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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625-0627) 인도 아그라(Agra) 1, 아프니 타지마할도 똥이더라

25일 가야(Gaya)역에서 아그라(Agra)로 가는 기차를 탔다. 같은 칸에는 라자스탄 출신 대가족들이 있었다. 가족 분들은 친절하게도 싸온 음식들을 나눠주셨고 달짝지근한 요거트를 잘못먹고 탈이나 이틀을 꼼짝없이 숙소에만 있어야 했다. 타지마할을 앞에 두고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처음에는 많이 답답하고 화도 났지만 시간이 지나고 진정이 되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요양하면서 끄적였던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180625) 가야-아그라 이동, 2AC 기차에서 식중독이라니

 

#1 어제 보드가야에서 스님들과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길에 망고를 주셨다. 망고 외에도 챙겨주신 것들이 많아가야로 돌아갈 때 번거로운 감이 있었으나 숙소에서 맛을 보니 완전 달고 과즙도 풍부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스님의 큰뜻을 모르고 불평했던 저를 용서하시옵서서.

 

아침에 남은 망고를 입안에 가득 베어물으니 이만한 행복도 없었다.

찌를듯 더운 날씨가 이런 탐스러운 망고를 맺게한 것이니 너무 덥다고 불평만 할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2 가야 첫날 방이 찜통이어서 잠을 거의 설쳤다. 내 생애 이런 열대야는 처음이었다.  빤쓰만 입어도 덥고, 선풍기를 아무리 돌려도 더운 바람밖에 불지 않고 뭘해도 더워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양동이에 물 받아 발 담그고 손수건에 물 담가 계속 몸을 적셔가며 자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버틴다는 게 표현이 맞을 듯 했다. 

 

'왜 바라나시 사람들이 왜 멀쩡한 집을 두고(집이 없을 수도 있지만) 강가에 그냥 길바닥에 누워 잠을 잤었는지 알 것 같다.'

 

다행히 둘째날에는 낮에 비가 내려 첫날보다는 훨씬 질 높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인도 여행하면서 숙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잠이 하루의 질을 좌우한다고 과장이 아니다. 팩트다. 돈 좀 아끼려다 겔겔대지 말고 한창 더울 때 왔으니 스스로한테 인색하게 굴지 말고 과감히 에어컨 방으로 가자.

 

#3 가야에서 아그라까지는 10시간 넘게 걸리는 장거리 노선이다. 표가 없어 '2AC 외국인쿼터' 좌석을 구했지만 더위에 고생한 나한테 안락한 환경에 쾌적한 에어컨 바람 쐬며 여유있게 갈 모습을 상상해 보니 잘 구한 것 같다. 2AC 좌석을 실제보니 칸마다 커튼을 칠 수 있었고 공간도 널널했다. 그렇게 막 떠드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물건 파는 사람들도 아마 허가받았을 사람들이 가끔씩 조용히 읊조리면서 지나갈 정도니 SL 일반칸을 직접 타보진 않았지만 현대판 '설국열차'라 해도 무방할 듯 싶었다.

 

나와 같은 같은 칸에 있던 사람들은 라자스탄(Rajasthan) 출신의 인심 좋은 가족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녀 3대가 함께 탔는데 아들은 파트나(patna) 지역에서 식료품 사업을 하고 있단다. 영어도 잘하고 딱봐도 잘사는 집안인 것 같았다. 시간이 아침 시간대라 곧 직접 준비한 아침을 꺼내는데 나한테도 음식을 나눠주셔서 감사했다. 차파티에 바삭바삭한 과자같은 것에 깻잎장아찌 같은 반찬을 주셨는데 솔직히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여주신 성의가 있어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와 똑닮은 아들이 내 자리는 원래 침대 아래칸인데 다른칸 위쪽 침대에 자기들 자리 하나 있다면서(한 자리만 따로 떨어져 있어 같은 칸에 있었던 것 같다) 그쪽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서로 신경 안쓰고 편안히 누워서 갈 수 있으니 나야 감사할 따름이었다.

 

#4 점심 때쯤 되자 아들과 손녀가 먹으라면서 직접 내가 있는 곳까지 음식을 가져다 주셔서 감동이었다. 마침 출출했던 차에 맛있게 먹었으나 먹고 나니 배가 이상해 직감적으로 뭘 잘못 먹었다는 걸 느꼈다. 아침 때와 비슷한 음식이라 별 문제 없겠지 했는데 아침에는 없었던 요거트가 문제였던 것 같다. 먹을 때는 달달하니 아무 생각없이 먹었는데 쉽게 상할 수 있는 유제품을 장시간 이동하는 자리에서 덜컥 먹은게 화근이었다. 좀 지나니 팔에 두드러기까지 올라온 걸 보아 식중독에 걸린 것 같았다. 아그라 도착할 때까지 덜컹거리는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거리니 온몸이 기진맥진하다. 2AC 좌석에 편한 자리도 구해 푹 쉬었다가 가겠구나 싶었는데 기차에서 식중독이라니.

 

도대체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이런 생고생을 하고 있는지 침대에 누우면서 별 생각이 다 든다. 

어떻게든 아그라 숙소까지 안전하게 도착해야 한다. 

