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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605-0613) 네팔 다시 포카라(Pokhara), 트레킹 후 우울증이 찾아오다!?

5월 18일부터 6월 4일까지 18일동안의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마친 후 포카라에 머물면서 6월 13일 룸비니로 가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두서없이 끄적여본다.

 

(180605) 포카라 2일차, 트레킹 이후 우울증이 찾아오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오는데  해리아저씨와 한 한국인 남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리 아저씨가 락씨 한잔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합석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분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트레킹을 갓 마치고 돌아왔고 다음날 포카라에서 '버스'로 인도 뉴델리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해리 아저씨랑은 구면이고 해리 아저씨가 네팔 올 때마다 도움을 많이 줬다면서 포카라 오면 항상 해리네만 찾는단다. 이번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사진 촬영차 왔는데 가급적 롯지에서도 안묵고 캠핑으로 많이 다녔다는 말에 고수의 느낌이 물씬 들었다. 

 

이런저런 취중얘기 나누다 해리 아저씨 한 문장이 귀에 들어온다.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끼리, 도둑놈은 도둑놈끼리만 80프로 만나고 나머지 20프로는 운칠기삼이다"

 

술자리도 파한 후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든다.

'휴식은 달콤한데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나의 안식처 포카라 해리네 게스트하우스

 

(180609) 포카라 6일차

#1 등산화 수리 아저씨를 지켜보며

 

라운딩 17일차 Ghorephani에서 Nayapul을 가면서 등산화 와이어 끈이 툭 끊어졌다. 새로 살까 하다가 같이 고생한 녀석인데 그냥 버리기에는 내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리 아저씨한테 수선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저씨가 게하 근처에 신발가게가 있다면서 직접 데려다 주신다.

 

가게에 가 등산화를 보여줬더니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수선할만한 다른 곳이 있는지 물어보자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와 호수 가는 사거리 쪽에 노상에서 자리깔고 영업하시는 아저씨께 보여드리자 한번 스윽 보더니 고쳐보겠단다.   

 

고쳐달라고 하면서도 아저씨가 고쳐보겠다고 한 것에 내심 놀랐다. 일반 신발끈이 아니라 와이어 줄로 감는 형태라 어떻게 고칠까 궁금해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저씨는 와이어 줄 대신 와이어 고정 자리에 고정대를 새로 덧대 일반 신발끈을 묶을 수 있게끔 하는 방법으로 고치시는 모습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처음 봤을 때는(길거리에 장사하시니) 고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편견이었음을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2시간 가까이 삼촌이 건넨 간이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한번씩 스윽 쳐다보고 지나간다. 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으나 삼촌은 그런 시선이 익숙한건지 무심한건지 평온한 상태로 작업에만 집중하였다.

 

방금 전까지는 나 역시도 한번 스윽보고 지나가는 행인이었지만 삼촌 자리에 있으면서 조금이나마 삼촌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다. 길바닥에 색이 바랜 포대자루를 놓고 각종 신발이며 작업도구를 놓으면 두다리를 쭉 뻗을 수도 없는 작은 공간이 그의 유일한 작업실이었다. 그런 작은 공간이었지만 신발, 깔창, 구두약, 구두솔과 아저씨의 손때묻은 연장들은 질서정연히 놓여 있었고 아저씨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아저씨는 의사가 환자를 집도하듯이 차분하 정확한 동작으로 내 신발을 진단하고 처방하였다. 

 

그의 집도를 지켜보면서 가장 내 머리를 뒤흔들었던 것은

 

'자신이 번듯한 사무실이 아닌 길 위에서 일하고 있다는 어떤 불안감, 열등감, 패배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포대자루로 길바닥이 아닌 자신의 공간임을 구분시켰지만 사실상 길바닥과 다름없어 보이는 공간에서 '도대체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그가 보여주는 평정심이 사뭇 인상깊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그만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고있는데 왜 나는 그가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는 인식을 분명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것일까. 나는 그를 지목하고 있지만 사실은 내 자신이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스스로 물었다.

