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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601) 안나푸르나 라운딩 15일차(Kagbeni- Jomsom - Tatopani)

1일차 포카라-Besi Sahar(버스이동)

2일차 Besi Sahar(820m) - Ngadi bazar(930m)(버스이동)

3일차 Ngadi Bazar(930m) - Bahundanda - Ghermu - Jagat(1300m)

4일차 Jagat(1300m) - Tal(1700m) - Dharaphani(1960m)

5일차 Dharaphani(1900m) - Chame(2710m)

6일차 Chame(2710m) - Upper Pisang(3310m)

7일차 Upper Pisang(3310m) - Ghyaru - Ngawal - Manang(3540m)

8일차 Manang(3540m) 고산적응차 휴식

9일차 Manang(3540m) - Tilicho Basecamp(4200m)

10일차 Tilicho Basecamp(4200m) - Tilicho Lake(4919m) - Shree Kharka(3800m)

11일차 Shree Kharka(3800m) - Ledar(4200m) 

12일차 Ledar(4200m) - Thorung Highcamp(4850m)

13일차 Thorung Highcamp(4850m) - Thorong La(5416m) - Muktinath(3800m)

14일차 Muktinath(3800m) - Kagbeni(2800m)

15일차 Kagbeni(2800m) - Jomsom(2720m) - Tatopani(1200m, 버스이동)

 

 

ㅇ Kagbeni- Jomsom 구간, 히말라야의 생생한 역사 현장을 돌아보다

 

아침에 전날에 보이지 않던 설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와 바람줄기는 땅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전통가옥 위에 꽃혀있는 다르촉 오색깃발을 흔들며 부처님의 자비를 널리 퍼뜨린다. 

 

Kagbeni 아침 풍경

 

아침으로 나온 꿀을 부은 티베트 현지 빵이 참 맛있었다. 갓 튀긴 빵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 바삭바삭한 식감과 함께 달콤한 꿀까지 곁들이니 풍성한 아침식사에 황송하기 그지없다.

 

황송하기 그지없는 아침식사

 

드넓은 대지에 물줄기는 저마다 먼저간 물들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돌산을 가까이서 보니 그 모양이 심상치 않다. 단단한 지층의 결들이 매섭게 휘어져 올라가는 모양이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인도-오스트레일리아 대륙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충돌해 생성된 히말라야 산맥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Kagbeni - Jomsom 구간에서 히말라야 산맥의 형성과정을 간직한 생생한 기록들을 볼 수 있었다

 

3시간쯤 걷자 Jomsom 마을에 도착한다. Jomsom은 안나푸르나 서쪽 지역의 중심지로서 관공서며 각종 편의시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오늘 목적지인 Tatopani행 버스를 타고 넘어간다. Jomsom에서 Tatopani 지역은 대규모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라 먼지도 많이 나고 트레킹하기가 불편해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다 어제 Kagbeni에서 그냥 인사 안하고 지나친 영국인 커플을 만났다. 그 일 이후로 내심 불편해 했었는데

이렇게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어 다행이었다. 몰랐던 사실은 걔네들도 어제 저녁에 내 숙소 앞을 지나가다 저녁 먹고 있는 걸 봤다는 것이다. 너희들도 나랑 똑같은 마음이었구나. 쏘롱 라를 넘기 전에는 생글생글하던 얼굴들이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나도 넘느라 고생했는데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Jomsom 마을 

 

Jomsom - Tatopani 구간, 기다림 끝에 복이 있나니

 

Jomsom 마을에서 당일날 버스표를 구해서 그런지 가까운 시간에 가는 버스들은 이미 예약이 꽉찼단다. 산토스가 백방으로 수소문해 가까스로 버스표를 구했지만 가려면 한참 남았다.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어쨌든 오늘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열심히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타고 Jomsom으로 넘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Tatopani행 버스(Nayapul, Pokhara까지 더 운행하는 듯 했다)

 

버스는 구불구불 흙길을 따라 내려간다.  회색빛 산들이 점차 푸른 물결로 변해가는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보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초록 빛으로 물든 산들이 만들어낸 'Deluxe'한 풍경들

 

아무 문제없이 잘 가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선다. 버스에서 내려 무슨일인가 살펴봤더니 며칠새 비가 내려 길이 무너졌는지 포크레인 한대가 길을 가로막고 보강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를 한 지 꽤 됐는지 이미 다른 버스와 차량들이 시동을 끈 채 서 있었고 사람들이 나와 공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연도 이동의 한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는 수행을 할 수 있었던 시간 

 

이런 일에 익숙한듯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느긋하기 그지없다. 마치 그보다 더 심한 상황도 일어나는데 포크레인 공사 쯤이야 하는 모습이었다.

 

기다림에 대처하는 현지 사람들의 반응도 무척 다양했다. 지인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나누는지 깔깔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가 하면  휴대폰으로 그동안 안부 전하지 못한 지인들과 한참을 떠드는 아저씨, 소변을 보러 슬쩍 행렬 뒤로 빠지는 사람, 버스에서 자는 사람 가지각색이다. 

 

그 중에 압권은 가든지 말든지 될대로 돼라 그냥 길바닥에 철퍼덕 누어 자기 집 안방 마냥 잠을 자는 부리부리한 수염을 가진 아저씨였다. 지나가는 한 아저씨도 수염난 아저씨의 자연친화적인 행동이 인상적이었는지 한번 쓱 쳐다본다.  

 

지연도 이동의 한 과정이라고 포용할 수 있는 자세를 수행의 장이라며 마음을 다독여 보지만 버스 기다린 것부터 해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공사에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하지만 바닥에 누운 수염난 아저씨 덕분에 자꾸 웃음이 나 짜증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돌발상황을 맞닥뜨리게 마련이다. 여행도 그러한데 우리의 삶은 예측불허의 상황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수염난 아저씨가 보여준 행동같이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고 여유를 가진다면 어떤 위기가 와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 부처님께서 이런 가르침을 주실려고 한 것이구나.    

 

길바닥을 내집 안방마냥 편하게 누워 주무시는 수염난 아저씨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는다. .

 

1시간 반 지연 끝에 가까스로 도로가 뚫린다. Tatopani까지 30분도 채 안걸려서 도착하니 허탈한 웃음밖에 안나왔지만

벌써 해가 어두워져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Shree Kharka에서 만난 간호생도 2명이 같은 숙소에 있는게 아닌가! 

 

자초지종을 물으니 틸리초 호수, 쏘롱 라를 넘은 후 Muktinath에서 하루 자고 오늘 지프타고 Tatopani까지 바로 내려왔단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Shree Kharka 이후 쏘롱 라를 넘기까지 서로 고생한 얘기들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쏘롱 라 넘을때 한 친구는 도저히 힘이 안 나 중간에 말을 타고 갔고 나머지 한 친구는 1,600m 내리막 길에서 지쳐서 마을 오토바이 타고 내려왔다는 말에 울다가 웃는다, 

 

5천4백 고지를 넘고 다시 살아서 만나니 생사를 같이한 전우 같았다. 

살면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반가운 인연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클까. 

 

막연한 트레킹만을 생각하고 온 나로서는 이런 순간들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이 순간에 내가 있도록 허락해 주신 안나푸르나 여신께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