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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526) 안나푸르나 라운딩 9일차(Manang- Tilicho Basecamp)

1일차 포카라-Besi Sahar(버스이동)

2일차 Besi Sahar(820m) - Ngadi bazar(930m)(버스이동)

3일차 Ngadi Bazar(930m) - Bahundanda - Ghermu - Jagat(1300m)

4일차 Jagat(1300m) - Tal(1700m) - Dharaphani(1960m)

5일차 Dharaphani(1900m) - Chame(2710m)

6일차 Chame(2710m) - Upper Pisang(3310m)

7일차 Upper Pisang(3310m) - Ghyaru - Ngawal - Manang(3540m)

8일차 Manang(3540m) 고산적응차 휴식

9일차 Manang(3540m) - Tilicho Basecamp(4200m)

 

 

ㅇ 틸리초 호수 트레킹 첫번째 날_ 동생한테 찾아온 고산병, 반가운 인연들과 재회

 

Manang에서 꿀같은 휴식을 뒤로하고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틸리초 호수(Tilicho Lake)를 향한 첫번째 날이 밝았다. 여행자들은 보통 틸리초 호수에서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진 4,200m 고지의 틸리초 베이스캠프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호수를 찾는다. Manang에서 틸리초 호수까지 거리도 멀고 3천미터 중반에서 호수가 위치한 4천 9백미터를 점프하는 것은 고산병에 걸리고 싶다는 의미와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3천에서 4천미터 지대로 옮겨가는 날이기에 몸이 버텨줄 수 있을 지 걱정이 컸다. 이미 한번 3천 초반 지대에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기에 긴장되었지만 Manang에서 최선을 다해 먹고 쉬었기에 오늘 산행도 잘 할 수 있을거라고 각오를 다진다. 

 

Khangsar 지역에 위치한 Shree Kharka라는 마을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틸리초 호수에 다녀온 후 다시 이 마을에서 묵을 일정이라 아예 필요없는 짐들을 미리 맡겨두었다. 그동안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닌 산토스가 배낭이 가벼워지자 배낭은 장식품인양 발걸음이 더욱 경쾌하다. 

 

틸리초 호수를 가는 길은 마치 태초의 비밀을 간직한 곳을 모험하는 둣한 흥분감을 불러일으켰다

산 봉우리 마다 눈으로 덮인 모습을 보며 4천미터 지대에 진입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걸어가는 방향 기준 좌측 방향으로 눈 덮인 안나푸르나 주요 산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협곡의 규모가 어마무시하게 커 앞으로 봐도 놀라고 뒤를 돌아봐도 입이 쩍 벌어진다. 

 

2천미터 고지 산행때 빼꼼 내민 설산을 보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어느덧 그 설산들의 중심부로 성큰 다가선다

 

동반자 산토스와 함께

 

베이스캠프에 가까울 수록 산군에 쌓인 눈의 두께도 커져갔고 그만큼 눈이 부셨다. 지금이야 틸리초 호수를 보기위해 오고가는 여행자가 있지만 최근까지도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을 이 땅에 발을 딛게 돼 경외심이 들었다.

 

가까이서 보이 빙하의 규모가 엄청났다

 

베이스캠프를 가면서 제일 어려웠던 곳이 Landslide 코스였다. 비탈진 면 중반부에 사람 1명이 간신히 걸어다닐만한 사이즈의 길이었다. 산토스가 돌덩이를 발로 차 굴러떨어뜨려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며 딴 생각 했다가는 바로 골로 간다는 것을 친절히 알려준다. 먼저 앞장서서 걸으며 위험할 만한 길목을 알려주는 산토스가 새삼 무척 고맙고 든든하다.  4천미터 지대라 가뜩이나 머리는 띵한데 밑을 보면 아이고 현기증이 절로 난다. 발을 헛딛을까봐 걸음걸음마다 온 신경을 집중까지 해야 했다. 경치는 죽여줬지만 나는 죽을 판이었다.

 

