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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525) 안나푸르나 라운딩 8일차(Manang, 고산적응 휴식)

1일차 포카라-Besi Sahar(버스이동)

2일차 Besi Sahar(820m) - Ngadi bazar(930m)(버스이동)

3일차 Ngadi Bazar(930m) - Bahundanda - Ghermu - Jagat(1300m)

4일차 Jagat(1300m) - Tal(1700m) - Dharaphani(1960m)

5일차 Dharaphani(1900m) - Chame(2710m)

6일차 Chame(2710m) - Upper Pisang(3310m)

7일차 Upper Pisang(3310m) - Ghyaru - Ngawal - Manang(3540m)

8일차 Manang(3540m) 고산적응차 휴식

 

ㅇ 한국인 여행자 '테리'와의 만남, 닭 볶음탕 그리고 야크 스테이크

 

조용한 아침 배가 고파 잠이 깬다. 전날 분명 볶음밥으로 배부르게 저녁 먹었는데... 침대에 누어 방 천장을 바라본다. 그푹신한 침대에 이 한 몸 눕힐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번 Upper Psang에서 고산병을 겪었기에 이 순간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Manang에 도착해 Tilicho hotel이라는 좋은 숙소에 묵었다. 4층 규모의 ㅁ 형태로 이어진 구조로 벽돌로 튼튼하게 지은 숙소였다. 비수기라 방값도 거저먹는 수준이었다(동생과 쉐어해 1박당 1인 150루피). 전날밤 같은 숙소에 자신을 '테리'라고 소개한 20대 초반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는데 경험많은 베테랑 여행자였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했는데 그때 경험이 너무 좋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한번 더 하고 싶어 왔단다. Manang까지는 로컬버스를 탔다가 버스가 안다니는 지역은 마을 사람 오토바이 뒷자리 얻어타서 왔다고 하는데 가히 현지에 최적화된 여행자가 아닌가 싶었다.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여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데이고 치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행이 아니었으면 이런 다양한 배경을 가진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나 있었을까 싶다. 다시 한 번 고민의 순간에 마음이 이끄는대로 따라가 준 내 자신에게 칭찬을 듬뿍준다.    

 

Manang의 고도는 3,540m로 고산적응을 위해 여행자들이 반드시 하루는 머무는 장소이다. 4천, 5천, 정상 쏘롱라(5,416m)를 넘기 전 고산 적응도 하면서 필요한 물품, 비상식량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일종의 '또롱라 베이스캠프'인 셈인데 그래서 비슷한 시기 시작했을 다른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일정은 말 그대로 다음을 위해 제대로 에너지를 보충 하는 것. 아무것도 안하고 숙소에 빈둥빈둥거려도 오케이. 하지만 Manang 마을 주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숙소에만 있기에는 무척 아까워 산토스에게 물어본다.

 

"산토스, 주변에 산책삼아 짧게 다녀올만한  코스가 없을까?"

"가까이 Gangapurna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만들어진 호수가 있는데 한 번 가볼래?" 

 

나, 동생, 테리까지 모여 호수 구경을 나선다. 테리가 드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각종 기능들을 직접 보여준다. 직접 드론을 본 건 처음이라 무척 재밌고 신기했다. 특히 산토스가 많은 관심을 보인다. 여행하다 절경을 마주치면 사진으로는 부족하다 싶을 때가 있는데 드론을 가지고 다니면 확실히 뷰 자체가 차원이 다를 것 같았다. 하지만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만 가지고 다녀도 허덕이는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될 듯 싶었다.

 

테리는 드론을 가졌지만 나는 튼튼한 다리를 소유하고 있기에 내친 김에 1시간 정도 더 올라가야 하는 뷰 포인트에 가보기로 한다. 동생과 테리는 쉬고 싶다고 해 산토스와 나만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트레킹한게 며칠인데 1시간이면 금방 가겠지 싶었는데 계속 급경사 길에 누적된 피로로 몸도 무거워 중간중간 쉬어가야했다. 나도 그냥 동생들 따라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내 눈으로 직접 Manang 마을을 보고 담아두고 싶어 고생을 자처한다. 

 

땀 뻘뻘 흘려가며 뷰포인트에 도착하니 트레킹을 시작하고 계속보는 산이지만 질리지 않는 가슴 벅찬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Gangapurna(7454m) 산군과 티베트 오색기도 깃발 '다르촉(룽타)'

 

바로 옆에는 Gangapura 산이 녹은 물이 흘러 만들어진 Gangapura 호수가 한눈에 보인다. 틸리초(Tilicho) 호수로 가는 길 북쪽 Khangsar 지역에서 시작하는 Marshyangdi 강이 높은 산 아래자락에 자리잡은 Manang 마을을 유유히 지나간다.

 

출퇴근시간 꽉막힌 도로, 콩나물 시루같이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만원버스, 지하철, 주말 대형마트같은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숨막히는 현장에서 벗어나 안나푸르나의 대자연을 마주한다. 일상에서 마주쳐야 하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라면 이처럼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싶다.

 

Chulu East(6584m) 산군과 트레킹 첫날부터 함께했던 Marshyangdi 강

전망을 둘러보고 내려가는 도중 테리한테서 연락이 왔다. 로컬 가게에서 닭을 사놨다면서 점심으로 닭볶음탕 먹자고 한다. 아니 안나푸르나 한복판에서 닭볶음탕이라니. 

 

한걸음에 달려 숙소로 향한다. 로컬 가게에서 닭을 산것도 대단했지만 어떻게 만들 생각을 했는지 살펴봤더니 휴대용 버너와 고추장 소스는 테리 자기가 챙겨왔고 커다란 냄비는 숙소에서 빌렸단다. 드론에 캠핑장비까지 짊어지고 혈혈단신으로 온 테리를 보니 지구 어디든 떨어뜨려놔도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닌가 싶었다. 

 

닭볶음탕에 나랑 동생이 챙겨온 신라면을 투척하고 식당에서 주문한 밥까지 함께 먹으니 어찌나 맛있던지 내 인생 최고의 닭볶음탕이었다. 트레킹을 하며 달밧, 마늘수프를 먹으며 나는 인간인가 곰인가 존재에 대한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테리의 닭볶음탕을 먹고난 후 인간이라는 것을 분명히 자각했다. 

 

배터지게 점심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기울었다. Manang 지역에서는 근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야크 고기를 맛볼 수 있는데 또 더 올라가면 달밧만 먹어야 되는데 쉴 때 제대로 먹어 영양보충 해보자는 생각에 큰 맘먹고 야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지글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야크 스테이크가 등장한다. 두툼한 고기를 보니 다시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스테이크 가격은 1,350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약 13,500원이었는데 현지 물가로는 분명 비싼 음식읻. 하지만 한국에서 이 가격으로 소고기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을 수도 없거니와 앞으로 더 험한 길 가야하는 나한테는 보약이니, 오히려 돈을 번 셈 아닌가.

 

소탐대실 하지 말자. 조금 돈 아끼겠다고 큰 것을 놓치는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쏘롱라를 위하여!

 

무사히 쏘롱라를 넘을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 야크 스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