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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섬진강(18.03.11~03.20)

(180313) 섬진강 자전거 여행 3, 순창 2 '처음 본 여행자들과 목욕마실이라니'

ㅇ 이동경로 : 금산여관-순창목욕탕-창림동 두부마을(점심)-농부의부엌(저녁)-금산여관

ㅇ 소  감 : 순창에서 사람냄새 물씬나는 게스트하우스를 알게 되어 무척 기뻤음. 

금산여관 대빵님, 게하 식구들과 읍내 마실 다니며 재밌게 놀았고 사랑방에서 진솔한 얘기도 나눌 수 있었던 하루였음.



전날 내가 묵는 103'억'호에서 방명록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찾아왔지만 이곳 금산여관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게 여행자들의 공통적인 결론이었다. 

(나역시 숙소떠나기 전날밤 똑같은 결론으로 방명록을 추가하게 된다 :) )

 

바닥에 깔린 하얀 이불이 푹신푹신하고 살갗에 닿는 촉감이 참 좋았는데 알고보니 광목이불이라고 한다. 

평소 침구류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는데 광목이불을 체험하고 나면서 이불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적어지는 부작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날에는 자느라 바빠서 보지 못했던 주인 대빵님의 세심한 손길이 보인다.

여행자들의 안락한 잠자리를 책임지는 광목이불이며 창문에는 새하얀 천에 햇살이 비치는 부분에 꽃을 수놓은 부분이라든지 욕실도 드라마 응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욕조, 타일을 그대로 살려놓았다.  




방이 가진 고유의 색깔을 최대한 살리려는 주인대빵님의 세심한 손길이 곳곳에 보인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이불 속 느낌이 좋아 뒹굴거리다 대빵님의 아침먹으라는 소리에 힘겹게 일어난다.

나 말고 게하 식구로 내 또래 커플, 남자 선생님 이렇게 3명 더 있었다.

커플은 이틀전부터 와서 일주일 더 머물다 간다고 했고, 선생님은 장기투숙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들 유쾌한 분들이어서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선생님이 나보다 조금 늦게 들어와서 '막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  




밥 때가 되면 함께 모여 아침을 먹고 밥상을 정리한다.

 그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점심이 다가오는 신기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칠보식당 김치찌개(소)>


전날 저녁 여행자들과 같이 먹었던 김치찌개(소)

처음엔 대짜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주인 이모님의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강추!



전날 밤부터해서 아침을 먹고난 후 대빵님이 살아온 얘기, 게하에 얽힌 많은 사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전 직장이었던 백화점 등산용품 매장 매니저로 일하며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을 떠나서 손님들에게 진심을 다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며(현재도 그 브랜드에 무한 애정을 갖고 있으시다), 직장을 그만두고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게스트하우스를 짓기위해 빚까지 져가며(처음부터 빚질 생각은 없었는데 하다보니 비용이 더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금산여관을 만들기까지 그 과정이 드라마틱할 정도였다. 

 

되도록 본래 있던 것을 놔두고 살리려다 보니 고생도 많이 하고 오히려 새걸로 교체하는 것보다 비용도 더 많이 들었다고 한다. 쉽게 쓰여지고 버려지는 시대에 물건 하나하나 그 가치를 알고 소중히 대하는 대빵님의 태도가 무척 인상깊었고, 그런 절실한 노력이 있었기에 많은 여행자들이 옛것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같이 누릴 수 있게 되어 대빵님께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금산여관 정문>


전 주인이 썼던 간판을 그대로 사용한다.




<초록색 문과 방랑싸롱>


대빵님이 저 낡고 쓰러져가는 대문까지도 보듬어 주셨다.

옆에는 처음에는 여행자로 왔다가 금산여관이 마음에 들어 

방랑싸롱이라는 가게까지 차렸다고 한다.


주인장은 금산여관을 찾은 여행자와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골인, 신혼여행을 가고 없었다. 




<구 정문>

방랑싸롱이 들어서고 지금은 후문으로 쓰인다.

간판이며, 문옆에 있는 거울도 여기서 예전에 썼던 걸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본채>


부엌과 동시에 여행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추억을 쌓는 사랑방이다.




