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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629) 인도 아그라(Agra) 3, 순간의 찌푸림보다는 물소의 담담한 걸음처럼

(180629) 아그라 탐방

#1 아그라 요새(Agra Fort)

 

아그라 요새(Agra Fort)를 보고 델리로 넘어갈지 그냥 갈지 고민했었다. 아그라 오기 전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들 한테서 '델리하고 아그래 요새 둘다 비슷비슷하고 입장료를 500루피씩이나 받고 있으니까 비용 아끼고 싶으면 마음에 드는 곳 1군데만 골라서 보면 된다'라는 의견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그라는 타지마할밖에 모르고 갔던 나는 타지마할 봤으니 그냥 델리로 바로 갈까 고민했는데

언제 다시 아그라에 와보겠나 싶어 하루 더 있으며 아그라 다른 유적도 살펴보기로 했다.

 

<아그라 요새 가는 길>

 

입구 역할을 하고 있는 아마르 싱 문(Amar Simgh Gate) 앞에 서니 온통 붉은색으로 크고 단단한 성벽들이 번성했던 무굴제국의 위상을 여전히 보여주는 듯 했다.  

 

아마르 싱 문(Amar Singh Gate) 

 

아마르 싱 문을 지나면 자항기르 마할(Jahangir Mahal) 궁전이 보인다. 아그라 요새는 무굴제굴 제 3대 황제인 악바르(Akbar, 1556~1605) 황제가 1566년 축조한 것으로 손자인 샤 자한이 아름다운 궁전으로 재탄생시켰다. 무굴제국이 델리로 천도하기 전까지 악바르 대제와 자항기르, 샤 자한이 차례로 이곳에 거주했다. 

 

자항기르 마할(Jahangir Mahal) 궁전. 악바르 대제의 아들인 자항기르와 궁중 여인들이 머물던 곳으로 추정된다.

 

Diwan-I-Am(Hall of Public Audiences, 공회당, 公會堂)

 

Moti Masjid(Pearl Mosque) 왕실 가족들을 위한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하스 마할(Khas Mahal) 샤 자한 황제가 거주한 곳이며, 중정에는 사분정원(四分庭園)을 만들어서 화단, 수로, 분수들을 설치하였다.

 

하스 마할 내부. 햇볕은 강하지만 내부는 야무나 강에서 불어보는 바람으로 선선했다.

 

아그라 요새에서 빠뜨려서는 안되는 장소가 바로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이다. 포로의 탑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말년에 권력을 찬탈한 자신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아그라 요새 내부를 대궁전으로 축조한 샤 자한을 무삼만 버즈에 감금시킨다. 샤 자한은 8년동안 이곳에 유폐됨과 동시에 같은 곳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시신은 백단향 관에 안치되어 야무나 강을 통해 타지마할까지 운구된 뒤, 아내 곁에 묻혔다.

 

사실상 유배지나 다름없었던 이곳에 한줄기 위안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서 바라보던 자신의 아내가 묻힌 타지마할이었을 것이다. 그가 8년동안 바라봤을 시선을 따라가보면 보이는 타지마할이 아득하다.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에 잠겼을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같은 장소, 같은 시선에 머물고 있지만 나는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황제로서 누렸을 영광과 위상도 앞에 보이는 타지마할처럼 아득했으리라 추측만 해볼 뿐이다.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 2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itmad-ud-daulah), '베이비 타지'

 

아그라 요새 입구에서 호객하는 릭샤 기사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이동해 쉐어 릭샤로 보이는 1대를 불러 20루피에 흥정해 탔다. 기사 옆 좌석(그냥 기사 좌석에 두명이 앉은 형태)에 젊은 남자 1명, 뒷좌석에 할머니가 타고 계셨다. 바가지가 판치는 곳에서 나름 잘탔다고 내심 뿌듯해 하고 있는데 앳되보이는 기사가 흥정한 가격이 마음에 안드는 눈치였다. 기사 옆에 탔던 비슷한 또래 남자 손님한테 궁시렁거리는데 말은 못알아 들었지만 딱봐도 외국인이라 가격 더 붙여서 받았어야 했는데 그냥 태웠다고 흥정한 가격 얘기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그 기사가 중간에 갓길에 릭샤를 세운다.

 

"나 40루피 안주면 안 갈거야"

말로만 듣던 거리에 다짜고짜 세우기 기술을 시전한다.

 

'길에 널린게 릭샤인데 내가 너 무서워서 돈 더 낼까봐? 치사해서 내가 돈 더 주더라도 너한테는 안탈거다'란 마음으로 너한테 돈 안줄거라고 그냥 가라고 손짓하고, 뒤에 오는 릭샤를 부른다.

