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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네팔(18.05.09~06.15)

(180510-0513) 네팔 카트만두(Kathmandu) 4, 박타푸르(Bhaktapur)

(180513) 박타푸르(Bhaktapur)

 

카트만두 계곡 3대 더르바르 광장 중 한 곳인 박타푸르(Bhaktapur)를 가는 날이다. 카트만두에서 북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락스만 아저씨께서 현지 버스 교통편 정보를 잘 알려주셔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박타푸르 로컬버스 정류장/로컬버스는 현지 속도로 현지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박타푸르는 종일 걸어야 하기에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 배부터 든든히 채우기로 한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메뉴, 가격 온통 네팔 말뿐인 완전 로컬 식당이었다. 관광지임에도 이런 로컬사람들만 애용하는 식당을 찾아 기쁘다.

 

젊은 청년 몇몇이 같이 운영하는 듯 보였다. 한 청년이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고 답한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한국에서 일하고 왔다고 하면서 바로 그 친구를 부른다. 그 친구와 서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주문한 네팔식 만두인 모모(Momo)를 먹으며 몇마디 얘기를 나눈다. 한국에서 일하고 왔다는 그 친구의 선한 인상이 눈에 들어온다. 경기도 팬택 공장에서 일하고 모은 돈으로 여기 식당을 차렸단다. 우리나라 땅에서 고생하며 모은 돈으로 고국으로 돌아가 이렇게 작지만 번듯한 식당을 차려서 괜시리 나도 기쁜 마음이 든다. 날마다 번창하는 식당이 되길!

 

가격도 네팔 숫자라니!
네팔 현지식 만두 모모(Momo)

 

네팔 청년과 정다운 얘기를 나눈 후 배도 채웠겠다 슬슬 더르바르 광장으로 향한다. 입구 쪽으로 가는데 한 구멍가게 앞에서 동네 아저씨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한 아저씨가 핸드폰에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주변 아저씨들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치 아이들 중 한명이 유행하는 장난감을 가져올때 다른 친구들이 모여들어 부러워하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귀여우신 아저씨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무엇이 그렇게 신기한지 나도 궁금해 아저씨들 무리로 들어갈뻔 했다

 

박타푸르 유적 지구에는 옛 건축물들과 함께 고만고만한 벽돌 건물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골목 사이사이를 찬찬히 걸으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 사이사이 풍경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창문 모양이 다들 제각각

 

매표소 주변에 입구 들어가기 전 전통건축 양식의 규모가 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층은 기념품 가게였는데 지진 피해로 약해진 건물을 위해 나무 지지대를 설치해 놓았다. 육중한 건물이라 지지대가 있어도 금방이라도 무너질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정작 가게 주인들은 평온한 모습이다.

 

광장 입구 기념품 가게/ 위태로워 보이는 건물이지만 기념품 상점 주인들은 세상 평온하다.

 

광장 내부에 들어서니 2015년 당시 지진피해가 컸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입장권에 그려진 웅장한 모습과는 달리 곳곳에 건물이 무너져내려 휑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박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은 입장권의 웅장한 모습과 달리 2015년 네팔 대지진 피해로 곳곳에서 복구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매표소부터 초입부까지 얼마 안되는 거리에서 가이드 호객을 많이 받는다. 영어는 유창한데 능글맞게 구는 사람, 호객이 잘 안되니 아들이 아프다면서 기부조로 부담스럽게 행동하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다.  한사람 가면 육상 주자가 바톤 터치하듯 바로 다른 사람이 오고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오는 사람마다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다 보니 구경도 하기 전에 벌써 피곤해진다.

