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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인도(18.06.15~09.23)

(180615-0623) 인도 바라나시(Varanasi), 한꺼풀 벗기니 달리 보이더라

ㅇ (180615) 네팔-인도 국경 통과, 바퀴달린 물건과 두발 달린 사람들의 집합소

 

2박 3일 간의 룸비니 여행을 마치고 인도 국경을 넘는 날이다. 이동 동선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룸비니(Lumb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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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와(Bhairawa, 네팔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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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울리(Sonauli, 인도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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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푸르(Gorakh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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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Varanasi) 

 

 

여행자들로부터 악명이 자자한 두 나라 국경을 넘어야 하고, 바라나시까지 거리가 꽤 멀어 험난한 일정이었다. 혼자였으면 엄두가 나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함께하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 든든하다.

 

아침 대성석가사 앞에 대기하고 있는 릭샤로 마을 버스정류장까지 간 후 바이라와로 가는 로컬버스를 갈아탔다. 버스가 국경까지 바로 가지 않아  다른 버스로 한 번 더 갈아타야 했다.

 

국경 넘는게 걱정돼 다른 여행자들은 어떻게 국경을 넘었는지 블로그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들의 무용담에 걱정을 덜기는 커녕 더 큰 걱정을 불러왔다. 아니나 다를까 국경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기다리고 있던 호객꾼들이 몰려와 어디가냐고 외쳐댄다. 국경답게 수많은 버스, 트럭, 승용차, 오토바이, 수레 같은 바퀴달린 물건과 두발 달린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귀를 찢는듯한 트럭의 경적소리와 무언가를 계속 외쳐대는 사람들 소리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고 다른 여행자들이 저마다 블로그에 적어놓은 기억이 나 잔뜩 쫄았지만 그런 최악의 순간들만 가정하고 가서 그런지 처음 버스에 내릴 때 이후로는 오히려 평온한 느낌을 받았다.

 

네팔 국경사무소에 출국 도장을 받고 국경을 통과한다.  양 국가를 상징하는 관문들을 지나 쭈욱 걷다보면 작고 허름한 인도 국경사무소가 보인다. 짐은 무겁고 날은 더워 남은 네팔 루피로 인력거를 타고 가는 사치를 부렸다. 사무소 안을 들어가니 한눈에 봐도 뜨악한 환경인데 직원들은 이미 익숙한듯 평온해 보였다.

 

인도 입국 도장까지 무사히 받고 바라나시로 가는 버스만 찾으면 됐다.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은 사무소 직원에게 위치를 물어보자 정있게 답해주셔서 내심 놀랐다. 나와 친구는 처음에 고락푸르에서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로 가는 방법을 고려했으나 네팔에서 기차표 구하는게 쉽지 않았고 당일날 기차역에 가서 표를 구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아 차선책으로 직행 버스를 구하기로 결정했다. 

 

직원 분이 알려준 위치에서 바라나시 행 버스를 물어보자 대뜸 이 버스가 간다며 곧 가니까 타란다. 인도는 먹는 물까지도 흥정해야 한다는 말에 버스 요금을 묻고 바로 깎아달라고 요구했는데 차장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요금이 '정찰제'란다. 인도에서 정찰제라니. 속는셈치고 불러준 가격을 냈더니 버스 차장이 가지고 있는 간이 기계로 현장에서 표를 끊어주는 아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표에는 이동거리에 따라 책정된 금액이 적어져 있었다. 정찰제 버스에 다짜고짜 흥정을 했으니 차장은 이놈들 뭐지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2+3인 좌석으로 배치된 AC버스였다. 하지만 말이 좋아 AC지 연식 자체가 오래된 버스라 그런지 찔끔찔끔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땀 찔찔 흘려가며 가지 않는 것에 더 의미를 두었다.

 

오후에 출발한 버스는 고락푸르를 거쳐 자정에 가까워서야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내 친구는 배가 고파도 화장실이 걱정돼 과자로 때우고 거의 금식하며 갔지만 나는 길거리 휴게소에서 튀김을 파길래 튀김은 괜찮겠지 싶어 손을 댔는데 그후로 배가 계속 꾸록꾸룩거려 속이 불편한 채로 가야했다.  

 

네팔 국경/인도 관문과 비교해 색이 바래고 허름했지만 네팔 불교를 상징하는 스투파에 부처님 눈매 만큼은 또렷했다.

 

인도 국경/인도 관문은 인도 국기 삼색과 물레무늬를 배치한 심플하지만 견고한 디자인이다.