 

 

망치로 때린 것 같은 울림을 주셨던 등산화 수리 아저씨

 

그는 신발이 다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고친 것이지만, 동시에 내가 감추고 싶은 속마음까지도 드러내고 어루만져 주었다,   

 

#2 인도, 넌 대체 누구냐

 

한국을 돌아가는 테리 동생을 배웅하는 저녁식사 자리가 윈드폴 한인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열렸다. 테리가 윈드폴 게하에 장기투숙을 해서 그런지 사장님 부부와 장기 여행자들끼리 사이가 가까워보였다. 열명 넘는 여행자들이 모여 시끌벅적했는데 자연스럽게 여행에 대한 얘기가 오고갔다. 인도에서 넘어온 여행자들도 많아 자연스레 인도여행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건진 몇개의 문장들.

 

"여행이 꼭 뭔가를 성취해야만 여행이냐고"

 

"인도 여행을 하면서 느낀건데 현지에서 바가지 썼다는건 천원짜리를 만원, 만원짜리를 십만원에 주고 산 것이지 그 이하는 아무것도 아냐"

 

"인도는 어디 다른 동네 마실 가듯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각 지역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는게 큰 매력"

 

안나푸르나 라운딩 끝나면 인도로 넘어가지 뭐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트레킹 시작 전 인도관광비자를 신청해두긴 했다.

3개월 짜리를 발급해 주는 경우도 많다던데 무려 6개월 복수비자를 받았음에도 내가 인도를 꼭 가야하나 심드렁한 생각이 먼저 들던 차에 처음으로 도대체 인도는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풍성한 얘기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180610) 포카라 7일차

#1 '빈둥거리는 것도 힘들다'

 

포카라에서 쉬면서 며칠 동안은 마음껏 빈둥거리고 마음껏 맛있는거 먹으러 다니니까 마냥 좋았다. 다시 포카라에 온지 어느덧 일주일차, 날이 지날수록 공허한 느낌이 든다. 트레킹 할때는 하루하루 분명한 목표가 있고 성취한 부분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 새벽에도 거뜬히 일어나고 기운이 넘쳤다. 그런데 포카라에서 와서 당장의 목표가 사라지니 의욕이 당최 생기지 않는다. 트레킹하면서 만난 사람들(간호사 누나 - 인도 후유증으로 유럽으로 진작 떴음!, 촬영감독 부부, 생도 동생들, 같이 고생한 남자 동생, 테리)을 하나둘씩 차례로 배웅하면서 허전한 느낌이 더 커진다. 

 

'다들 다음 계획이 있어 부지런히 제 갈길을 가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죽치고 뭐하고 있는걸까?' 

여행 시작 전 들었던 막연한 고민과 불안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듯 했다. 젠장. 

 

 

#2 '아무것도 안하고 잘먹고 잘 쉬는게 제일 좋은 아무것이다' 

 

포카라는 꼭 여기서 무엇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몸, 마음을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포카라에서는 아무것도 안하고 잘먹고 잘 쉬는게 제일 좋은 아무것이다. 의미 없는 하루라고 스스로 치부하기보다는 또 다른 여정,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설렘 가득한 준비과정으로 생각하자! 

 

문득 여행의 목적을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나보다는 타인이나 사회같은 다른 것들의 욕구가 많이 반영됐다는 걸 느낀다.

여행은 전적으로 '내 욕망의 주체는 내 자신임을 인식하고, 그것에 책임질 줄 아는 것을 체득하는 과정'이 아닐까.

 

 

(180611) 포카라 8일차, '마음의 평화 다시 얻다'

 

해리네 아저씨 집에 있으면서 좋은 점이 바람이 잘 불어서 따로 밖에 나가기 싫을 정도로 빈둥거리기 좋다는 것이다.

해리네 가족도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60만원짜리 호텔방보다 더 좋다! 

 

일주일 가까이 포카라에 지내면서 초반에는 괜시리 마음이 뒤숭숭했지만 지금은 페와 호수처럼 잔잔해 진 것 같다. 따로 뭔가를 하지 않아도 내 자신에게 의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음을 (비수기라 사람이없어 더) 평화로운 포카라에서 배우고 있다. 

 

소비따네 한식당,/ 하루 한끼 꼬박꼬박 이곳에서 배를 채웠다. 스쿠티(돼지고기 볶음요리)와 시원한 창(막걸리 느낌의 달짝지근한 현지술)이면 행복이 별거 없구나 느낄 수 있다.

 

윈드폴 게하 식당에서 열린 테리 배웅 회식/네팔에서 중국음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