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613-0615) 네팔 룸비니(Lumbini), 푹푹찌는 더위가 있어 시원한 보리수 나무그늘의 고마움을 알게 된 것처럼

ㅇ 정든 해리네 식구들과 포카라를 떠나며

 

5월 14일 처음 포카라에 도착하다.

5월 18일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을 시작하다.

5월 30일 안나푸르나 쏘롱 라(Thorong La, 5416m)를 넘다.

6월 4일 18일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로 돌아오다.

6월 13일 룸비니(Lumbini)로 떠나다.

 

포카라에 지내면서 2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과 인도여행 결정. 둘 다 여행을 떠나기 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포카라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덕분에 다른 불순물을 제거하고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었다. 거기에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해리 아저씨네 가족들까지.  

 

613일 정든 포카라를 떠나 룸비니(Lumbini)로 향한다. 떠나는 날 해리 아저씨가 직접 오토바이로 터미널까지 바래다 주셨다. 버스 출발시간보다 넉넉히 도착해 짜이까지 사주며 함께 기다려 주신다. 무뚝뚝한 말투지만 정많은 해리 아저씨와 가족 분들 덕분에 포카라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듬직한 동반자 산토스와 안나푸르나 라운딩까지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으니 초짜 여행자로서 과분한 선물을 받아 감사할 따름이다.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리 아저씨!

 

 

ㅇ 룸비니 여행 그리고 인도로 같이 떠날 동행과의 만남

 

인도로 넘어가기 전 룸비니를 가보고 싶었다. 룸비니는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가 기원전 623년에 태어나신 곳이다. 룸비니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gaya), 제자들에게 첫 설법을 한 사르나트(Sarnath, 열반에 든 쿠쉬나가르(Kushinagar)와 함께 불교 4대 성지에 속한다. 나머지 3곳은 인도에 있는데 유일하게 룸비니만 네팔에 있고 마침 내가 넘어가려는 바이라와-소나울리 네팔 인도 국경 부근에 있었다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역사적으로 기독교, 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에 영향을 끼친 종교의 창시자가 태어난 곳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이후 포카라에 지내면서 세계여행 중인 동갑내기 한국인 여행자를 알게 되었고 함께 인도를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동갑내기 친구는 해군 부사관을 전역해 제주도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활동한 친구였다. 이미 동남아 배낭여행을 마치고 인도에서 터키, 유럽, 미주, 남미까지 여행을 계획 중인 포부가 넘치는 친구였다.

 

로컬버스를 타면서 본 남동부 테라이(Terai) 평원에 자리잡은 룸비니는 정말 한적한 농촌 시골마을 모습이었다. 평원을 가로질러 걸어서 둘러보기에는 한참 걸릴듯한 거대한 규모의 국제사원지구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곳이 부처님이 과연 태어나신 곳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ㅇ 대성석가사(大聖釋迦寺), 한국인 순례자들의 든든한 보금자리 

 

룸비니 국제사원지구는 한국사찰인 대성석가사(大聖釋迦寺)를 비롯해 네팔, 태국, 미얀마 등 32개 사원들이 위치한 곳이다.

 

우리나라 사찰인 대성석가사에서 2박 3일 묵었다. 대성석가사는 순례자들에게 숙소와 매 삼시세끼를 제공해 주어 한국 여행자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여행자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다(모든 국가 사원들이 순례자들이 숙식을 제공하지는 않는 듯 보였다). 초기에는 돈을 아예 받지 않았는데 주변에 항의가 있어 소정의 비용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감사한 가격이었다(1박당 500루피). 숙소에 중국 여행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한 중국 스님이 중국인이냐고 묻자 한국인이라고 답했더니 관심을 보이면서 본인이 오늘 사온거라며 망고 하나를 주신다.

 

망고를 한입 베어무니 과즙이 아주 달고 맛있었다. 이글이글거리는 날씨가 사람은 힘들게 하지만 망고의 과즙은 더 달게 만드나 보다. 바로 옆에 중국 사원이 있는데도 한국 절에 있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바로 옆 중국 사원은 순례자가 많이와 스님이라해도 무조건 2 3일까지만 머무를 수밖에 없어 중국사원에 있다 옆집?인 이곳으로 넘어왔단다. 몇마디 얘기 나누다 보니 그 스님과 친해져 대화를 계속 나눈다. 

 

스님은 베이징 근처 한 절에 있다가 성지 순례차 이곳으로 왔다고 소개했다. 그럼 여행 경비는 절에서 지원해주는 거냐고 묻자 스님한테 급여?형태로 나오는 돈이 있어 그 돈을 모아 왔다고 했다. 스님은 기본적인 수준의 영어만 알고 있었고, 나는 중국말을 몰랐기에 좀더 깊은 내용을 대화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모르는 영어단어가 나오면 바로 찾아보고 기억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1995년을 시작으로 계속 공사를 진행 중인 대성석가사 입구에 들어서니 3층 규모의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대웅전이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다. 왜 이렇게 건물이 클까 궁금해 찾아보니 옛 신라 사찰인 황룡사 대웅전의 규모를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주변에 3층 건물 2동이 있었다. 1층에 사무실과 식당, 숙소로 쓰이는 1999년에 건립한 제 1요사체 불탄무우수당이, 주로 숙소로 쓰이는 듯한 2002년에 건립한 제 2요사채 대성마야부인당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각 건물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사찰 내에는 스님 2분과 보살 1분이 계셨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마주칠 때마다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는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울어봐 주셔서 감사했다.