 

ㅇ 바라나시 일상, 현지 먹거리 탐험

   # 1 또룬 삼촌네 뿌리(Puri) 빵과 채식 카레 사브지(Sabzi) 그리고 꼬마들한테 인기만점인 잘레비(Jalebi)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우연히 발견한 로컬 가게에서 아침을 주로 때웠다. 내가 묵었던 숙소 '옴 레스트 게스트하우스(Om Rest House)'에서 입구를 기준으로 정면으로 나가면 50m도 안되는 거리에 바라나시를 여행한 한국 여행자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을 법한 철수의 동생 '만수네' 짜이 가게가 나온다.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조금만 더 가면 형제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가 있다.

 

아침으로 무얼 먹으면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을까 어슬렁 거리다 한적한 아침시간에 유독 이 가게 앞에만 사람들이 바글바글한게 신기해 나도 그 대열에 껴본다.

 

한 남자는 화덕에서 빵같이 보이는 반죽을 연신 튀기고 있었고, 그 옆 다른 남자는 빵을 건네받아 잔뜩 부풀어진 빵을 포장하기 좋게 납자하게 눌러 담아 신문지에 포장하고 미리 준비해 둔 커리소스와 같이 함께 주는 방식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어린 학생들이 많았고 빵을 꽤 많이 주문해 갔는데 아마 가족들 중 막내가 심부름와 가족 전체가 먹을 분량을 사가는 듯했다.  

 

사람들은 질서있게 한줄로 선 게 아닌 느슨한 형태로 모여있다가 빵을 받아가는 모습은 마치 어미새의 모이를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새끼 새들이 간절한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장이 바쁘게 작업하다 다음 주문을 받기 위해 고개를 들면 주인 어미의 간택을 받고자 사람들이 보이는 몸짓은 가족을 대표해 아침을 책임지는 대표로서 비장하기까지 했다.

 

생존 대열 마지막에 서있던 나는 빵을 받고 나간 자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차지해 도통 진척을 보이지 않다 겨우받아냈다. 

 

숙소에 들어와 로비에서 이걸 어떻게 먹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한국말 잘하는 인도 스탭 비키가 쟁반을 빌려준다. 어디서 사왔냐고 묻자 알려줬더니 자기도 거기서 자주 사먹는다면서 또룬 다(큰형)이 운영하는 '맛집'이란다. 빵 이름을 물어보자 '뿌리(puri)'하고 한다. 빵에 사브지(Sabji)라는 채소를 곁들인 커리를 찍어먹는 단순한 음식인데 빵의 고소함과 더불어 커리소스가 빵의 느끼함을 잡아주니 아침으로 손색이 없었다.

 

가격은 빵 1개당 5루피, 한화로 약 80~90원인셈이다. 커리 소스까지 함께 주니 가격은 말도 못하게 싸고 맛은 좋으니 현지 사람들이 왜 많이 찾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스탭 라케시가 거기 '잘레비(Jalebi)'도 맛있으니 다음에 먹어보라고 추천해 줬는데 나중에 가서 먹어보았다. 꽈배기 모양의 반죽을 튀겨 물엿같은 끈적하고 달달한 소스를 묻혀 판매했는데 디저트로 먹기 딱 좋았다. 가게에 왜 많은 꼬마가 있는지 내가 꼬마였다면 이게 얼마나 신이 나는 심부름인지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아침마다 현지 사람들이 줄서있는 모습을 볼 수있다/많은 꼬마 아이들이 인내심있게 기다리는 이유는 인기만점 '잘레비' 과자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뿌리(Puri) 빵과 사브지(Sabji) 커리

 

 # 2 무더운 바라나시의 피난처 '바바라씨(Baba Lassi)' 

 

6월 바라나시는 대낮에는 가트 주변을 조금만 돌아다녀도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비오듯 쏟아질 정도로 더웠다. 낮에는 숙소 에어컨 바람에 피신해 있다가 해가 떨어질 때쯤 숙소를 나서거나 구경하고 돌아올 때 꼭 '바바라씨' 가게 망고라씨를 먹었다.

 

라씨(Lassi)는 인도의 플레인 요구르트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손님의 취향에 맞춰 향신료와 과일을 넣어 판다. 바라나시에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여러 라씨가게가 있다. 내가 있는 숙소에서는 가게들이 너무 멀어(거리상은 얼마 되지 않지만 너무너무너무 더워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숙소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바바라씨 가게를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도대체 이런 달달하면서도 새콤함이 가득한 오묘한 맛에 질릴 수가 없었다. 