틸리초 호수 Landslide 구간/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에는 현기증 나는 길도 함께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스캠프에 당도하니 빨리 숙소를 잡아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베이스캠프라 숙소가 1곳뿐인 줄 알았더니 3곳 정도 흩어져 있었다. 제일 가까운 지역은 시설은 제일 괜찮아 보였으나 방 값만 500루피를 불러 다른 숙소 가격은 어떤지 둘러보았다. 조금 더 들어간 숙소는 가격을 물어보니 주인장이 대뜸 방값은 안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주인장의 뭔가 간보는 것 없이 시원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방이나 공용화장실을 꼼꼼히 둘러보니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방값을 굳힐 좋은 기회이기에 동생과 산토스에게 의견을 말하니 산토스가 첫번째 숙소에 다시 들어가 뭐라 얘기를 주고받더니 이쪽도 방값을 받지 않겠다고 급히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이 상황에 대해 나는 두번째 숙소를, 동생과 산토스는 첫번째 숙소가 더 나은 것 같다고 의견이 갈려 당황스러웠다. 일단 나는 결과적으로 두 숙소 모두 방값을 안받게 됐지만 첫번째 숙소가 방값을 500 부를 때 우리가 더 안쪽에 있는 숙소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 값을 다 받았을 생각에 몹시 괘씸함을 느꼈다. 이 숙소에 내 돈을 식비로 일절 쓰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의견에 동생은 평소와 달리 다소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자신의 인도여행 경험까지 언급하며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한데 뭘 그렇게 깐깐하게 구냐는 식이었다. 동생도 오늘 산행이 무척 고됐던지 그냥 눈앞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싶은 생각이 역력해 보였다. 이제까지 트레킹하면서 별 문제없이 잘 왔는데 고된 산행탓에 서로 민감해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었다.

 

산토스에게도 의견을 물으니 본인은 베이스캠프에 이 숙소밖에 묵지 않았단다. 오면서 이 숙소에 미리 연락을 걸어놔 다른 숙소에 가는 건 생각을 못한 눈치였지만 내 생각이 그러하다면 다른 숙소에 묵어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당시로서는 첫번째 숙소에 정말 묵고 싶지 않았기에 일행들에게 미안했지만 고집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짐을 푼 후 동생에게 아까는 미안했다고 사과하자 동생은 괜찮다고 자기도 잘한게 없으니 신경쓰지 말란다. 그러다 동생이 곧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감정이 격앙돼 있어 그저 동생이 지쳐서 다소 신경질 적이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몸에 부담이 많이 간 듯 보였다. 하긴 우린 지금 4천미터 고지에 있는거지. 

  

저녁을 먹을 때쯤 동생을 깨워 얘기를 나눠보니 올 때부터 손발이 저렸는데 지금도 저린 감이 있다고 했다. 산토스는 4천미터 지대 위에 있기 때문에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 것 같다면서 내일 틸리초 호수는 새벽 일찍 일어나 4천 9백미터까지 올라가는 일정이기에 고산병 증세가 더 크게 올 수 있다면서 자기 전에 고산병 알약을 반알씩 먹고 자라고 당부한다.

 

이어서 내일 틸리초 호수 트레킹은  또롱라 패스를 넘을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예비 답사와 같다며 트레킹 할 때 몸에 이상이 있다면 즉시 자신한테 말해달라고 산토스가 진지하게 말한다.  

 

 저녁에 숙소에서 오늘 아침에 틸리초 호수를 다녀온 네팔 여자 여행자 두명과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해 취업전 졸업여행 겸 친구끼리 같이 왔단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위험하다며 또랑라 넘는 걸 반대하셔서 본인들은 틸리초 호수만 보고 하산한다고 했다. 대학교 졸업이면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일텐데 히말라야 등정을 할 생각을 하다니. 확실히 신들이 사는 곳이 가까이 있어 마인드 자체가 달랐다. 주어진 조건에서 뭔가 도전하려는 모습이 내년이면 30대로 진입하는 내게 '너도 이제 시작이라고' 계속 가슴을 두드렸다.  

 

반가운 인연들이 또 있었다. Dharapani-Chame 코스에서 우연히 처음 만나 Manang까지 몇번 마주치며 인사나눴던 한국인 여행자 가족과 Manang에서 내 생애 최고로 맛있었던 닭볶음탕을 만들어준 테리를 만난 것이다. 여행자 가족의 구성원이 특이했는데 30대 초반 큰누나(동안이셔서 내가 오빠로 보일 정도였다. 애초에 내가 30대처럼 보여 의미가 없는건지도)와 남편 큰누나의 여동생, 막내 남동생 총 4명이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부인, 처제, 처남과 동행하는 생소한 조합이었다. 거기에 가이드 1명, 포터 2명까지 합하면 제법 큰 규모였다. 큰형님이 몸집이 크시고 인상이 아주 좋으셨는데 자기 일행은 새벽 4시에 출발한다고 해 어차피 비슷한 시간에 가야하니 테리까지 모두 함께 같이 가기로 했다. 

 

잠자리에 누우니 바람이 강해 계속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나는 머리가 좀 띵한 것 빼고는 별 이상없었지만 동생 몸상태도 그렇고 내일 틸리초 호수를 무사히 갈 수 있을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밤공기가 차다. 고산병약을 먹어서인지 유난히 심장이 쿵쾅거린다. 동생 몸상태도 좋지 않은데 내 고집만 피워 동생이 더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모쪼록 이 밤도 모두가 편안히 지나가기를.

 

틸리초호수 Landslide 구간을지나며/헬리콥터에 실려갈 것인가 내 발로 다시 넘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