하는데 집중하자.

고로 39도 날씨에 혹사시킨 내 몸, 마음께 사죄드리고자 한식당 쉼터에서 제육볶음을 먹으러 왔다.

 

소스에 재워진 돼지고기의 친근한 맛에 피로가 사르르 녹는 듯 하다.

델리에 있는 동안은 체력 유지 차원에서 하루 한끼는 고기가 들어간 한식을 먹기로 결정했다.

 

델리 빠하르간지 한식당 '쉼터', 쉼터 식당의 된장째개와 동서 현미녹차가 없었다면 중도 귀국했을 지도 모른다

 

(180704) 델리 5일차, '몸져눕다'

 

#1 망했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30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속이 부글부글하더니 바로 10번 가까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그냥 물만 마시면 직수로 나오는 작금의 상황에 맥없이 하라는 대로 가라는 대로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오전내내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나니 머리도 띵하고 기진맥진하다.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상황이었지만 더이상 그냥 있으면 큰일날 것 같아 본능적으로 지도에 검색되는 가장 가까운 정부 보건소(CGHS Dispensary)로 곧장 향했다.

 

걸어서 10-15분 거리에 보건소가 있었는데 진료 받으러 왔다고 하니 직원들이 처음엔 외국인이라 안된다고 했다. 그러다 자기들끼리 의논해 보더니 확실하지 않지만 보스한테 직접 가서 일단 얘기해 보라고 융통성있게 안내해줘서 다행이었다.  보건소장?으로 보이는 사람도 여기는 외국인 진료 안받으니 처음엔 큰 병원 가보라고 한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기에 식중독, food poison 때문에 2주째 고생하고 있다고 얘기하니까 그 정도는 자기 권한으로 처리해 줄 수 있는지(인도에서 식중독은 다반사라 감기와 같은 존재인지)  즉석에서 바로 처방전을 써주고 아래층에서 약 받아가라한다. 아래층 조제실에서 약을 탔는데 잠시 진료비가 얼마일지 걱정이 됐는데 진료비를 안 받아서 깜짝 놀랐다. 인도에서 공짜 진료를 받을 줄이야. 웃어야 되는지 울어야 되는 건지.

 

 

겨우 찾아갔던 정부 보건소 처방전/천만다행히 약발이 들었다/근데 왜 내 나이가 18살이지?

 

 #2 병원 다녀온 후 저녁 8시 쉼터 식당 오기 전까지 아침에 겪은 전쟁을 또다시 한바탕 치른다. 설사를 계속하면 탈수증상이 올 수 있다고 어디서 주워 들은게 있어서 화장실만 다녀오면 계속 물을 마셨는데 거의 물만 마시면 화장실 직행 수준이었다. 스무번 가까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해가 저물 무렵 화장실 변기 위에 앉으면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인도 델리 빠하르간지 게스트하우스 화장실 한칸에 앉아 있나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하면서 여태껏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안들었는데 마침 델리에 있겠다 어쩌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인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스캐너를 열어 인도 뉴델리-한국 인천행 비행기 표를 검색하니 눈물이 핑 돈다. 젠장 너무 비싸잖아. 그렇다. 여행자들의 러시가 이어지는 성수기에 티켓을 검색했으니 가격이 쉣일 수 밖에. 핸드폰에 찍힌 숫자에 어이를 상실했지만 덕분에 건강을 되찾아겠다는 의지가 타올랐다. 여기서 어떻게든 나아서 비행기 품삯 굳혔다 생각하고 그 돈 내 몸, 마음에 아낌없이 쏟아붓자.

 

#3 쉼터 식당에서 이 상황에서 제일 먹으면 좋을 것 같은 음식 '된장찌개'와 'Korean green tea(동서 현미녹차 티백)'을 주문하며 기다린다. 빠간에서 전쟁같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래도 오늘 첫끼를 에어컨 쐬며 한식을 먹을 수 있는 행위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겠지'라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이 순간을 대면하면서, 언제 이렇게 내 자신과 몸으로 마음으로 강렬하게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었나 싶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와 함께하며 고생했던 몸 마음을 소홀히 한 내 자신을 반성하고 되돌아본다. 몸이 회복돼 다시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면 앞으로 언제, 어디서 끝날지 모를 이번 여행을 후회없이 해보자고 다짐한다.

 

매순간 내쉬고 있는 공기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만 의식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건강이 제일이다'란 말을 '그래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라고 끄덕이면서도 아직 젋으니까 나와 상관없는 아득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 중요성을 살갗을 찌르는 얼음조각처럼 온 몸 깊숙이 그 절절함을 느낀다.

 

건강 정말 정말 중요하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닌 것 자체가 이미 축복이며,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갖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그라에서 느꼈듯 몸과 마음이 삐끄덕 거리니 내 옆에 타지마할이 있다한들 눈에 뵈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의 여행도 마찬가지고 앞으로 무얼하든 간에 현재 내 건강, 능력에 자만, 과신말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가자.

 

700루피 같은 70루피짜리 동서 현미녹차를 후후 불어마시며 너덜너덜해진 내 몸 속에 수고했다며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몸 괜찮아지면 자축의 의미로 치킨에 맥주 까자. 엄마가 해준 밥, 집에서 자주 시켜먹던 단골집 치킨이 너무나 그리운 밤이다.

 

 

(180705) 델리 6일차, '기적같은 하루'

 

어제 하루 화장실 방문 20번으로 나만의 기네스북을 경신해 오늘은 어떻게 될까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다 아침이 지나고 점심때도 지난 오후 2시까지 화장실을 한번도 가지 않았다. 신도 내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신걸까.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지만 지금 내 손에 움켜준 평화가 너무나 따뜻하고 좋다. 

 

어떤 것이 신에게 닿은 것이지 모르니 당분간 된장찌개와 동서 현미녹차만 먹어야겠다.

 

사라나트 녹야원에서 부처님 말씀 생각하며,

바른 호흡, 바른 생각, 바른 마음, 바른 행동으로 탐욕, 탐닉을 경계하며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노력하자.

 

 

델리 어느 지하철 역에서/델리에 있으면서 내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사진, 어디로 가야할 지 가고 싶은 의욕도 없이 그저 멍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나는 정말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