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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섬진강(18.03.11~03.20)

(180319) 섬진강 자전거 여행 9, 구례 3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ㅇ 이동경로 : 지리산 다락방 게스트하우스-화엄사-연기암- 숙소 복귀

ㅇ 소  감 : 전날 저녁부터 내린 비가 아침이 되어서도 조금씩 내려 화엄사, 연기암이 가진 사찰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고 왔음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어제 아침도 안개낀 지리산 모습이 참 멋있었는데 오늘은 더하다.


주인장님께 오늘 일정은 노고단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날씨가 애매하다고 너스레를 떨자 

오히려 이런 날씨가 사람도 없고 다니기 좋다면서 노고단까지는 조금 힘들 수 있으니 

화엄사 지나 연기암까지 갔다오면 딱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신다.



<화엄사로 가즈아~!>



화엄사 들어가는 길목 전에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편의점 있으면 대충 아침 때우고 가려고 했더니 (음식은 모르겠지만) 값은 고급져보이는 식당들만 보인다.

평일 아침이라 텅텅 비어있어서 몇몇 식당만 영업을 하고 있어 그 중에 한군데 골라 들어갔다.


음... 비싸다.

그냥 산채비빔밥만 해도 9천원이다.

아침부터 비싸게 먹고 싶지 않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천원 더 주면 산채정식이 나와서 그냥 천원 더 얹어서 제대로 먹고 가기로 했다. 



빗방울 맺힌 매화꽃이 싱그럽다



지리산도 식후경

가격은 셌지만 그만큼 보약이다 생각하고 꿀떡 먹었다 :)



야무지게 먹고 화엄사 입구로 들어선다.


화엄사 진입로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매표소가 있었다.

입장료 3,500원.


한 직원이 매표소 밖에서 차를 끌고온 관광객들한테 연신 90도로 합장하듯이 인사하며 결제를 돕는다.

방문하는 관광객마다 저렇게 인사하면 몸이 남아나질 않겠다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 직원분의 방문객들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인상깊었다. 




차타고 가면 슝 가면 그뿐이겠지만 걸어서가니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화엄사를 더 즐길 수 있었다.



슝슝 지나가는 차들 속에 나는 내 호흡대로 묵묵히 걷는다.

물기 머금은 공기가 참 시원하고 상쾌하다.

간밤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옆 계곡도 흘러가는 물의 양이 엄청나다.





싸목싸목 올라가다보니 이내 우람하면서도 단아한 자태의 화엄사가 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따라가며 나무와 계곡만 보다가 사람이 흔적이라곤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장소에서 화엄사를 마주하니 여기가 극락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지금도 그러한데 옛날 도로도 잘 안 닦여 있을 때는 더 신비했으리라. 




<화엄사>


화엄사는 544년 백제 성왕 때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500여칸에 이르는 건물이 전소되고 주지였던 설홍대사는 300명의 승려를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다 전사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석조물을 제외하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경내로 들어서니 다른 세상에 와 있는듯한 착각이 든다.

산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산 아래 절은 시간이 멈춘듯 조용해 속세에서 벗어났음을 느끼게 해준다.




<각황전(왼)과 대웅전(오)>


국보와 보물 종합세트가 펼쳐진다



<각황전>


국사교과서에서 많이 봤는데 실제로 보니 훨씬 웅장하다

서오층석탑과 그 뒤 석등이 보인다



<대웅전>


동오층석탑과 각황전 앞 서오층석탑이 나란히 서있다



보제루 누각에 있는 창은 한 폭의 그림을 담아주었다



보제루 마루에 앉아 각황전과 대웅전 경내 모습을 담다가 옆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을 보니 12시 정각. 


정확히 어느 시간에 종을 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정 시각에 종을 치는 것 같았다.

묵직한 종소리가 은은하게 절 전체로 퍼져 나가니 화엄사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범종각에서 종을 치는 스님>


자세히 보니 당목을 그냥 앞에서 뒤로 움직여 치는 것이 아니라

손의 스냅을 활용해 좌우로 비틀면서 쳐 

더 깊은 종소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종을 치고나서 손을 가만히 놓고 산 아래를 지그시 쳐다보는 장면이 인상 깊다




화엄사는 중심구역만 둘러보았는데 서쪽에 사사자삼층석탑, 뒤편에 구층암도 가볼만한 곳이라는 걸 뒤에야 알았다.

일정에 여유있으신 분들은 거기까지 다 둘러보면 좋을 듯 하다.


화엄사 옆 쪽으로 연기암 가는 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비가 내려 길이 미끄러워 천천히 올라갔다.

도중에 이름 모를 나무에서 돋아나는 꽃도 들여다보고

비가 내려서인지 떠나갈듯한 굉음으로 내려오는 계곡물도 구경한다.




바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돌탑들도 군데군데 볼 수 있었다.

덤벼들듯이 달려오는 물줄기 속에서도 균형을 잡고 서있는 돌탑들을 보며 온갖 번뇌 속에서도 평정심을 갖는 부처님이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었다.




장마가 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평소 주변 지형에 관심을 갖고 관찰해야지만 

지금과 같은 위치에 돌탑이 세워졌으리라





연기암쪽에 들어서니 안개가 더욱 자욱해진다.

화엄사쪽은 그래도 탐방객들이 보였는데 연기암은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화엄사 원찰로 알려진 연기암



날씨가 화창할 때는 섬진강도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고 한다

안개가 자욱해 섬진강은 볼 수 없었지만 

안개 덕분에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오직 문수보살님만 나를 지그시 바라보셨다

 


화엄사, 연기암 코스를 잘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

앞서가는 탐방객들을 피해 한화리조트 뒤쪽으로 돌아가는데 돌담 길에 선명한 분홍빛의 홍매화가 활짝 피어있었다! 

탐방객 덕분에 횡재 제대로 했네  :)


화엄사 각황전 옆에 홍매화 나무가 유명한데 아직 꽃봉오리 밖에 나오지 않아 아쉬워 하던 참에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가까이 가보니 홍매화의 진한 향이 아주 일품이었다.

지난 글에서도 고백을 몇번 했지만 이번 홍매화의 그윽한 향도 맡아보고 찬찬히 들여다본건 처음이었다.




강렬한 색만큼 향도 진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무 줄기에 붙은 이끼에 물이 맺혀있어 카메라를 바짝 대어 찍어보았다.

홍매화처럼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은 것도 있겠지만

물 머금은 이끼의 앙증맞은 모습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떠올리게 했다.

갈길바쁜 여행자들은 지나쳤을 한 장면을 마주하니 흐뭇하다.

 


풀 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숙소에 돌아와 잠시 눈좀 붙였더니 어느새 저녁이다.

오늘 저녁은 주인장님께서 직접 엄선한 삼겹살 파티!

눈호강에 이어 배에 기름칠까지 한다.

여행자에게 있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주인장과 지인분, 제주도에 있다가 구례 정착을 앞둔 분과 옹기종기 모여 맛나게 먹었다.

산이 좋아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주인장님의 따뜻한 정이 있어 더 즐거웠던 자리였다. :)


이제 내일만 되면 섬진강 여행도 끝이난다.

문득 영산강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알게 모르게 좋은 사람을 만나고 산, 들, 하늘, 바람, 강이 준 선물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니 감사할 따름이다.


내일도 힘차게 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