 

살인적인 무더위에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지만 그 덕분에 라씨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든 순간에서도 위안을 삼을 수 있고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내 삶을 더욱 사랑하고 더 단단해 지는 계기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리라.  

 

바바라씨(Baba Lassi) 가게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먹었던 망고 라씨

 

ㅇ 바라나시 일상을 마주하며, '한꺼풀 벗기니 달리 보이더라'

 

바라나시의 하루는 다채롭다. 아침부터 밤까지 벌어지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과 과장을 조금 보태 모든 것이 다른 새로운 세계에 뚝 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 살면서 내가 습득하고 익힌 경험과 마땅히 그러함이 옳다고 믿고 있는 가치관, 삶의 방식들이 철저히 파괴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진다. 내가 자라며 사회에서 습득한 '예의'나 '상식'이란 것들이 과연 그 정의와 부합하는지, 그런 것들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곳에서 일어나는 행태들을 어디까지 받아들여 하는지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만든다.

 

바라나시의 아침은 몽환적이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은 공간에서 붉게 떠오르는 해와 유유히 흘러가는 강가(갠지스강)를 바라보고 있으면 평화로운 기운이 내게 밀려온다. 나를 휘어잡고 영영 놓지 않을 것 같았던 불안이나 고민이 얼마나 우리 스스로를 좀먹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빨래를 하는 할아버지 옆 손자는 갠지스 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 1  동물과 사람, '지구 위 모든 생명의 본질은 동일하다'

 

길바닥에 두 사람이 누워 잠을 자고 있다. 그 옆에는 개들도 함께 자고 있다.

문득 인간과 개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지만 길바닥에 누워있는 개와 인간을 구별짓기 어려웠다.

 

'동물들이나 길바닥에서 자지 사람인 우리가 어떻게 그런 곳에서 잠을 자나'

'더위를 피해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달콤한 잠을 자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는 것은 개나 인간이나 똑같구나.'

 

바라나시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소들을 볼 수 있다. 무리를 지어 앉아서 휴식하고 있거나 좁아터진 골목길을 떡하니 차지하고 지나다니는 소들이 비켜나가기를 기다리다보면 소들도 인간을 본체만체, 인간도 소들을 본체만체 제 갈길 가는 모습들에서 그냥 네발로 걸어다니는 사람, 두발로 걸어다닌 소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는 우리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맛있는 고기까지 주는 고마운 동물이지'

'소는 우리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소중히 대해야 해'

 

같은 소로 태어났으면서도 한국에서 마블링 투플러스 등급을 매긴 살점을 얻기 위해 축사에 갇혀 사육당해지는 '한우'와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바라나시 소'들의 운명의 장난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싶었다. 

 

인간은 '이성'을 가졌기에 다른 종들과 엄격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존재라고 우리 스스로를 판단하고 다른 종들과 구별짓고 그렇게 행동하지만, 인간 역시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종들 중의 하나로서 생각해 본다면 참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자고 있는 사람은 같이 자고 있는 개에 경계심이 없다. 개도 옆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다. 잠동무로서 인간과 개의 구별은 보이지 않는다. 지구를 함께 여행하는 생명들만 있을 뿐이다. 모든 생명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 2 신성함과 불결함, '강가 물 색이 탁하고 흐릴 수록, 강가의 신성함은 더 고결하다'

 

강가는 신성한 강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육신을 씻으면 전생과 이생에서 쌓은 죄를 씻을 수 있으며, 죽어서 화장한 재를 갠지스강에 뿌려지면 성스러운 강물로 영혼이 속죄를 받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에 부응하듯, 매일 밤 강가 신을 위한 제사의식이 펼쳐지며 제사의식을 통해 구원받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신성한 강이라고 해서 엄숙하게 진행되는 강가 신을 위한 제사의식과 성수를 대하듯 경건한 몸가짐으로 강물을 마시며 몸을 씻으며 자신의 죄를 씻는 모습들만 상상하고 온다면 낭패보기 쉽다. 처음 본 바라나시 강가의 모습은 '성스러운' 강가 물이 아닌 시쳇말로 그냥 똥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강가를 어떻게 신성한 강으로 볼 수 있지?'

