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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섬진강(18.03.11~03.20)

(180314) 섬진강 자전거 여행 4, 순창 3 '시 따라 섬진강 따라'

ㅇ 이동경로 : 순창읍-강진버스터미널(버스)/-장군목-유등면사무소-금산여관

ㅇ 이동거리 : 약 36km

ㅇ 소  감 : 섬진강 물줄기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는 코스. 물줄기 따라 섬진강을 보고 자란 김용택 시인의 생가 마루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고, 중간중간 길따라 김용택 시인의 시도 읽어보고, 장군목에서 오랜 시간 속에 섬진강이 빚어낸 바위의 곡선들을 만져보고 살펴볼 수 있었던 섬진강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음.



전날 금산여관 여행자들과 함께 즐거운 순창 마실을 마치고 오늘은 예정된 자전거 길을 마저 돌기로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버스를 탄다.  

 

뒷좌석에 앉아 터미널 구경하고 있었는데 앞좌석에 있던 할머니가 버스기사님한테 이거 강진가는 버스 맞냐고 물어보셨다. 기사님이 다소 무뚝뚝해 보이셔서 어떻게 대답하실지 쓸데없는 고민을 했는데 반전의 대답을 들었다.


'이거 서울가는데요?'


그 대답을 들은 뒷좌석에 앉은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으신다.

나 역시 기사님의 순창식 아재개그에 빵터져 강진 가는 내내 헤어나올 수 없었다 :) 




순창군 버스 기사님들은 재치도 있으시다.



강진면에 도착에 보관했던 자전거를 찾아 이동하려고 하는데 범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는 식당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직감적으로 여기는 일단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먹은지 얼마 안돼 배도 안고픈데 뭔가에 홀리듯이 가게 안을 들어갔다.




<완전 오리지날 전통 손짜장 전문 '태복장'>


70년대에 영업신고하신 노부부께서 운영하신다. 

간짜장 강추!



전통 손짜장 전문이라고 해서 간짜장을 주문했다.

노부부께서 운영하셨는데 70년대부터 영업했다는 영업신고증이 눈에 들어온다.

오오 이것은 마을 사람들만 안다는 숨은 맛집인걸까.


수타면은 처음이라서 진짜 손으로 면을 뽑으시는건지, 뽑는다면 어떻게 하시는지 무척 궁금했다.

주방이 개방된 구조라서 남자 사장님이 손수 반죽해 면을 뽑는 과정을 전부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주문한 간짜장이 태어나는 과정을 보니 나오기 전부터 군침이 돈다.


기대하던 간짜장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짜증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짜장을 비벼 야무지게 입안가득 면을 넣었는데 맛이 정말 기가막혔다. 

김치도 익어서 훌륭했고 흡입했다.






<태복장 간짜장>


아침 먹은지 얼마 안됐지만 김이 모락모락나는 짜장면을 보니 배가 고파졌고

그렇게 난 아점을 먹게된다 :)




<태복장>


 사장님의 면 만드는 뒷모습에서 

4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름 자전거 여행하면서 맛있는거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태복장 간짜장은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가장 맛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훌륭한 한끼에 오늘 여행의 기쁨은 태복장에서 다 얻었다.

나머지 여행에서 얻은 기쁨은 보너스라는 생각으로 욕심부리지 않고 사목사목 움직이기로 했다.


덕치면사무소를 지나서 6km 쯤 달리니 김용택 시인 생가가 있는 진메마을이 보인다.

생가 들어가는 길목에 <농부와 시인> 시비가 있어 찬찬히 읽어본다. 

짧은 시구속에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김용택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농부와 시인>

    -김용택-                                      


아버님은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집을 지으시고 그 집에 살며

곡식을 가꾸셨다.


나느 무엇으로 시를 쓰는가

나도 아버지처럼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 살고 싶다.




<김용택 시인 생가>


마루 한구석에 믹스커피와 커피포트가 가지런히 놓여져있다.

생가를 찾은 여행자들을 위한 김용택 시인 내외분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마루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니 이보다 더한 행복도 없었다. 




서재에는 '글이 돌아온다'는 뜻의 

회문재(回文齋) 현판이 걸려있다.




시인이 읽었던 책들이 한눈에 보인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시를 적었을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김용택 시인 생가부터 장군목 인증센터까지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과 함께 중간중간 김용택 시인 작품들을 새긴 시비가 있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시 <향기>에서 시인의 감수성에 감탄하며 메말라가는 나의 연애세포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을

시 <봄날>은 섬진강의 봄날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가 있을지 감탄을

시 <섬진강 1>에서는 섬진강의 유구하고 장엄한 기상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길을 계속 이어갔다.