 

 

(180626) 아그라 요양 1일차

 

#1 기차 지연으로 예정 도착시간을 훌쩍 넘겨 밤 11시에 아그라역에 도착했다. 몸상태도 안좋고 시간도 늦어 서둘러 숙소에 이동해야 했다. 기차역에서부터 서성이던 아저씨가 계속 쫓아다녀서 이 시간에 다들 그사람이 그사람일 것 같아 대충 흥정하고 이동한다. 

 

도착한 숙소는 4인 도미로 깨끗했는데 인도사람으로 보이는 남자 2명이 방안에서 담배를 얼마나 피워댔는지 냄새가 배어있어서 몸상태도 안좋은데 죽을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근처 다른 숙소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바로 옮겼다. 다행히 옮긴 숙소는 시설도 좋고 에어컨도 빵빵한데 4인 도미 300루피니 가격도 착하고, 스탭도 친절, 바로 옆에 에어컨 까페가 있어 요양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점심먹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눈좀 붙였더니 한결 나아졌으나, 머리가 띵하고 열이 나 몸살 증세를 보였다. 

욕심부리지말고 아무생각말고 쉬자.

 

#2 저녁에 숙소 까페에 주문한 저녁이 맛이 형편없었다. chicken biryani(생쌀에 향신료에 잰 고기, 생선 또는 계란, 채소를 넣어서 찌거나 고기 등의 재료를 미리 볶아 반쯤 익힌 쌀과 함께 찐 인도의 쌀요리)를 주문했는데 (그냥 맨밥에 닭다리 한점 덩그러니 올려놓은걸 내놓아서 뭐가 더 나오는 줄 알았다. 이렇게 팔거면 메뉴판에 왜 먹음직스런 사진을 올려놓는 건데? 주문하기 전부터 음식 만든 까페 스탭이 까페에 있던 남미 여자 여행자한테 노닥거리는데 정신팔려 애쓴다 하고 있었는데 그 꼴사나운 광경을 보고 이런 성의도 없고 가격도 비싼(무려 240루피) 음식을 먹으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차에서 탈난 이후로 쉬운게 없다.

 

저녁을 먹고 가볍게? 화장실 3번 들락날락거렸다. 남들은 타지마할 보려고 아그라 오는데 나는 요양하러 온 꼴이라니. 아프니까 타지마할이고 뭐고 눈에 뵈는게 없다. 

 

 

(180627) 아그라 요양 2일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국 아무것'

 

#1 먹으면 즉각 쏟아내며 정상화를 위해 분투 중인 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충분한 휴식보장밖에 없었다. 숙소에 있다가 먹을 때만 되면 까페에 잠깐 있다 오는 식이었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3시간정도 꽤 오랫동안 깊게 잠들었다. 내 몸과 마음은 말 그대로 휴식이 필요했는데 정작 그 메시지를 귀담아 듣지 않고 반대되는 행동을 했으니 그 상한 음식이 아니었어도 어디서든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이 든다.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멈췄으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 아닐까 싶다. 

  

#2 휴식이 최우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대한 어떤 거부감, 불안감이 생겨 자꾸 휴식과 반대되는 행동(휴대폰으로 유튜브 보기, 독서)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결국은 많은 아무것인데..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숙소 앞 까페에 누어 유리창에 비치는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스님이 주신 염주를 굴리며 나에게 집중하니 이게 몸 마음이 원하던 것이었구나 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부처님이 견딜 수 있는 아픔을 주신 것은 다시 한 번 여행의 의미와 목적을 되새기며, 생각해 보라고 나에게 화두를 던져주신 것이리라. 

 

여행을 왔으면서도 한국에서 해도 무방하지 않은 무의미한 행동의 연속을 경계하자. 휴대폰을 내려놓자.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고 귀를 귀울이자.

 

이번 여행은 그냥 주어진게 아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는 현재는 나와 인연을 앶은 소중한 분들과 존재들의 응원, 지지와 함께 삶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내 노력이 조그맣게 보태진 것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할때는 하고 안 할때는 미련없이 내려놓는 거다. 

 

#3 다시 해보자는 의미로 깔끔하게 면도하다 오른쪽 팔뚝에 큼지막한 두드러기 무리를 발견했다.

내 몸은 아직 식중독 균과 싸우고 있는 전시 상황이구나.

 

#4 저녁에 한국 대 독일 월드컵 경기가 있어 까페에서 여러 여행자들과 관람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2패를 하고 있어 16강 탈락 확정이었고 상대는 천하무적 전차군단 독일이라 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결론은 2대0 완승! 후반전 막바지에 손흥민이 이 악물고 뛰어가 기어이 공을 잡아 골로 연결시키는 장면에서 전율이 일어났다. 독일 16강 탈락이라는 대이변에 까페 분위기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결승은 당연히 간다는 생각으로 단지 거쳐가는 과정으로서 지켜봤을 독일 여행자들은 망연자실했고, 태극전사들의 승리의 기쁨을 함께해준 여행자는 영국 사람이었다 :) 그 영국인이 한국 경제규모도 크고 잘산다면서 자기 알고 있는 모든 지식 동원해 치켜세워주는데 내가 볼땐 대영제국이라는 역사를 가진 영국이 쪼그라들고, 사실상 현재 유럽연합의 큰형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이 한방 먹은 것에 대한 사심이 가득 담겨 있다고 느낀 재밌는 광경이었다. 

 

내게 아그라 요양이라는 시련을 안겨준 문제의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