 

메인 광장 한바퀴 쭉 돌아보다가 곧 지쳐서 한쪽 구석에 쉬고 있는데 좀전에 호객하던 한 가이드가 다시 찾아왔다. 그 아저씨 때문에 또 어디론가 움직이는 것 자체가 피곤해서 자연스럽게 그 아저씨와 대화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아저씨 말로는 자기가 계속 쭉 지켜봤는데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다른 일반 관광객들과 달라 좋게 봤단다. 너도 겪었다시피 가이드 없이 돌아다니면 계속 귀찮게 굴거라고 한명 붙이면 자신도 일할 수 있고 너도 편안하게 설명 들으며 구경할 수 있지 않냐고 설득하신다. 나를 띄워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고용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점과 긍정적 의미를 부드럽게 조목조목 설명해주니 못이긴 척 함께 하기로 한다.

 

목소리가 참 우렁차시던 가이드 람 아저씨

투어하기 전 람 아저씨가 박타푸르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단다. 바로 현지 디저트인 커드(Curd) 요거트.  맛이 궁금해 근처 가게에서 하나 시식해본다. 시원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더운 날씨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지친 여행자에게 딱이었다! 하나로는 모자라 하나 더 먹는다.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흙으로 빚어진 토기잔에 나와 신기하다. 람 아저씨 말로는 예전부터 먹었던 전통방식이란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로 온 지구가 몸살을 겪고 있는데 현재까지 전통방식으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새롭게 느껴진다. 친환경적이면서도 여행자들에겐 현지식으로 음식을 그대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재밌는 경험을 제공해 수입까지 늘릴 수 있으니 말그대로 일석이조다. 전통과 환경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선례로 자리잡아 앞으로도 계속 유지, 확장시켜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팔 사람들이 즐겨먹는 현지 디저트 커드(Curd) 요거트/전통 방식의 토기 잔에 나온다

가이드 람 아저씨는 비수기라 여행자가 없어 오늘도 공치나 싶다가 나를 만나서 그런지 싱글벙글이다. '55 Window Palace' 내부로 들어와 왕실 전용 목욕탕으로 쓰였다는 Naga Pokhari에 멈춰서서 고용한 사람은 나 혼자인데 먼저 구경하던 관광객들까지 다 안내하겠다는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설명하신다. 주변 사람들 모두 소리의 진원지를 쳐다보는데 '뭐야 저 사람은' 이런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아 민망했다.

 

'55 Window Palace 내부에 위치한 Naga Pokhari/ 왕실 전용 목욕탕으로 쓰였다고 하며 우렁찬 람 아저씨 설명 덕분에 주변 관광객들의 온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

 

더르바르 광장에 한 사원을 지나가는데 우람한 처마를 받치고 있는 목조 장식물들이 인상적이다.. 힌두교 신으로 보이는 신이 사람을 두 발로 밟고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 아래에는 여성이 출산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사원에서도 출산뿐만 아니라 남녀간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그대로 장식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3대 종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통틀어봐도 남녀간의 사랑 특히 성적인 부분은 순결을 중요시 하거나 언급을 잘 안하는데 이렇게 신성한 사원에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표현하는 모습이 색달랐고 인상 깊었다.

 

여성의 출산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기둥장식이 인상적이었던 사원

 

메인 광장에서 벗어나 골목길 사이사이로 들어가니 현지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몇몇 여성들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길래 호기심에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깊이가 살벌하다.

 

이웃끼리 정다운 얘기가 오가지만 우물의 깊이는 살벌했다

 

람 아저씨가 공작 창문을 놓치면 안된다면서 알려주셨는데 비슷한 장식이 많아 혼자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뻔했다. 네팔 민족 중 특히 네와르(Newar) 족이 이러한 양식의 창문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공작새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을 표현한 것이며 세밀하고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해 높은 것이 돋보였다.

 

공작새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으로 표현하고 세밀하고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해놓은 창문
코끼리 머리를 하고 있는 가네샤(Ganesha) 신을 조각해놓은 문/가네샤 신 주위로 똬리트는 뱀이며 생동감이 넘치다 

 

Dattatreya 사원/16세기 말까지 중앙광장의 역할을 했던 타추팔 광장(Tachupal Tole)에 위치한 사원으로 1427년 처음 건축되었다. 우주 창조신 브라흐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가 부분적으로 현신한 고행자인 다타트레야(Dattatreya)를 모시고 있다.