특히 시 <봄날>은 가면서도 표현이 너무 재밌어서 계속 생각이 나 혼자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기본적으로 섬진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이런 시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향기>

-김용택-                                      


길을 걷다가

문득 

그대 향기 스칩니다

뒤를 돌아다본니다

꽃도 그대도 없습니다

혼자

웃습니다




<봄날>

-김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간 줄 알그라 :)




<섬진강 1>

-김용택-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라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길을 가다보니 하늘도 산도 강물도 푸르고 푸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강물이 눈 시리도록 맑아 연신 감탄했다.





강가에 다가가 세수도 해보고

섬진강의 맑고 깨끗한 느낌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경치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장군목에 들어선다.

멀리서 볼 때는 평범한 바위처럼 보였으나 가까이 가보니 바위 하나하나 모양이 심상치 않다.

바위에 새겨진 곡선의 형태를 바라보며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영원히 그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바위도 자연과 호흡을 맞춰간다.



<장군목 요강바위>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바위

요강처럼 가운데가 움푹 패였다고 하여 요강바위로 불린다.

장군목의 지명답게 아들낳기를 원하는 여인이 바위 위에 앉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가로 2.7m, 세로 4m, 깊이 2m로 무게가 무려 15톤이나 된다.

6.25 전쟁 때는 북한군을 피해 마을 주민들이 바위 속에 몸을 숨겨 화를 모면하였다고 전해진다.



장군목 인증을 마치고 곧장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장군목 인증센터>


장군목 인증센터는 섬진강마실 휴양숙박시설단지 내에 위치해 있다.



이제 둘러볼 것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한적한 시골길에 현대적인? 건물이 있어 뭔가 봤더니 섬진강 미술관이었다. 

자전거 길 반대편에 있어 잠시 그냥 지나칠까 고민했지만 미술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섬진강 미술관>


순창군 적성면 구암마을에 위치한 섬진강 미술관

7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박남재 화백의 작업공간이자 전시공간이다.



자전거 소리에 직원 한 분이 나오셔서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작품들만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으로 생각해서 아무 생각없이 작품들을 보다가 중앙 큰 화판들 뒤쪽에 박남재 화백이 계셔서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박남재 화백께서 작업공간으로도 쓰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점 정도 되는 큰 화판들을 동시에 걸어놓고 그 화판들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위치에 화백께서 자리를 잡고 계셨다.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신 나머지 잠깐 졸고 계셨는데 :) 왼손에는 작품일지로 보이는 노트와 오른손에는 펜을 쥐고 계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판들을 보니 섬진강에 핀 벚꽃을 주제로 그리시는 것 같았다. 벚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차들과 꽃구경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습도 보였다.


인기척에 휴식에 방해될까봐 서둘러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좀전에 인사드렸던 직원 분과 얘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작품을 보며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직원 분 설명이 없었으면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갈 뻔한 부분들이 많았다.


중앙에 화판들이 많은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화백께서는 화판들을 동시에 걸어놓고 작업을 하셔서 그렇다고 했다.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작품들을 보면서 필요하다 싶은 부분을 먼저 작업하는 식이라고 했다. 


화백에 대해 직원분이 계속 소개해 주셨다. 그림을 여전히 좋아하시고 그림 밖에 모르신다고 하면서 매일 아침에 나오셔서 오후 늦게까지 작업하실 정도로 아직도 열정이 대단하시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박남재 화백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선생님의 삶을 대하는 자세, 태도에 상당히 감명 깊었다. 


그날 직원과의 대화는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숙소에 들어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삶은 박남재 화백의 작업공간처럼 하나의 화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화판이 모여 결국 하나의 커다란 삶을 구성하는 게 아닐까'


그동안 삶을 하나의 화판으로만 정의내리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하나의 화판이 막히면 그게 전부인 것 같이 쉽게 좌절하고 자책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나의 화판이 막히면 쉬면서 정리해 볼 수도 있고, 다른 화판에 잠시 있다가 다시 돌아가면 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은 아직 구경 덜 끝났다며 내게 손짓한다.

넓은 들판 위 그보다 더 넓은 하늘에서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오직 하늘과 나만 서로 마주보고 있는 순간.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섬진강 미술관 박남재 화백의 작품을 감상하고 돌아가면서>




<순창 경천 상촌교>


물에 비치는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다.





<섬진강댐 인증센터-장군목 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