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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518) 안나푸르나 라운딩 1일차(포카라-Besi Sahar)

1일차 포카라-Besi Sahar(버스이동)

 

ㅇ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기로 결정하기까지

포카라에 도착 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어떻게 진행할 지 고민했다. 네이버 까페글도 찾아보며 정보를 얻다가 푼힐(Poon Hill) 거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넘어가는 ABC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고 해 막연히 그쪽을 생각하였다. 그러다 하루는 해리 아저씨가 네팔 전통 술인 락씨(Raksi) 한잔 같이 마시자면서 숙소 근처 작고 허름한 식당으로 데려갔다. 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 지 감이 안잡힌다고 고민을 먼저털어놨다.

 

"누구한테나 똑같이 말하는 거지만 일정이 넉넉하다면 안나푸르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라운딩을 도는 것이 좋아." 

 

해리 아저씨는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내게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추천하신다. 포카라에서 지내는 동안 해리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 운영과 트레킹 가이드, 포터 안전에 대한 해리 아저씨의 소신있고 분명한 태도에 이미 신뢰감을 갖고 있었다. 어차피 생각했던 베이스캠프 트레킹보다 길어야 1-2주 더하는건데 할 수 있을때 해야지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마음으로 라운딩을 해보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ㅇ 동반자 산토스와 뜻밖의 동행을 만나다

목표와 방향이 결정되니 나머지 일은 한결 수월했다.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들을 장만하고 현지 대행사를 통해 인도 관광비자를 신청해 두었다. 네팔 이후 인도로 넘어갈까 막연히 생각 정도만 하고 있었지만 인도비자 소요기간이 최소 2주 정도 걸린다고 해서 일단 여권을 맡겼다. 

 

해리 아저씨한테 소개받은 포터를 출발 전날 미리 만나 대략적인 계획을 공유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포터는 말그대로 짐꾼역할만 하는 현지사람을 말하는데 포터 가격으로 영어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포터 겸 가이드'를 불러주셔서 감사했다. 이름은 산토스고 대학 졸업반으로 은행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는 20대 초반였지만 이미 수차례 라운딩을 경험한 베테랑 친구였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다 마쳤는데 한가지 변수가 생겼다. 인도에서 넘어와 숙소를 알아보러 온 내 나이 또래 한인 여행자들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남동생과 간호사 하다가 그만둔 누나 이렇게 2명이었는데 인도 바라나시에서 만나 일정이 맞아 같이 넘어왔단다. 특별히 트레킹에 대해 별 계획이 없었는데 전날 숙소에서 같이 저녁먹으며 내 트레킹 계획을 듣고 고민하다가 자기 직전에 같이 합류하고 싶다고 내게 말을 한 것이었다. 

 

바로 다음날 아침에 출발하는데 뜻밖의 동행 제안에 솔직히 당황했지만 고민 끝에 알겠다고 승낙했다. 가이드랑 같이 가지만 막상 혼자 가려니 불안하기도 하고 인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여행자들이라 같이 가면 재밌을 것 같았다. 다만 그쪽에서 하루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나도 일정을 하루 늦추려고 해리 아저씨한테 문의를 드렸지만 이미 시간이 늦어 교통편 취소가 안됐다. 그래서 우선 나랑 산토스 먼저 움직이고 다음날 합류해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하루가 지연돼 손해라고 생각하면 손해겠지만 하루 일정 차인데 그냥 같이 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움직이면 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를 좋게 봐줘서 같이 가자고 한건데 새로 만난 인연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삼자고 생각했다.

 

 

ㅇ 1일차, 포카라-Besi Sahar 이동

라운딩이라고 하더라도 갈 수 있는 옵션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정말 저지대부터 한코스씩 도는 것도 있지만 일정이 빠듯한 사람들은 지프쉐어를 통해 3천미터 고지대에 있는 마낭(Manang)이라는 곳까지 곧장 이동 후 정비해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내 걸음으로 안나푸르나를 경험하고 싶어 로컬버스가 최대한 들어갈 수 있는 곳인 Ngadi Bazar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나머지부터 트레킹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Ngadi Bazar를 가려면 Besi Sahar에서 다른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그래서 첫날은 Besi Sahar까지만 이동하고 다음날 일행들과 합류해 Ngadi Bazar로 넘어가기로 했다. 오전에 동반자 산토스와 버스를 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집이 포카라 시내에서 조금 멀다고 했는데 어떻게 아침 일찍 왔냐고 하니까 전날 근처 친구집에서 잤다고 한다.  

 

포카라-Besi Sahar행 'Speed Control' 버스/Speed를 control하겠다가 아니라 Control을 잘받으며 안전운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버스에 울려퍼지는 현지 음악이 초보 트레킹 여행자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한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트레킹을 시작한 5월 중순 즈음부터 우기가 막 시작하는 시기란다. 저런 비를 맞고 매일 트레킹할 수 있을지 생각하니 확신이 들지 않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래도 든든한 동반자 산토스도 있고 일행도 있으니 혼자가는 것보다는 한결 마음이 가볍다.

 

잔뜩 흐린 날씨로 마음은 싱숭생숭하지만 초록빛 풍경은 더욱 싱그럽다

 

5시간쯤 달려 Besi Sahar에 도착했다. 산토스가 딱 도착한 지점 바로 옆 호텔을 숙소로 추천한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처음이니까 숙소 상태랑 가격 시세좀 살펴볼 겸 동네를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숙소 몇개를 더 살펴보기로 했다. 내심 더 나은 조건의 숙소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처음 숙소가 제일 나았다. 산토스 미안해 :)  돌아가는 길에 토마토 0.5kg을 30루피에 샀는데 무척 싱싱하다. 이런 가격에 양질의 토마토라니 여행자로선 보약이고 오히려 돈번 것과 다름없다.

 

해질무렵 산책 겸 동네 마실을 나선다. 길가에 꼬마아이들이 엄마의 저녁밥을 기다리며 재잘재잘 떠들며 공차기를 하는 모습이 정겹다. 마을 전경을 보고 싶어 언덕으로 나있는 길로 향하지만 급할 이유가 없기에 찬찬히 둘러본다. 지금은 구름에 가려 히말라야 산들이 보이지 않지만 이제 정말 말로 듣고 티비로만 보던 그 산들을 직접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B esi Sahar 전경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숙소 식당은 좀 비싸서 근처 로컬 식당에서 먹고 들어왔는데 이게 화근이 되었다. 숙소로 돌아온 후 산토스가 저녁을 먹고 왔다는 말에 무척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왜 그런가 들어보았더니 가이드나 포터를 데리고 숙박을 하면 무조건 삼시세끼 숙소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란다. 내가 묵는 숙소에서 일정 수준의 지출을 한다는 전제하에 같이 온 가이드한테도 숙식이 제공되는 구조라서 산토스 입장에서 난감할 법했다. 처음이라 그 부분을 생각못했다고 사과한 후 다음부터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저녁식사 문제로 한바탕 소동나게 만들었던 문제의 장소

 

 

내일이면 동행들과 합류한다. 앞으로 내 눈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막연할 따름이지만 최선을 다하되 안나푸르나가 허락해 주신 만큼만 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