 

람 아저씨와 예정된 가이드 투어를 마쳤다. 다음 손님을 잡으려는 듯 작별 인사와 함께 쿨하게 가신다. 가이드 투어 하자고 정성껏 나를 설득했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라 피식 웃음이 난다. 예정에 없던 가이드 투어였지만 그래도 람 아저씨와 함께 투어를 다녀서 즐겁게 구경할 수 있었다. 

 

중간에 지나갔던 타우마디 광장(Taumadhi Tole)에 다시 가본다. 정면에는 5층짜리 냐타폴라(Nyatapola) 사원과 그에 못지않는 3층 규모의 바이랍낫(Bhairabnath) 사원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냐타폴라 사원은 높이 약 30미터로 네팔 전통 건축물 중 가장 높다고 한다. 가까이 가보니 고개를 쳐들어야 5층 지붕을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웅장했다.

 

타우마디 광장에 늠름한 모습으로2 자리잡은 냐타폴라 사원(왼쪽)과 바이랍낫 사원(오른쪽)

 

냐타폴라(Nyatapola) 사원/1702년 말라(Malla) 왕조 Bhupatindra Malla 왕이 세운 힌두교 사원이다. 시바(Shiva)신의 아내 파르바티(Parvati)의 형상 중 가장 무섭다고 알려진 두르가(Durga) 여신을 형상화한 'Siddhi Lakshmi' 신을 모시고 있다. 사진 맨아래 눈을 부릅뜬 사람은 인도 라자스탄의 전설로 내려오는 격투가 'Jayamel and Phattu'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수호신의 힘도 10배 이상 강해진다고 하니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
바이랍낫(Bhairabnath) 사원/17세기 처음 지어졌으며 시바(Shiva) 신의 가장 무서운 형상인 바이라브(Bhairab) 신을 모시고 있다. 천하의 시바신도 아내 파르바티 신 앞에서는 작아지는 존재를 암시?한다.

 

카트만두에 지내는 동안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 3대 더르바르 광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번성했던 네팔 왕조의 유적들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그저 '산들의 나라', '개발도상국'이란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던 내 좁은 식견을 많이 반성하였다. 그리고 지진의 아픔을 딛고 평화를 간직한 채 소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다. 내 자신이 경제적으로 더 풍족한 소위 잘 사는 나라의 국민으로 있지만 과연 이들만큼 내면의 평화와 여유를 간직하고 있는지, 이들만큼 행복을 느끼며 살아왔는지 또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TV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찾아가고 파워 블로거들이 소개해 준 곳만이 좋은 여행 장소는 아닐 것이다. 단순히 남들이 한 것을 따라하는 수준의 사진만 남기는 여행을 경계하자. 어느 장소를 가든 부족하더라도 나의 시선과 사유로 채울 수 있는 여행을 하자.

 

 

잘사는 나라의 국민이지만 과연 내자신은 이들만큼 내면의 평화를 간직한채 행복을 느끼며 살아왔을까.

종일 걸어다니느라 숙소에 돌아오니 몸이 노곤노곤하다. 어느덧 카트만두에서 일정을 마치고 내일 포카라로 이동할 계획이다. 항상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준 락스만 아저씨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저녁도 벌써 오늘이 마지막이다. 며칠새 정이 많이 들었는지 떠난다고 하니 많이 아쉽다. 여행의 첫단추를 잘 꿰어주신 락스만 아저씨, 상지타 이모, 큰 딸 나니, 막내 딸 깔레 가족 모두에게 감사할 뿐이다.

 

항상 평화가 가득하기를.

 

락스만 아저씨네 집에서 바라본 카투만두 시내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