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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527) 안나푸르나 라운딩 10일차(Tilicho Basecamp - Tilicho Lake - Shree Kharka)

1일차 포카라-Besi Sahar(버스이동)

2일차 Besi Sahar(820m) - Ngadi bazar(930m)(버스이동)

3일차 Ngadi Bazar(930m) - Bahundanda - Ghermu - Jagat(1300m)

4일차 Jagat(1300m) - Tal(1700m) - Dharaphani(1960m)

5일차 Dharaphani(1900m) - Chame(2710m)

6일차 Chame(2710m) - Upper Pisang(3310m)

7일차 Upper Pisang(3310m) - Ghyaru - Ngawal - Manang(3540m)

8일차 Manang(3540m) 고산적응차 휴식

9일차 Manang(3540m) - Tilicho Basecamp(4200m)

10일차 Tilicho Basecamp(4200m) - Tilicho Lake(4919m) - Shree Kharka(3800m)

 

 

ㅇ 세계에서 제일 높은 틸리초 호수에 가다!

 

알람이 울린다.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새벽 4시. 정신이 몽롱하다. 방안은 적막감이 가득하고 바람소리만 웅웅거린다.  자기 전 미리 준비한 옷과 헤드랜턴을 주섬주섬 챙긴다. 낮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지만 새벽 안나푸르나는 기괴스러웠다.

 

같이 가기로 했던 일행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테리가 보이지 않았는데 많이 피곤했던지 약속한 시간에도 일어나지 못해 나머지 일행들과 출발한다.

 

잠을 깊이 못자 몽롱한 기분과 함께 몸이 물먹은 솜같이 무겁다. 숙소를 벗어나니 칠흑같은 어둠만 가득하다. 서로의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동생이 걸음이 느려지더니 급기야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을 보니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괜찮아?"

"형 이상해. 나는 길을 똑바로 쳐다보고 가려고 하는데 자꾸 내 시야에서 길 옆이 보여."

"머리 뒷골 쪽이 자꾸 당겨."

 

당시 동생이 걷고 있던 지점은 길 옆이 바로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이라 옆으로 넘어지면 부상의 위험이 컸다. 산토스가 동생을 지켜보며 표정이 심각해진다. 동생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이미 고산병 증세가 크게 왔고 아직 남은 길이 많은데 더이상 올라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숙소에서 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동생도 더이상 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는지 알겠다고 답했다.

 

동생이 전날부터 고산병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새벽 산행까지 해야됐으니 몸이 더이상 못 버틴 것 같았다.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나역시 언제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을 더 바짝 차린다.    

 

기괴스러운 어둠이 물러나고 날이 차츰 밝아온다. 차가운 공기 속에 햇빛의 온기가 피부에 닿으니 좀 더 힘내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은 것 같았다.

 

어둠을 뚫고 만난 설산 풍경

 

틸리초 호수 가는 길은 첫째날부터 함께한 Marsyangdi 강의 원류를 볼 수 있어 더 의미가 깊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길을 오르니 점점 손 끝마디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산소가 희박한 지역으로 계속 이동하는데 몸은 계속 일정량의 산소가 필요하니 신체 말단 부위부터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수시로 손을 오므렸다 펴면서 길을 올라간다.

 

'통곡의 길'을 오르니 땀이 쏟아진다. 경사도 경사지만 고도가 높다보니 숨이 금방 가빠왔다. 긴 오르막 길을 지나니 다행히 평탄한 길이 펼쳐져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좀 가다보니 작은 연못이 보인다. 설마 이게 틸리초 호수일까 싶어

 

"산토스 설마 이게 오늘 우리가 보러 온 틸리초 호수는 아니겠지?"

 

반신반의로 물어보자 산토스가

 

"큰 형님이 뒤에 가면 있을거니까 아직 실망하지마."

라며 농담을 건넨다.

 

작은 동생에게 미안하지만 정말 틸리초 호수였다면 허탈감, 실망감에 낙오할 뻔했다.

 

Small Tilicho Lake/맵스미에서도 검색이 되는 곳/이곳이 틸리초 호수였다면 허탈감과 실망감에 분명 낙오했을 것이다

 

주변 산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고 가는 길에도 눈이 쌓여있어 어느덧 4천미터 후반지대에 진입했음을 직감한다.

 

통곡의 오르막길을 지나서

 

널따란 평지를 따라 걷다 멀리서 파란 빛깔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틸리초호수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틸리초 호수는 아직 날이 덜 풀렸는지 절반쯤 얼어 있었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마치 쏘롱라를 넘어간 것 마냥 뛸 듯이 기뻤다. 

 

틸리초 호수(4919m)

 

틸리초 호수 안내판을 중심으로 바위 탑과 티베트 오색 기도깃발인 다르촉(룽따)들이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알려준다. 

 

틸리초 호수 안내판
네팔 사람들에게 신성한 지역으로 추앙받는 틸리초 호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먼저 와 있었던 멋쟁이 네팔 청년들, 산토스와 함께 셀카를 찍으며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록에 남긴다. 