게다가 매일 밤 제사가 열리는 제단 옆에서 사람들은 빨래를 하고, 물장구 치며, 크리켓을 하고 외국인 여행자들을 쉴 새없이 호객하는 천태만상의 풍경들로 인해 내 머릿속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매일 밤 강가 신을 위해  제사의식이 거행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죄를 씻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매일 밤 제사가 열리는 제단 옆에서 사람들은 빨래를 하고, 물장구 치며, 크리켓을 하고 외국인 여행자들을 쉴 새없이 호객하는 천태만상의 풍경들로 인해 내 머릿속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풍경을 마주한다. 마주하고 마주하다 보니 이렇게 정리해 본다.

 

'사람이 쌓은 전생과 이생의 죄는 무겁고 더럽다.

사람들은 강가에서 죄를 씻고 구원받는다.

강가(갠지스강)는 그 죄들을 인자한 어머니처럼 모두 품안에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신다.

강가는 사람이 살면서 본인들의 육신에서 나왔지만 자신들도 더럽다고 생각하는 똥, 오줌부터 죽어서 타다남은 혹은 화장을 하지 못한 육신까지 모두 거두어 주신다.

그것도 못해 빨래를 할 수 있는, 더위를 피해 몸을 식힐 수 있는 공간까지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시니 강가야말로 자애롭고 성스러운 존재이다.'

 

'물 색이 탁하고 흐릴 수록, 강가는 더 고결하며 신성하다'

 

 

  # 3 삶과 죽음, '생명은 모두 죽고,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바라나시에 있는 많은 가트들 중 버닝가트(burning ghat)는 화장터 역할을 하고 있다. 24시간 운영되는 곳답게 화장에서 나온 연기로 가트 건물에 그을림이 가득하다. 가트 주변에는 허리만한 장작더미들이 곳곳에 쌓여있고, 그것도 모자란지 장작더미들을 잔뜩 실은 배들이 계속 들어온다. 여기저기서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를 아는 지 모르는지 배고픈 소들은 주변을 기웃거린다. 죽은 자는 주황색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자신과 연을 맺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들것에 실려있었다. 연을 맺은 사람들은 죽은 자를 물가에 두고 기도와 함께 강가 물을 적신다. 

 

버닝가트의 화장은 곡소리, 침통에 잠긴 소리들은 들리지 않았으며 담담히 이루어졌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이 분명하나 그 슬픔의 감정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묵직한 침묵을 통해서도 슬픔이 전달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나는 보트를 타고 아침, 저녁 강가에서 보이는 가트 풍경들을 관찰했다. 특히 버닝가트와 그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없는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버닝가트 바로 옆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모여 웃통을 벗고, 함께 몸을 씻고, 헤엄치고,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고, 어머니들은 빨래를 하며, 마을 청년들은 크리켓을 치고., 연인들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정답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가트 뒤 시장에서는 더운 날씨에도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삶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회에서 살아온 나는 삶과 죽음이 눈 앞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이질감과 동시에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저렇게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도 결국 삶을 마치는구나.'

'죽음은 딴세상 남 일이 아니라 가까이있는 내 일이구나'

'짧고 덧없는 삶이지만, 그렇기에 현재가 축복이니 순간에 최선을 다해 행복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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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 역할을 하고 있는 버닝가트(Burning Ghat)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출생-성장-젊음-늙음-죽음의 과정은 강가처럼 느리지만 계속 흘러가며, 멈출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어 필연적이다.

 

 

매일 죽은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버닝가트의 불은 꺼지지 않지만, 가트 바로 옆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모여 웃통을 벗고, 함께 몸을 씻고, 헤엄치고,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고, 어머니들은 빨래를 하며, 마을 청년들은 크리켓을 치고., 연인들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정답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처음만난 바라나시는 이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더위에, 많은 인파에, 똥 천지에, 똥물에, 호객행위에 진저리가 났다.

그런 지옥같은 곳에서도 사람들은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갔다. 워낙 상황 하나하나 자체가 기가 막히니 인도 사람들은 달관을 한 듯 보였다. 

 

나는 내가 가진 편견과 편애를 사랑하지만 바라나시에 있는만큼은 내려놓고자 했다.

 

'아 그런가 보다' 하며 한꺼풀 벗기니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바라나시의 본모습들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들을 주저리 적어놓았지만 나는 바라나시를 전부 알지 못한다. 바라나시에서 보고 느끼며 쌓은 내 편견들의 무지함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인도여행을 왜 하고 있고, 왜 계속 해야 하는지를 절실히 느꼈다. 

 

 

인도에 와서야 비로소 인도 여행의 이유를 알게 됐다.

 

강가(갠지스)강에서 본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