ㅁ자형 구조로 여행자들이 묵는 방들이 모여있다.



아침을 먹고 한참을 얘기나눈 후 대빵님의 전원 목욕탕을 가자는 제안에 여행자들은 모두 나갈 채비를 한다. 아침을 먹고 어제 돌지 못한 자전거길을 마저 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빵님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다 금산여관에 왔으면 그 흐름에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같이 따라나섰다. 


생각지도 못한 일정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이게 여행의 재미가 아닌가 싶다. 

여행을 계획대로만 움직인다면 얼마나 따분하겠는가.


옥천목욕탕 가는 길에 익숙지 않은 풍경이 들어온다.

초등학교 안에 웬 옛건물이 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객사로 쓰였던 옥천지관이라고 한다.

넓은 마루에서 순창초교 학생들이 재잘되며 뛰도는 모습을 보니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분명 우리의 풍경이지만 도시생활을 주로 해온 나로서는 상당히 새롭게 느껴졌다.




<순창객사 옥천지관>


순창의 전통과 미래가 마주하고 있다.



탕에 들어앉으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번에 풀리는 느낌이다.

여행을 하면서 왜 목욕탕 생각을 못했을까.

처음엔 여행자들과 쭈뼜쭈뼜했는데 탕에 들어가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확실히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때빼고 광도 냈겠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으러 향한다.

오늘 점심 장소는 '창림동 두부마을'

대빵님 주인 모자분 서로 잘 아는 듯 했다.

나역시 전에 이곳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갔기에 다시 방문할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큼지막한 두부 한모와 함께 순두부 찌개를 흡입했다.

밑반찬은 전에도 그랬지만 참 맛있었다.






<창림동 두부마을 순두부찌개>


주인 이모님께서 마침 두유가 있다고 한사발씩 주셨다.

아니 이게 왠 횡재람. 

콩의 고소하면서도 담백함이 일품이었다.




두유로 잔을 부딪치니 막걸리를 마신 듯 분위기에 취한다.



점심까지 먹고나니 정말 몸이 나른하다. 

숙소로 돌아와 한숨 푹 자기로 한다.

자기 전에 본채 마루에 햇볕을 쬐며 앉아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만한 행복이 밀려온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서 든 생각.

'이렇게 낮잠을 기분좋게 잤던 적이 언제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잠에서 깬 여행자들과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논의한다.

여행에서는 먹는게 참 중요하기에.


금산여관 근처에 자연 그대로의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는 '농부의밥상' 가게가 있어 그곳에 가보기로 결정하였다.

가게로 들어가니 사장님이 외출했다가 들어온지 얼마 안됐다고 하신다.

조리하는데 30분정도 걸린다고 해 근처 천변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마침 해질 무렵이라 노을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냥 가게에 앉아 있으면 놓쳤을텐데 오늘은 여러모로 횡재를 여러번 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그런가? :) 




<순창 경천에서 만난 노을>

노을진 하늘은 언제봐도 뭉클하다.


음식들이 정갈하면서도 입맛을 돋운다.

중간중간 사장님한테서 음식재료에 대한 설명, 순창의 환경보호를 위해 직접 실천하고 있는 사례 등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의미있었던 시간이었다.




<농부의 부엌 냉이파스타 세트>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건강한 밥상으로 채운 포만감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2층 다락방에는 책과 함께 차를 즐길 수 있다.

창문 뒤로 금산여관이 보인다.



숙소에 돌아와 오늘 하루를 정리해본다.

대빵님이 살아온 궤적과 여행자들과 꿈에 대해 '꿈을 반드시 이뤄야 되는 것인지'에 대해 얘기나눈 내용을 종합해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보았다.



꿈이 있으면 좋다.

대빵님처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집의 가치를 알아보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겪었던 힘든 과정들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기에. 


꿈을 이루는 건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가지고 있는 꿈을 반드시 이뤄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꿈을 간직하며 살되, 허락된만큼 그 결에 맞게 한걸음씩 가자.

그 걸음걸음 사이에 누리는 작은 성취에도 큰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며 살자.


삶 자체가 이미 커다란 선물이기에.