 

멋쟁이 네팔 청년들과 함께
든든한 동반자 산토스가 아니면 틸리초 호수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1시간 정도 있으니 산토스가 여기에 오래 있으면 고산병 증세가 올수 있으니 내려가야 한단다. 그러고보니 틸리초 호수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기쁨에 여기저기 막 다니다보니 머리가 더 심하게 띵해져 와 산토스 말이 맞았다.

 

가는 길은 참 지옥같았는데 통곡의 길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낑낑대며 올라오는 외국 여행자들을 만날 때마다 힘내라고 응원해 주니 왠지모를 희열감?과 함께 발걸음이 참 가벼웠다. :)

 

'통곡의 길'을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기분이 어찌나 다르던지

 

그러다 산토스가 갑자기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가리킨 곳을 열심히 봐도 뭐가 있다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산토스한테 다시 눈짓을 보내니 다시 손으로 같은 장소를 콕콕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풀이 듬성듬성 나있느 자갈밭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벡스(Ibex)라는 야생동물 무리였다! 4천미터 고지에 살아있는 동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아이벡스들을 보니 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4천미터 후반 지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아이벡스(Ibex) 무리

 

아이벡스에 정신팔려 있다가 뒤에 있는 풍경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내가 이런 곳을 지나온 거라고!?'

 

설산을 배경으로 달의 크레이터같기도 하고 화성의 언덕같기도 한 비현실적인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같은 지구의 모습이라고 도저히 믿기 힘든 풍경들을 바라보며 대자연의 벅찬 감동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들어왔다. 

 

 

 

 

같은 지구의 모습이라고 도저히 믿기 힘들었던 풍경들을 보며 대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ㅇ 틸리초 호수 - Shree Kharka, 함께했던 동생의 뜻하지 않은 중도복귀 결정

 

숙소로 돌아오면서 산토스와 동생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산토스는 오늘 새벽에 나타난 고산병 증세를 볼 때 쏘롱라를 가는 건 무리로 판단돼 하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이 동거동락하며 고생을 같이 한 동생이기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었지만 나역시 동생의 상태를 직접 봤기에 산토스 의견에 동의했다.  

 

숙소에 돌아와 동생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전에 헤어질 때보다는 많이 안정되고 좋아져 다행이었다. 오늘 베이스 캠프에서 전날 짐을 맡겨둔 Shree Kharka 마을까지 가야하는 일정이라 다시 떠날 채비를 하였다. 떠나기 전 숙소에서 늦은 아침을 먹을때 동생에게 산토스와 향후 일정에 대해 함께 나눈 의견을 공유하였다.

 

동생도 고생하면서 올라왔기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나로서도 그렇게 말하는게 어려웠지만 동생의 안전과 건강을 생각할 때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돌아가는 길 산토스를 통해 해리 아저씨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 공유했다. 동생과 해리 아저씨가 통화를 나누었고 해리 아저씨의 말을 들은 동생은 고민 끝에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안그래도 동생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착잡한데 Landslide 길은 여전히 미끄러워 우리를 괴롭혔다. 좀 더 가니 정사각형 모양의 철 그물망에 돌을 넣어 반듯반듯 쌓고 있는 인부들과 마주친다. 이런 먼곳까지 와서 고생하시는 걸 보고 이분들은 어디서 왔고 얼마를 받을까 궁금했다. 길 중후반부에 들어서자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오후 늦게서야  Shree Kharka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다른 한국인 여행자 두명을 만났다. 오늘 Manang에서 건너왔는데 간호생도라고 해 동생과 함께 오오 그랬다. 생도면 해외여행하는게 쉽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왔냐고 묻자 많은 절차와 보고를 뚫고 왔단다. 또 단신으로 여행하는 건 금지여서 네팔 트레킹에 관심있는 친한 생도와 같이 오게 되었단다. 생도 생활에 관련해서도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생도 가운데서 소대장?직책을 맡는 등 열정적이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는 동생들이었다.

 

새로운 여행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느덧 동생과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 찾아온다. 쏘롱라는 함께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함께 고생한 동생을 갑작스럽게 보내게 되니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동생도 쏘롱라를 가지 못해 아쉬움이 무척 남을텐데도 조심히 쏘롱라 넘어서 포카라에서 보자고 나보다 더 의젓한 모습을 보이니 더 미안해진다.

 

안나푸르나 앞에서 감히 계획 따위를 세우고 그 계획을 이행하며 쏘롱라를 넘겠다는 시도 자체가 어쩌면 인간의 오만한 발상이 아닐지 모른다. 쏘롱라는 거쳐가는 길 중 한 부분일뿐 최종목적이 아님을, 안나푸르나에서 며칠을 보내던 또롱라를 넘든 그렇지 못했던 간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갔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이번 트레킹이 동생에게 값진 경험이 됐기를. 겸허한 마음으로 누나와 동생 몫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틸리초 호수에 다녀온 후 Shree Kharka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