 

나의 강경대응에 돈을 더 줄 것 같지는 않겠다고 판단했는지 

 

"아 알았어 그대로 20루피만 받을게, 여기 타' 

진짜 다른 릭샤 타고 갈까봐 겁이 난듯 황급히 태세를 전환한다. 

 

그러고 나서도 기사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려서 나도 이에 질세라 반격하려고 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오른손으로 쉿하는 동작을 취하면서 그 기사를 계속 타이르셨다. 아마도 '20에 가자고 서로 합의했는데 그렇게 손님을 길가에 세워버리면 어떡하냐'고 하시는 듯했다. 사람에 치이면서도 사람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니 인도의 매력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불만 가득한 표정에서도  베이비 타지까지 태워다준다. 나도 날씨도 더운데 이런 대우를 받고 있자니 여전히 분이 안가셔 입구에 서있는 경비 아저씨들을 가리키며 불만 있으면 이 사람들한테 얘기하라고 으름장을 놓으니 더는 말 못하고 간다. 

 

20루피니 40루피니 사실 한국 돈으로 치면 몇백원 수준인데 외국인이니까 좀더 줄 수도 있지 매번 로컬 가격으로만 고수할 수 있겠냐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자 하면서도 눈앞에서 상황이 닥치면  화를 내고 감정이 상하니 아직도 수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다음부터는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해 봐야지.

 

 

베이비 타지와의 첫 대면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itmad-ud-daulah)를 무굴제국 제4대 황제였던 자항기르(Jahangir) 황제 때, 눌 자한(Nur Jahan) 황후가 부모를 위하여 1622~1628년에 지었고, 타지마할보다 13년이나 먼저 건축된 최초의 대리석 건물로 규모는 작지만 사용된 건축기법이 나중에 타지마할을 건축할 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아마 타지마할보다 작은 규모라고 해서 '베이비 타지'라고 붙여진 별명은 연대상, 역사상으로 따지자면 타지마할의 부모뻘이기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눌 자한 황후는 훗날 파키스탄 라호르(Lahore) 지역에 남편 자항기르 황제의 무덤을 짓기도 하였다.

 

유래가 궁금해 정보를 더 검색해보니 눌 자한 황후의 아버지 미르자 기야스 벡(Mizra Ghiyas Beg)은 페르시아 고위관료집안 출신으로 훗날 인도 무굴제국으로 이민을 와 자항기르 황제 재위 시절 수석 총리(chief minister)까지 오른 성공한 인물로 나와있었다. 제5대 황제 샤 자한의 아내 뭄타즈 마할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눌 자한과 뭄타즈 마할은 '이모와 조카'관계라고 하는데 족보가 어떻게 된건지 잘 파악이 되질 않는다.  타지 출신으로 자기 딸을 왕에게 시집보내고 출세할 정도면 수완이며, 처세술이 대단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같다.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는 '나라의 기둥(pillar of the state)'이란 뜻을 지닌 그에게 붙여진 칭호인데 뜻 자체부터 위세가 왕에 못지 않을 만큼 대단했을 것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

 

'베이비 타지'라고 불리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 무덤(Itmad-Ud-Daulah's Tomb)

 

아침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타지마할과 달리 이곳은 한가하고 조용했다. 아담한 크기의 건물 주위를 한바퀴 둘러본다. 내부로 들어가니 확실히 여자의 손길이 들어가서 그런지 꽃문양이며 창살 문양들이 아기자기하고 디테일 하게 꾸며져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벽에 새겨진 무늬이며 창살 문양들이 하나하나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아버지 무덤 천장에 태양과 우주를 형상화한듯한 부분이 백미였는데 입체적이면서도 디테일하게 꾸민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베이지 타지'라는 닉네임만 듣고 안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가 묻힌 중앙 천장. 태양과 우주를 형상화한 듯한 입체적이고 디테일한 벽화가 인상적이다.

 

사람도 별로 없어 안에서 대리석 바닥에 앉아 있으니 근처 야무나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건물이 풍기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타지마할과 다른 별개의 매력을 가진 장소였고 그 장소를 방문해 감사했다. 

 

구경을 마치고 나가려던 참에 청년들이 다짜고짜 같이 사진찍자고 모여든다. 나 역시 알고 지낸 사이처럼 태연하게 미소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어지니게 참 재밌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여행자라고 다짜고짜 다가가 사진찍자고 해도 민망했을 법한 행동들인데 그 친구들한테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고 정말 외국인에 대한 순수한 호감, 관심에서 나온 행동이란게 느껴져 나 역시 거부감이 별로 들지 않아 기분좋게 찍었다. 

