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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523) 안나푸르나 라운딩 6일차(Chame - Upper Pisang)

1일차 포카라-Besi Sahar(버스이동)

2일차 Besi Sahar(820m) - Ngadi bazar(930m)(버스이동)

3일차 Ngadi Bazar(930m) - Bahundanda - Ghermu - Jagat(1300m)

4일차 Jagat(1300m) - Tal(1700m) - Dharaphani(1960m)

5일차 Dharaphani(1900m) - Chame(2710m)

6일차 Chame(2710m) - Upper Pisang(3310m)

 

ㅇ 고산병 증상을 겪다

 

오늘은 2천미터 고지에서 3천미터 고지까지 오르는 의미있는 날이다. 17년 코이카 동티모르 해외인턴시절 올랐던 동티모르 최고봉인 라멜라우산(Ramelau)이 2,986m였다.  라멜라우 산 등반기록이 제일 최고였는데 오늘 3천미터를 올라간다고 하니 마냥 신난다. 우리나라 백두산 장군봉이 2,744m, 한라산 백록담이 1,950m 이니까 오늘 가는 길은 전부다 백두산과 친구들이거나 형뻘인 셈이다.

 

저지대 마을에서는 이미 우기가 시작되었는데 날씨도 쾌청하고 바람도 선선해 고지대가 맞긴 맞나보다.

 

오늘은 무슨 풍광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다 우람히 자리잡은 바위 절벽을 만난다. 절벽 밑을 지나가는데 하늘을 가릴듯한 압도적인 크기에 와 탄성을 내지른다. 사진기 화면에 다 못들어갈 정도로 커서 계속 쳐다봐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화면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크기의 바위절벽을 지나가며

 

평탄한 길이 많아 별로 힘들지 않아 새파란 하늘, 지나가는 구름, 산, 바위, 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울퉁불퉁 자갈길을 걷다 어마무시한 바위산을 마주한다. 바위산 전체가 누가 사포질을 정상껏 해놓은 마냥 매끈하고 반질반질하다. 어렸을때 시골 그늘진 산길에 얼음이 땡땡 얼어붙어 비료포대로 신나게 썰매를 탄 기억이 떠올랐는데 여기가 최상의 썰매코스가 아닌가 싶었다. 

 

뭉게구름에 가려 그림자가 드리우며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거대한 전광판처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살아움직이는 자연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벅찬 감동을 느꼈고 기뻤다. 동시에 빌딩 숲 속에 갇혀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일에 치이거나 컴퓨터와 핸드폰 화면, 또 다른 무엇인가에 매달리며 자연과 단절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떠올리게 했다. 

 

자연을 다루는 우리가 아니라 자연의 구성원으로서 함께하는 우리가 훨씬 값지고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안나푸르나 길 위에서 온몸으로 배운다
안나푸르나 천연 썰매장

 

3천미터 지대로 올라오니 햇볕은 강했으나 바람도 많이 불어 덥지 않았다. 바람이 강해 얇은 바람막이를 걸칠까 생각하다 귀찮아서 입지 않았는데 나중에 고산병 증상을 겪게 된 화근이 됐다.

 

 

크기도 작고 뾰족뾰족한 입사귀를 가진 관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미터도 안되는 저지대에서 시작하다보니 시시각각 고도에 맞춰 적응하는 생명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큰 재미였다.  

 

나무들 크기가 작아지는 것을 보고 3천미터 지대에 근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isang 지역은 크게 윗마을, 아랫마을 2지역으로 나뉜다. 어느 쪽을 택하든 다음 목적지인 Manang 마을로 갈 수 있다. 산토스가 대개 몸상태가 이상 없다면 Upper Pisiang에서 Manang 가는 길이 안나푸르나도 훤히 보이고 경치가 좋다며 윗마을을 추천해 그쪽으로 향한다. 

 

윗마을로 들어서니 강 건너편 아랫마을이며 경작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확실히 언덕 지형에 위치해서 그런지 바람이 무척 거셌다. 가옥 구조도 강한 저지대와 달리 납작한 돌로 두텁게 쌓고 지붕도 널따란 나무로 포개어 놓아 바람을 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Upper Pisang 마을에서 내려다본 Pisang 마을

 

고도가 높고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 답게 가옥구조도 저지대보다 더 견고한 모습을 보였다

 

산토스가 구름 뒤에 가려진 설산이 안나푸르나 2봉(7,937m)이라고 알려줘서 뜨악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을 가진 안나푸르나.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안나푸르나를 내 눈 앞에서 직접 보게 되다니! 감동의 연속이었다. 푸른 산들(이것도 3천미터급 이겠지만) 뒤에 흰 구름에 가려 조금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 영롱한 자태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안나푸르나 2봉(7,937m)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누우니 머리가 띵하고 으슬으슬 춥다. 아까 바람이 많이 불 때 바람막이를 걸쳤어야 하는 건데. 땀을 많이 흘린 상태에서 바람을 많이 맞으며 3천미터 지대로 넘어오다보니 고산병 증상이 나타난 것 같았다.

 

산토스한테 급히 현재 몸상태를 설명하며 도움을 청한다.

 

"산토스, 나 지금 머리가 띵하고 몸살 걸린 것 같이 으슬으슬 추운데 어떻게 해야 돼?"

"응 너는 지금 고산병 초기 증상으로 보여. 주인 이모한테 말했으니까 저녁으로 마늘 수프랑 생강차 먹고 일찍 자는게 좋을 것 같아. 마늘 수프랑 생강차는 현지 사람들이 몸이 안좋으면 먹는 음식이니까 효과가 있을거야."

 

고산병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내 몸으로 직접 겪고 있기에 산토스의 말에 순한 양이 된다.  생강차 안에 있는 생강도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바깥은 적막한 어둠만이 가득하고 방안은 바람소리만 윙윙거린다. 자기 전에 안나푸르나 여신께 기도 드렸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많은 행복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설사 몸상태가 낫지 않아 더 못가더라도 정상이 목적이 아니기에 담담히 받아들이겠다고. 다행히 몸상태가 나아진다면 당신께서 허락해 주신 만큼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가보겠다고.

 

안나푸르나께서 내 기도에 어떤 대답을 해주실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