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02) 안나푸르나 라운딩 16일차(Tatopani - Ghorepani)

1일차 포카라-Besi Sahar(버스이동)

2일차 Besi Sahar(820m) - Ngadi bazar(930m)(버스이동)

3일차 Ngadi Bazar(930m) - Bahundanda - Ghermu - Jagat(1300m)

4일차 Jagat(1300m) - Tal(1700m) - Dharaphani(1960m)

5일차 Dharaphani(1900m) - Chame(2710m)

6일차 Chame(2710m) - Upper Pisang(3310m)

7일차 Upper Pisang(3310m) - Ghyaru - Ngawal - Manang(3540m)

8일차 Manang(3540m) 고산적응차 휴식

9일차 Manang(3540m) - Tilicho Basecamp(4200m)

10일차 Tilicho Basecamp(4200m) - Tilicho Lake(4919m) - Shree Kharka(3800m)

11일차 Shree Kharka(3800m) - Ledar(4200m) 

12일차 Ledar(4200m) - Thorung Highcamp(4850m)

13일차 Thorung Highcamp(4850m) - Thorong La(5416m) - Muktinath(3800m)

14일차 Muktinath(3800m) - Kagbeni(2800m)

15일차 Kagbeni(2800m) - Jomsom(2720m) - Tatopani(1200m, 버스이동)

16일차 Tatopani(1200m) - Ghorepani(2870m)

 

 

ㅇ 산은 그 자리를 보라 하네

 

아침일찍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왔다. Tatopani 마을은 현지어로 tato(뜨거운) pani(물)이란 뜻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듯 온천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전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온천을 하고 싶었으나 도로공사로 막히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고생한 내 몸을 위해 온천물에 담가보겠다고 아침일찍 숙소를 나선다. 

 

숙소에서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공용 온천이 있었다. 며칠새 비가 내렸는지 길이 온통 진창길이라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입구는 쇠창살문으로 막혀 있었는데 문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입장료를 내면 들여보내주는 식이었다. 

 

아침일찍이라 사람도 없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로 받아진 물에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다. 사실 전날에 산토스가 트레킹 같이 한 사람이 Tatopani 온천을 이용하고  Ghorepani 가는데 힘이 풀려서 고생한 얘기를 언급했다. Ghorepani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 길이고 힘드니까 그냥 온천은 패스하는게 좋지않냐고 권유했지만 한국 사람이 어찌 온천을 지나칠 수 있겠는가.  

 

온천을 하고나니 간호생도 일행은 이미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어 미리 인사를 나누고 나는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Tatopani에서 Ghorepani까지는 약 1,600m를 내리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기에 상당히 체력이 요구되는 코스이다. 처음 산토스와는 쏘롱 라를 넘어와서 몸도 지쳤으니 무리하지 말고 중간 지점에서 하루 묵는 식으로 얘기 나눴다. 하지만 간호생도 일행을 우연히 만나 중간에 힘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Ghorepani까지 바로 가기로 결정했다.

 

Tatopani - Ghorepani 구간은 약 1,600미터를 주구장창 올라가야 한다.

 

길 초입부터 경사가 심상치 않다. 햇살은 강하지 않았지만 날이 후덥지근해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왜 산토스가 온천을 건너뛰고 가자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딘가에 거머리가 도사리고 있다

 

한타임 열심히 오르고 쉴 자리를 찾고 있다가 산토스가 갑자기 이쪽 지역은 거머리가 있어서 풀숲 가까이 앉으면 안된다고 주의를 준다. 거머리라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지역은 비도 많이 내리고 거머리도 출몰한다고 들었는데 라운딩에서는 비도 안내린 편이었고 거머리도 없어서 별 걱정 없었다. 라운딩하면서 만난 촬영감독 삼촌부부가 라운딩 뛰기전 마르디히말을 먼저 다녀왔는데 거기 가면서 거머리에 매일 물린 얘기가 떠올랐다. 거머리란 녀석은 일단 생긴게 흉측해서 싫고 물려도 아무 느낌이 안난단다. 처음엔 크기가 작아 못보다가 다 빨아먹고 배가 빵빵?해져야 눈에 띈다고 생생한 경험을 알려주니 아무래도 꺼리칙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젠장, 쉴 때도 마음편히 앉지도 못하다니.. 

 

 

끝없는 계단길과 보이지 않는 적 거머리와의 사투에 지쳐갈 무렵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한 나한테 활짝 웃으며 인사해주는 꼬마들을 만나니 다시 힘이 생긴다. 산토스도 이런 꼬마 애들이 귀여웠던지 몇마디 얘기 나누더니 가지고 있던 껌을 나누어준다. 

 

간호생도 일행과는 중반쯤 합류해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 이후 어둑어둑했던 하늘에서 비까지 쏟아져서 무척 고되었다. 힘이 들면 들수록 현재 주어진 상황이 오기까지 과정에 대한 감사함을 깊이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든든한 동반자 산토스와 함께 쏘롱 라를 넘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점, 혼자 였으면 푹푹 처졌을텐데 생도 동생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으며 말은 없어도 동생들한테서 좋은 기운을 받아 올라갈 수 있었던 점 등을 생각하며 과정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으니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꼬마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미소에 에너지 듬뿍 받는다  

 

산토스도 지친 모습을 보일 무렵 천신만고 끝에 Ghorepani 마을에 도착하니 온몸이 기진맥진하다. 안나푸르나 대표적 명소답게 마을 규모가 커 적당한 숙소를 찾아 두리번 거리다가 누가 멀리서 반갑게 인사를 해 누군가 봤더니 촬영감독 삼촌 부부였다! 너무 기진맥진한 상태라 처음엔 나한테 인사를 하는 건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먼저 알아봐 인사를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일정상 먼저 내려가는 일정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여기 있냐고 묻자 Ghorepani에 어제 왔는데 날씨가 안좋아 하루 쉴겸 더 묵었다고 했다. 쏘롱 라 넘어가는 날 삼촌 부부가 새벽 일찍 출발해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는데 포카라에서나 볼 수 있을까 하다가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 무척 반가웠다. 

 

몸이 지쳐 더 둘러볼 기력도 없기도 했고 산토스가 처음 소개해 준 숙소가 무척 마음에 들어 바로 결정을 내렸다. 깨끗하고 푹신폭신한 침구류에 창밖에는 설산이 훤히 내다보이고 웬만한 호텔 저리가라 하는 수준이었는데 단돈 100루피로 이런 호사를 누리니 황송하기 그지 없었다.

 

단돈 100루피로 호텔 부럽지 않았던 Ghorepani 숙소

 

먹구름 잔뜩 꼈던 하늘이 조금씩 개었지만 여전히 구름이 많이 껴 내일 푼힐 전망대에서 안나푸르나 파노라마 풍경을 볼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하지만 이미 안나푸르나에서 많은 아름다운 풍경을 봤고 반가운 인연들을 만났기에 못보더라도 후회는 없다.

 

사람은 욕심은 끝이 없지만, 산은 내가 딛고 있는 그 자리를 보라 한다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