 

좀전에도 아그라 요새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더워서 잠시 앉아 쉬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말도 안걸고 내 옆에 앉아 태연하게 셀카 찍고 자기 가족 영상통화 걸어서 서로 안부묻게 했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를 좋게 생각해서 보인 행동이고 또 먼저 다가와 관심을 보이고 좋아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인도 사람 특유의 뻔뻔함과 능글맞음에 고개를 젓다가도 이런 순수한 행동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니 인도는 참 알 수 없는 나라다. 

  

다짜고짜 사진찍자는 청년들과 같이 셀카도 찍고 악수도 나누니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잘 느껴졌다

 

 

#3 불시착에서 만난 야무나 강 일상의 풍경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 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릭샤를 잡았다. 십대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영어도 잘 모르고 구글 지도를 보여줘도 이해가 안가는 눈치다.

 

"Near Taj Mahal ticket office, okay?"

"Okay okay~"

 

일단 태워야겠다는 심산이었는지 내가 제시한 가격에 가겠다고 타란다. 어떻게든 알아서 가겠지 했는데  아그라 요새에서 건너온 암베드카 다리(Ambedkar Bridge)로 다시 나와야 하는데 이상한 쪽으로 빠지길래 릭샤를 세웠다. 

 

내가 설명을 해도 잘못 알아 들으니까 지나가는 릭샤 기사를 잡아 도움을 요청해서 간신히 의사소통할 수 있었는데 요지는 '내가 타지마할 어쩌구 설명해서 '뷰 포인트'로 알아들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기사가 가려던 곳은 야무나 강과 함께 타지마할 뒤편을 볼 수 있는 '뷰 포인트'이자, 샤자한이 자신이 죽어서 묻힐 곳으로 이곳에 블랙 타지마할을 지을려고 구상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Mehtab Bagh(Moonlight Gardan)이란 걸 알게 됐다.) 아이참 내가 설명할 때 끄덕였던게 누군데 이제와서 엉뚱한 소리를 한담. 됐다고 내가 다른 릭샤 타겠다고 그냥 가라고 하자 다짜고짜 요금을 내란다. 싫다고 하자 처음 요금에서 좀 낮춰서 합리적인 제리를 한 것인양 그러길래 정 받고 싶으면 경찰서 가서 받으라고 하고 그냥 무작정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꼭 서로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그 기사 잘못만은 아닌데 왜그리 박하게 대했는지 미안한 감이 든다. 

좀 걷고 나니 그 흔한 릭샤도 안보이고 맵스미로 검색해 보니 무슨 다리를 건너야 한다고 나와 그쪽으로 향한다. 다리를 지나가기 전 야무나 강가에 넓게 펼쳐져 있는 형형색색의 천들이 널려있는 모습에 이끌려 강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가까이 가보니 천 무더기는 한쪽에 쌓아올려져 있었고 강가에서 남자 몇명이 빨래판으로 보이는 판판한 돌을 놓고 천을 두손으로 움겨잡고서 일일이 도리깨질 하듯 털어내고 있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은 기계로 돌리는 사회에 살고 있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인간이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쌓아올려진 옷감들의 무게를 그들은 오로지 빨래판과 자신들의 신체근육만을 사용함으로써 그 중량을 묵묵히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 지난한 수고로움이 기어이 고단한 육신과 함께 가족의 따뜻한 밥상으로 돌아갈 모습을 생각하니 나는 목이 메었고, 근처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수질이 영 좋지 못한 현장에서도 삶이 이어지는 광경을 목격하니 나는 숙연해졌고 감히 카메라를 그들 가까이 대지 못했다.

 

 

Strachey 다리 밑에서 목격한 삶의 현장들

 

누군가의 고단한 육체노동으로 다시 태어난 옷감들의 색깔이 유난히 눈이 시리도록 강렬했다.

 

그 젊은 릭샤 기사와의 만남이 아니었으면 스쳐지나쳤을 소중한 삶의 모습을 생각하니 다시한 번 그 젊은 기사에게 모질게 대했던 내 자신을 깊게 반성한다. 

 

당시에 안좋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지나고 나니 오히려 다행인 것들이 많은 것처럼 순간의 찌푸림에 치우치기 보다는 결국에는 좋은 일들이 다가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담담히 나가도록 하자. 

 

 

아그라 요새와 야무나 강/순간의 찌푸림보다는 물소의 담담한 걸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