 

방 형태는 게스트 하우스 도미로리 룸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간소하지만 정갈한 구조라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먹는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는데 정해진 시간에 맞춰 주로 달밧형태의 음식이 나왔다. 특히 김치가 나와 매끼니 감사하게 먹었다. 처음에 공양시간에는 사람들 피해서 조금 늦게 갔는데 이미 배식이 끝나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놀라서 한 스님께 여쭤보니 그 시간까지 언제 기다리냐고 하시면서 정시에 오라고 쿨하게 말씀하신다. 공양시간은 '배식'에 다먹고 뒷정리하는 것까지 다 포함하는 개념인 듯 싶었다. 다행히 그때는 스님과 보살님이 챙겨주셔서 남은 음식과 찬거리를 내주셔서 끼니를 거르지 않을 수 있었다.

 

예불은 새벽과 저녁 하루 2차례 진행되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되도록 많이 참가를 하려고 했었는데 몸이 굼떠 새벽 예불 1차례 밖에 참여하지 못했다. 새벽 예불은 새벽 4시 반에 시작해 1시간 진행됐다. 새벽에 비몽사몽 인채로 법당에 들어가니 스님 1, 보살 분, 3명이서 예불이 진행되었다. 고요한 새벽시간 법당 안에는 스님의 염불외는 소리와 목탁 소리만 가득 들어찼는데 다른 잡념은 사라지고 내면의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성석가사 대웅전/42m 높이로 지어진 대웅전은 옛 경주 황룡사 대웅전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중국 사원/으리으리하게 지어놓았는데 최대 3일 체류라는 규정때문에 3일을 묵고 대성석가사로 넘어오는 중국 순례자들이 한국 순례자보다 많았다

 

마야데비 사원(Maya Devi Temple), 푹푹찌는 더위가 있어 시원한 보리수 나무그늘의 고마움을 알게 된 것처럼

 

대성석가사에서 순례자들에게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경내를 둘러보며 마야데비 사원을 찾았다. 성지로서 존경을 표하기 위해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햇볕이 무척 강해 길이 무척 뜨겁게 달궈져있어 불가마에 온 듯했다.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데비 부인이 친정에서 출산하는 당시 관습에 따라 이동하던 중 룸비니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다가 출산을 했고 그 자리에 마야데비(Maya Devi) 사원이 지어졌다. 보리수 나무에서 잠시 쉬었다는 부분에 공감이 가는 것이 당시에 말이나 인력으로 갔을 텐데 숨이 턱 막히는 더위에 이동하는게 정말 만만치 않았으리라 쉽게 상상이 되었다.

 

흰색 보호각 안으로 들어서면 당시 사원 터가 보존되어 있고 이곳이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유리관에 보존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마야부인 옆구리에서 부처님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조각상이 있었다. 지금 상황에 대입해보면 엄마가 친정에 가다 길에서 낳은 위험한 상황인건데 현지의 더위를 몸소 체험하니 부처님도 안에 있기가 갑갑했던지 그새를 못참고 나온신게 아닌가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사원 밖을 나서면 아쇼카 석주와 푸스카르니(puskarni) 연못이 보인다.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전 목욕을 하고 갓 태어난 석가모니를 목욕시켰다고 알려진 성스러운 곳이다. 처음에는 그냥 연못이 옆에 있구나 생각밖에 못했는데 이 연못에 얽힌 역사를 알게 되니 달리 보인다.

 

마야데비(Maya Devi) 사원과 푸스카르니(puskarni) 연못

 

보호각 옆에 세워져 있는 아쇼카(Ashoka) 석주는 기원전 249년 독실한 불교도였던 인도 마우리아 왕조 아소카왕이 성지 순례차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서 남긴 것이다

 

아쇼카 석주(Ashoka Pillar)

 

신의 축복을 받은 피야데시왕(아소카 왕의 다른 이름)이 20년을 기름을 부어 성스럽게 하노니, 직접 납시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숭배를 하니 "여기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났도다" 말을 상징하는 돌로 이 석주를 세운다. 여기에 룸비니의 이 마을에서 성자가 태어났으니, 세금을 면하고, 생산량의 일부만 납입케 하라/(출처 : 나무위키)

 

이글거리며 강렬히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보리수 나무 아래 그늘로 피신한다.  중생들에게 그늘 아래 쉴 곳을 마련해 주는 보리수 나무의 존재에 대해 더욱 깊은 감사를 느낀다. 

 

보리수나무와 푸스카르니 연못

 

약 한달 동안의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 네팔 여행을 끝마치고 내일 드디어 인도로 넘어간다. 어떤 사바세계가 펼쳐질지 불안하다. 한달 동안 네팔에 있으면서 떠나기 전의 나와는 분명 달라졌으며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알게되고,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 푹푹찌는 더위가 있어 시원한 보리수 나무 그늘의 고마움을 알게 된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인도 여행에서도 겸허한 자세와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자.   

 

부처님께서 항상 함께 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